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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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지식 경영자들 만난다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7-03-12 0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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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지식 경영자들 만난다
    승지 박사해(朴師海)가 어느 겨울 안채에서 잠을 자는데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쳤다. 뜰 앞 매화가 얼까 걱정된 그는 덮고 있던 하나뿐인 이불로 매화를 친친 둘렀다. 그리고 벌벌 떨며 아내에게 말했다. “이젠 안 춥겠지?”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은 ‘미친 바보’들이었다. 변화하는 세상에 눈뜬 지식인들의 몸은 후끈 달아올랐고 타는 목마름으로 지식을 갈망했다. 무언가에 미친다는 뜻의 벽(癖)과 치(癡)를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녔던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18세기 조선 후기는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지식 르네상스로의 변화가 일어났던 시대다. 책상머리에서 북벌을 달달 외우고 자란 지식인들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 변화의 현장을 목격했으니 엄청난 문화충격이었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를 자각하는 순간 북벌이 시나브로 북학(北學)으로 대체되고, 중국과 서양의 실용학문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매김한다.

    시대와 사회, 사람을 바꾸는 것은 역시 정보다. 중국에서 백과사전류의 전집과 총서류 저작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제한적인 정보가 독점적으로 유통되던 이전과 달리, 정보독점 권위가 무너지고 사회 곳곳에 변화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지식과 정보가 활발하게 유통되고 경제력이 뒷받침되면 괴상한 지식인이 출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저자는 특히 편집광적인 정리벽, 종류를 가리지 않는 수집벽, 사소한 사물에까지 미친 애호벽에 주목한다.



    ‘목민심서’를 쓴 다산 정약용은 정보를 가장 잘 다뤘던 탁월한 편집자였다. 6남3녀를 낳아 4남2녀를 대부분 마마로 잃은 다산은 이 기막힌 심정을 담아 ‘마과회통(麻科會通)’을 편집했다. 모두 63종의 의서에서 천연두 관련 내용을 추려 마마 예방법과 치료법을 정리했다.

    당시 중국에 가는 조선 사신들의 중요한 임무는 새로 나온 책과 희귀본을 수집해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석(奇石)만 잔뜩 싣고 온 사람도 있다. 신위(申緯)가 그 주인공. 그는 표면에 이끼가 낀 돌, 구멍이 숭숭 뚫린 돌 등을 수레에 가득 실어, 수레 주인이 돌인지 사람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한술 더 떠 이 희한한 광경을 동행한 화가에게 그림으로 그리게 하고 자신은 시로 지어 노래했다. 그러니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당시 지식인들이 무조건 중국과 서양을 좇은 것은 아니었다. 새것에 대한 갈망만큼 우리 것에 대한 탐구에도 불이 붙었다. 박지원은 “언어와 습속이 다른 중국 체제만 답습한다면 담긴 뜻은 낮아진다”고 비판했고 정약용도 “나는 조선 사람, 조선의 시를 즐겨 지으리”라고 선언했다. 또 화가들은 중국의 관념적 산수 복제를 버리고 조선의 진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 메모하는 습관이 유행하고 있지만 18세기 지식인들은 메모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수많은 저작이 쏟아져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는지 글로 남겼고, 편지를 보낼 때도 반드시 부본을 한 부씩 남겼다. 또 평소 생각, 온갖 잡다한 것도 허투루 보지 않았다.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도 말 그대로 듣고 보고 말하고 생각한 것을 적어둔 비망록이다.

    저자는 한편으로 제도를 앞서갔던 지식인들의 의식 변화에도 주목한다. 강렬한 진실 추구는 점점 더 보수화하는 제도가 발목을 잡고 옛날로 향하던 시선은 지금으로 선회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경쟁력은 정보가 아니라 정보가치를 판단하는 안목에서 나옵니다. 기술력 향상에만 몰두하고 맹목적 변화지상주의의 환상에 빠지는 것이 오늘날 지식정보사회의 맹점입니다.”

    지식으로 먹고사는 시대, 우리 선조들의 지식에 대한 다양한 요리법은 그래서 더 가치가 있다.

    정민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448쪽/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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