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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뇌는 죽음 문턱에서 무엇을 볼까

[궤도 밖의 과학] 사망 직전 ‘과거’ 회상한다는 연구 결과 나와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우리 뇌는 죽음 문턱에서 무엇을 볼까

뇌파는 뇌 속 신경세포가 활동하면서 발산하는 전파다. [GETTYIMAGES]

뇌파는 뇌 속 신경세포가 활동하면서 발산하는 전파다. [GETTYIMAGES]

사고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행한 일을 말한다. 특히 밤중에 건널목을 건너는데 갑자기 멀리 있던 자동차가 순식간에 빠르게 다가오거나, 높은 곳의 물체가 갑자기 머리 위로 떨어지는 아찔한 경험일 수도 있다. 극적인 순간을 표현할 때 흔히 쓰는 단어로 ‘주마등’이라는 것이 있다. 주마등은 촛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주위를 감싼 등롱이 이중으로 돼 있다. 바깥 등롱은 반투명한 형태라 안쪽이 어느 정도 비친다. 안쪽 등롱의 윗부분은 바람개비 모양으로, 촛불로 달궈진 뜨거운 공기가 대류 현상으로 위로 빠져면서 자연스럽게 안쪽 등롱을 돌리는 구조다. 이때 주로 말이나 사람이 달리는 그림이 그려진 안쪽 등롱의 그림자가 바깥 등롱에 투영돼, 마치 무언가 달리는 것처럼 빙글빙글 돌아간다. 빠르게 돌아가는 그림을 떠오르는 생각의 조각들에 비유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도 비슷한 연출이 자주 사용된다. 등장인물이 생명을 위협받거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마다 꽤 긴 시간을 할애하며 과거를 차근차근 돌아보는 모습이 나온다.

생존 방법 찾으려 과거 회상

인간이 죽음에 이르기 전 뇌가 과거를 회상하는지에 대한 뇌파 결과가 발표됐다. [GETTYIMAGES]

인간이 죽음에 이르기 전 뇌가 과거를 회상하는지에 대한 뇌파 결과가 발표됐다. [GETTYIMAGES]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과거를 회상하는 원인에 대한 여러 가설이 있다.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은 인간의 뇌가 위급한 순간에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현재 닥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신묘한 방안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장된 모든 경험을 꺼내 하나씩 찾아봐야 하는 것이다.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에 가능한 한 가장 빠른 속도로 과거 기억을 돌아보고, 그렇게 해서 좋은 방안이 떠오른 인류만 운 좋게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죽음의 순간, 주마등처럼 과거를 뒤적거리는 인류의 뇌는 생존에 유리한 방법을 찾도록 진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가설이 사실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최근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결과를 얻어낸 실험이 있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쥐의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한 것이다. 인간과 여러 측면에서 차이가 많은 동물로 진행한 실험이지만, 놀랍게도 아주 높은 수준의 감마파가 뇌에서 검출됐다. 베타파와 감마파 같은 고주파수 대역의 뇌파는 주로 기억 등 고차원적 인지 능력과 관련 있다. 이로 인해 혹시 죽음의 순간에 쥐가 과거를 회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었지만, 인간과 바로 연결 지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올해 2월 ‘죽어가는 인간의 뇌에서 신경세포 일관성 및 결합의 향상된 상호작용’이라는 주제의 논문이 발표됐다. 여기엔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내용이 담겼으며, 논문을 위해 연구를 의도적으로 시행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날 87세 남자가 넘어지는 사고로 뇌출혈이 발생해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간질 발작이 감지돼 뇌파 검사를 바로 진행했다. 그 와중에 안타깝게도 환자는 사망했고, 심장박동을 멈추기 전과 후 30초 동안 일어난 뇌 활동을 기록할 수 있었다. 다양한 변화 가운데 주로 관측된 뇌파는 과거를 회상하거나 고차원적 인지 정보를 처리할 때 나타나는 감마파였다. 물론 단 한 번의 사례만을 토대로 죽음 직전에 무조건 과거를 떠올린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쥐 실험 이후 연결 지을 만한 후속 논문이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뇌파, 매우 복잡한 전기적 파동

인간의 뇌는 태어난 순간부터 1000억 개의 뉴런이라는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다. [GETTYIMAGES]

인간의 뇌는 태어난 순간부터 1000억 개의 뉴런이라는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다. [GETTYIMAGES]

죽음의 순간, 우리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뇌파를 측정하는 것이다. 아마 뇌파를 측정하는 과정을 손으로 그려보라고 하면, 머리에 이상한 모자를 쓰고 복잡한 전선을 꽂아두는 방식만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우선 뇌파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부터 알아보자. 인간의 뇌는 태어난 순간부터 1000억 개의 뉴런이라는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으며, 뉴런끼리 연결되는 구조인 시냅스가 수백조 개 이상 존재한다. 우리가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각 정보는 전기신호로 변경돼 여기로 온다. 같은 경험을 할 때마다 전달되는 동일한 패턴의 신호가 흔적으로 남게 되고 이것을 기억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사과를 보면 사과에 대한 신호 패턴이 발생하는데, 특정 신호 패턴이 계속 오고 가면서 반복되면 우리는 사과 모양을 명확히 기억하고 점차 발전된 지능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신호 패턴이 뉴런 사이를 오갈 때마다 이 신호로 인해 일종의 전기적 파동도 함께 발생한다. 머리뼈 안쪽의 뇌는 경뇌막, 거미막, 연뇌막이라는 각각 세 겹의 막으로 싸여 있다.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면 대뇌피질에서 시냅스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경세포 외부에 있던 나트륨 이온이 세포 안으로 유입되고, 반대로 칼륨 이온은 세포 밖으로 나가면서 세포막 사이에 전위차가 발생한다.

