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1

2008.09.02

스포츠는 첨단과학 경연장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8-08-25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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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는 첨단과학 경연장

    ‘슈팅 라이크 베컴’

    축구를 좋아하는 인도계 소녀 제스는 프로축구 선수가 되길 꿈꾼다. 동네 축구 클럽에서 남자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공을 차는 제스의 목표는 데이비드 베컴처럼 멋진 프리킥을 날리는 것.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의 원제 ‘Bend It Like Beckham’을 직역하면 ‘베컴처럼 구부러져라’다. 구부러진 킥, 즉 ‘바나나킥’을 의미한다. 베컴의 절묘한 프리킥은 제스 같은 축구선수라면 누구라도 꿈꿀 만큼 환상적이다. 그래서 프리킥을 날리는 베컴의 오른발은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영국의 새로운 자랑거리가 됐다(영화 ‘러브 액추얼리’).

    베컴의 프리킥은 신기한 마법 같지만 거기에는 마술이 아닌 과학이 숨어 있다. 축구공을 향해 달리는 거리와 각도, 공을 차는 순간의 몸 기울기, 발목을 꺾는 정도 등 모든 게 철저히 분석되고 계산된 결과물이다. 물론 모두가 베컴처럼 슛을 날릴 수는 없다. 베컴이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건 분명하다. 다만 자신의 노력에 ‘과학적’ 원리가 어우러져 마법의 킥이 탄생한 것이다.

    베컴 슛에 숨어 있는 비결처럼 스포츠는 과학이다. 이번 베이징올림픽은 올림픽이 육체의 경쟁은 물론, 첨단 과학의 경연장임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수영의 역사를 다시 쓴 펠프스의 8관왕 등극은 그 자신의 재능과 노력 덕분이다. 그러나 경이로운 신기록 행진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만들었다는 특수 수영복 ‘스피도’의 도움도 컸다고 한다.

    여기서 간단하지 않은 문제가 제기된다. 스포츠는 단지 과학의 도움을 받는 것인가, 아니면 점점 더 과학에 의존해가고 있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맞서 단호하게 과학을, 아니 과학에의 의존을 거부한 선수가 있다. 1990년대 수영계를 지배한 러시아의 포포프다. 전신 수영복이 올림픽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드니 대회 때 포포프는 전통적인 삼각 수영복을 고집했다. 그리고 그는 “전신 수영복에 의존하는 것은 정직한 스포츠맨십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금메달은 놓쳤지만 그의 원칙과 소신은 금메달 이상의 인상을 남겼다.

    지금도 전신 수영복을 ‘과학적인 약물 복용’이라고 비판하는 시각이 있다. 올림픽 도핑테스트는 약물 복용에 대해선 이 잡듯 철저하다. 우황청심환을 먹었다가 도핑테스트에 걸려 메달을 박탈당한 북한 선수도 있다. 그러나 신경안정제 정도인 우황청심환이 안 된다면 전신 수영복을 입고 기록을 단축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까?



    이번 올림픽은 개막식에 세계 100여 개 나라 정상들이 참석해 어느 대회보다 올림픽의 정치화를 실감케 했다. 상업주의의 기승이야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이제는 스포츠와 과학의 만남 적정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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