1월 15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권불삼년 (權不三年)
차기 대선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무 빠른 감이 있다. 하지만 요즘 트렌드엔 맞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화무백일홍 인무천일호(花無百日紅 人無千日好). 꽃도 100일 가기 어렵고, 애정도 1000일 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는 프랑스 영화도 있다. 휴대전화 교체 주기가 길어야 3년, 즉 1000일 정도다. 이쯤이면 사람도 물건도 싫증이 난다.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왕조시대에도 권력이 10년을 넘기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시대 변화를 고려할 때 대통령에 대한 애정의 시한도 이제는 3년 이내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기준에 따르더라도 조금 빠른 것은 사실이다. 2017년 5월 10일을 기점으로 1년 7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빨라진 이유가 뭘까. 변수는 두 가지다. 첫째, 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2월에 열린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생각보다 빨리 하락세로 돌아섰다.
당권황몽 (黨權黃夢)
2018년 11월 29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자유한국당 복당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동아DB]
1월 15일 황교안 전 국무총리도 이런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전당대회를 한 달가량 앞둔 지금 입당하기로 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이 지금도 집권 초기 수준이라면 황 전 총리는 나서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 차기 대권도 더불어민주당에서 가져간다면 굳이 지금 당권에 도전할 필요가 없다. 더 기다렸다 2022년 대선 패배 뒤 자유한국당이 혼란스러울 즈음 입당해 당권을 장악하고 2024년 총선 때 공천권을 행사하는 편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최근 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지지율도 떨어지는 중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의 정당 지지율은 상승세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차기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차기 대선 역시 팽팽한 양자대결 구도가 될 것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보수진영의 대권주자에게는 매우 희망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황 전 총리도 이런 판세를 읽고 출진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권을 노린다고 한다면 이번 전당대회를 건너뛸 수 없는 노릇이다. 직접 당권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누군가를 대신 내보낸 뒤 수렴청정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당내 지분이 없는 황 전 총리로서는 이것도 여의치 않다. 자칫 대리인에게 대권 도전을 내줄 우려가 없지 않다. 결국 직접 나서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다.
유황독존 (唯黃獨尊)
2018년 11월 28일 바른미래당 유승민 전 대표가 이화여대 경제학과 주최로 열린 시장경제세미나에서 ‘시장, 국가 그리고 정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뉴시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해 12월 24일과 26〜28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낙연 국무총리의 지지율이 13.9%, 황 전 총리는 13.5%이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성인 2011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를 물은 것으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2%p이다. 이 여론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하다. 오세훈 전 시장의 지지율이 8.6%, 유승민 전 대표는 7.2%, 홍준표 전 대표는 6.2%이다.
이런 황 전 총리의 입당은 당연히 자유한국당 내 차기 대권주자들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앞서 분석한 이유로 차기 대권주자라면 누구나 2월 전당대회 대표 출마를 고려 중이다. 일단 여기에서 현재까지 가장 앞서가고 있는 황 전 총리를 꺾어야 한다. 황 전 총리는 아직 대표 출마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입당식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입당 첫날이자 처음 정치에 발을 딛는 자리이기 때문에 주변의 의견을 더 듣고 그 뜻에 어긋나지 않게 결정하겠다.” 출마한다는 것인지, 안 한다는 것인지 애매하기 그지없다. 왜 이렇게 말했을까. 추대를 원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렇게 가는 것이 본인으로서는 가장 모양새가 좋기 때문이다. 과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정계에 입문할 때 택했던 방식이다. 물론 지금 이 방식이 통할 분위기는 아니다.
반황복권 (反黃復權)
황 전 총리 입당 이후 친박(친박근혜)계 잔류파도 비박(비박근혜)계 복당파도 견제성 발언을 내놓고 있다. 누구보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마음이 급해진 듯하다. 1월 16일 YTN라디오와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본인의 차기 대표 출마설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이 당에 몸을 담았고, 그다음에 당이 어떻게든 지금 제대로, 정말 대안정당으로서 자리 잡을 수 있고, 또 국민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당으로 만들어가는 데 무슨 일이든지 하기는 해야 안 되겠습니까. 다만 그게 지금 이제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그게 대표직인지, 아니면 또 다른 직인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그렇게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이후 심판이 선수로 뛸 수는 없다고 말했던 그가 본심을 드러낸 것이다. 같은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황 전 총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나 국정농단 책임론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란 점도 지적했다. 황 전 총리 입당 이후 김무성 전 대표의 출마설에도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비박계 복당파로서도 중량급을 투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김 전 대표는 여전히 불출마를 표방 중이다. 황 전 총리가 당권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본다면서, 황 전 총리의 탄핵 책임론에 대해서도 신중론을 폈다. 품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거나, 통 큰 정치인 이미지로 통합을 주장하면서 결국 대표 경선에 나서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가 출마한다면 비박계 복당파 대표 주자로 나서려 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한순간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친박계 당권주자들도 마음이 급해진 건 마찬가지일 테다. 홍문종 의원의 경우 황 전 총리는 친박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고, 정우택 의원도 친박 이름을 앞세우지 말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하지만 일부 친박계는 벌써 황 전 총리에게 줄을 섰다는 후문이다. 친박계도 비박계도 아닌, 홍준표 전 대표는 어떨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며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당권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이 내심 불만일 테다. 전당대회 대표 경선전이 시작되면 분위기는 사뭇 험악해질 것이다. 전반적으로는 친황 대 반황 구도로 흐를 개연성이 높다. 모두 반황을 외치면서 점차 후보 단일화 시도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황파만파 (黃波萬波)
2018년 12월 15일 지지자 모임 ‘미래광장’ 송년모임에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는 내용의 손편지를 보낸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대표. [뉴시스]
이렇게 되면 바른미래당의 대선주자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이미 대학 강연정치로 대선 행보에 들어간 유승민 전 대표는 2월 8~9일 당 소속 의원 연찬회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7개월 만의 공식 행보다. 유 전 대표가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안철수 전 대표가 관망만 하고 있을 리 없다. 지난해 12월 15일 지지자 모임 ‘미래광장’ 송년모임에 보낸 손편지가 그것을 예고한다. ‘무더위와 강추위를 겪으면서 우리들은 나이테처럼 더욱 단단하게 성장할 것이라 믿습니다.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안 전 대표를 다시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단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