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1

2007.09.04

캐넌슛의 비밀 간직한 196g의 과학

  • 축구 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입력2007-08-29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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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열린 2007년 피스컵 대회의 후일담 한 토막. 볼턴 원더러스의 아넬카는 축구화가 없어서 피스컵을 치르지 못할 뻔했다. 그의 후원사는 영국 푸마. 그런데 영국에서 보내온 축구화가 작아서 신을 수 없었다. 구단 측은 첫 경기를 앞두고 축구화를 구하러 뛰어다녔다. 그가 신는 축구화는 푸마 V1.06으로 흔치 않은 모델. 서울 압구정동 대형매장에서 비슷한 축구화를 찾았으나 봉(stud)의 끝처리 등이 달랐다. SOS 요청을 받은 푸마코리아가 경기 시작 6시간 전 동대문매장에서 V1.06을 찾아냈다. 긴급한 무선전화, 택배 시스템, 시속 300km의 KTX까지 동원돼 아넬카는 경기 직전 축구화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이날 경기에서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했다.

    축구는 100m 전력 질주도 아니고 무조건 뻥 내지르는 멀리차기도 아니다. 축구선수의 두 발은 그라운드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모든 동작을 이겨내야 한다. 달리고 차고 미끄러지며, 돌고 멈추고 다시 달린다. 이 모든 것을 축구화가 소화한다. 축구화 바닥과 그라운드는 저항력과 마찰력이 작용한다. 수비수는 상대방을 저지하기 위해 급정지가 가능한 큰 마찰력이 필요하다. 반대로 공격수는 이런 억제력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축구화 바닥에 달린 봉의 모양과 수가 다르다. 공격수는 봉이 많은 것을 신는다. 울퉁불퉁한 면의 넓이가 커서 압력의 세기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비수의 축구화는 봉의 수가 적은데, 압력의 세기가 커서 마찰력도 커진다.

    공격수와 수비수 바닥의 봉 개수 달라

    캐넌슛의 비밀 간직한 196g의 과학

    푸마가 안정환에게 제공한 축구화.

    100여 년 전, 영국에서는 신사복을 입고 공을 찼다. 축구화가 따로 없었다. 프로리그가 시작되면서 팀 구별을 위해 유니폼을 입었고 축구화도 생겨났다. 1930년대에는 발목 보호를 위해 부츠처럼 목이 긴 축구화도 신었다. 그러다가 1954년 아디다스가 혁명을 이뤘다. 당시 서독 국가대표팀은 정교한 외피에 봉을 심은 축구화를 신고 ‘베른의 기적’을 썼다. 지금은 다국적 스포츠용품사들이 첨단과학을 동원한다. 아디다스는 베컴을 위해 특별 제작된 제품을 제공한다. 앞 등이 만질만질한 축구화 대신 베컴은 앞부분에 오돌토돌한 고무 돌기가 있는 것을 신는다. 킥의 놀라운 회전력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대표팀은 나이키의 도움을 받는다. 2002년 한일월드컵 전까지 한국은 350g의 축구화를 신고 묵직한 느낌으로 찼다. 그런데 한일월드컵 때 나이키는 196g의 가벼운 축구화를 제공했다. 미국의 육상 스타 모리스 그린이 100m 신기록을 향해 질주하던 러닝화를 응용한 모델. 나이키가 후원하는 한국 프랑스 브라질 등의 특급 선수들이 이 축구화를 애용한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일반인이라면 어떤 축구화가 적당할까. 스타를 앞세운 다국적기업의 광고 때문에 최고급 축구화를 신고 맨땅을 뛰는 사람들도 있다. 글쎄, 폼은 나지만 경기력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 아마추어들은 맨땅이나 인조잔디에서 뛴다. 그렇다면 봉이 많은 쪽을 고르는 게 좋다. 봉이 6개 정도 박힌 SG형이나 10개쯤 박힌 FG형은 천연잔디에서 뛰는 프로 선수들 몫이다. 일반인은 봉이 20개 넘게 박힌 HG형이 좋다. 봉이 많아서 맨땅에 닿는 면적이 넓어 안정적이고 발목이 꺾이는 불상사도 막아준다. 인조잔디에도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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