전기적 위치에너지로 전압이 생기면 전류가 흐르고, 이 전류는 전기장을 형성한다. 전기장으로 자기장이 생성되고, 다시 자기장의 변화가 전기장을 생성하다 보면 파동이 발생한다. 사실 각각의 뉴런에서 발생하는 파동은 매우 미약하다. 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뉴런에서 복합적으로 파동이 발생한다면, 결국 우리가 측정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파동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게 바로 뇌파의 정체다.

뇌파는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은 보통 주파수로 구분되는데, 가장 낮은 주파수인 델타파에서 시작해 세타파, 알파파, 베타파, 감마파로 불린다. 보통 델타파는 깊은 수면 상태에서 나오며, 세타파는 수면과 깨어 있는 상태의 중간 정도에서 나온다. 뭔가에 집중하지 않은 상태로 눈을 감고 편하게 있으면 알파파가 나오고, 눈을 뜨고 집중하는 상태에서는 베타파가 주를 이룬다. 가장 높은 주파수인 감마파는 고도의 인지 정보를 처리하거나 초조한 상태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뇌파를 통해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결과였다. 반대로 뇌파를 바꿔 뇌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이디어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소리는 가장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었다.

뇌파를 통해 사람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미래

반복적인 소리를 들려줘 뇌를 안정시키거나 활동적으로 만드는 것을 ‘자극에 의한 동조화’라고 부르며, 이를 활용해 뇌파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도 있다. 특히 백색소음은 일정한 청각 패턴 없이 인간의 가청 주파수 영역 내 모든 소리를 비슷한 양으로 포함하는 소음을 일컫는다. 넓은 대역의 소리가 고르게 분포돼 있어 계속 들으면 델타파의 주파수 특성처럼 마음이 안정되기도 한다. 파도 소리나 새 소리를 들으면 편안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1875년 영국 생리학자 R. 케이튼은 토끼와 원숭이의 뇌에서 검출한 파형을 검류계에 기록했다. 아마도 뇌파를 최초로 발견한 사례일 것이다. 그로부터 50년쯤 지난 1924년에는 독일 신경과학자 한스 베르거가 세계 최초로 뇌파를 기록하는 장치를 개발했는데, 뇌파를 연구한 계기가 재미있다. 그가 군대에 있을 때 말을 타고 달리다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때 먼 곳에 사는 동생이 갑자기 베르거의 안부를 물어보는 전보를 보내왔다. 자신이 다쳤다는 이야기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베르거는 한 가지 호기심이 생겼다. “위기 순간에 멀리 떨어진 누군가에게 어떤 신호를 전달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말하지 않고도 정보를 전달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그는 뇌파 연구에 매진했다. 그래서 머리에 외상을 입은 환자의 손상된 머리뼈 부위 피부 안쪽에 2개의 백금 전극을 삽입해 전기신호 변화를 측정했다. 이것이 바로 인간 뇌파를 최초로 측정한 방식이다. 당시에는 반드시 피부 안쪽으로 넣어야 하는 줄로 알았지만, 나중에 피부 위로도 신호가 측정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뇌 안쪽으로 바늘처럼 뾰족한 무언가를 꽂거나 머리뼈를 잘라 뇌를 열지 않고도 누구나 쉽게 저렴한 비용으로 뇌파를 감지할 수 있게 됐다.

처음 자세한 내용을 알기 전까지 뇌파는 정말 신비로운 대상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고를 하는 생명체에서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전기적 신호였다. 뇌에서 신경 활동에 의한 전기신호가 발생하고, 우리 몸의 수많은 복잡한 동작 역시 뇌로부터 아주 약한 전기가 나와 전신에 퍼져 있는 근육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즉 우리 몸은 전기로 가동되는 생명공학 기반의 생체 로봇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뇌가 일할 때마다 뇌파가 발생하며, 뇌파를 측정한다는 것은 뇌 활동을 측정한다는 의미다. 뇌파를 통해 잠을 자는지, 아니면 깨어 있는지를 확인 가능하고, 혹시 뇌 기능에 이상이 있는지 여부도 미리 파악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대화 없이도 속마음이 원하는 바를 바로바로 읽어내고, 나아가 서로 뇌파로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대가 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가 뇌파를 통해 타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바로 읽거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언젠가 죽음의 순간이 왔을 때, 생존을 위해 격렬하게 과거를 더듬어나가는 뇌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복잡한 뇌파를 떠올리면 매우 슬프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마지막 숨을 몰아쉬기 직전까지 살아온 나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뇌의 마지막 노력은 숭고하다. 죽음에 이르기 전 정말 뇌가 과거를 회상하는지에 대해서는 가까운 시일 내 뇌파와 관련된 완벽한 실험 결과와 사례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 행위가 정말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인지, 아니면 후회 없는 삶을 돌아보기 위한 찰나의 여운인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테다.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주간동아 1340호 (p56~58)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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