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9

2014.08.04

4개 외국어 마지막 스페인어 프랑스어와 헷갈려 머리 지끈

같은 라틴어 계통 쉽게 생각 … 전문 학원 별로 없어 찾는 데 애먹어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입력2014-08-04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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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 외국어 마지막 스페인어 프랑스어와 헷갈려 머리 지끈
    1년 안에 4개 외국어 능력 평가시험에 모두 합격하겠다는 무모한(?) 도전의 여정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운의 작용인지 노력의 결실인지 알 수 없으나 앞서 치른 3개 외국어 시험을 모두 그럴듯하게 통과하니 마지막 시험도 꼭 합격했으면 하는 마음 부담이 오히려 더해졌다.

    돌이켜보면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한 이유 역시 앞서 설명한 프랑스어 못지않게 단순했다. 프랑스어 공부에서 악전고투를 하던 2006년 말쯤 같이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스페인어는 발음하기 쉬워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배우기 쉬운 유럽 언어 가운데 하나라는, 귀에 솔깃한 얘기를 하곤 했다. 게다가 같은 라틴어 계통 언어이기 때문에 프랑스어에 대한 기초지식만 있으면 배우기가 더 용이하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마치 운명의 계시처럼 이듬해인 2007년 1월 다니던 프랑스어학원 바로 맞은편에 R스페인어학원이 개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약간의 고민 끝에 일을 저질러버렸다. 치밀한 계산 따위는 없었다. 그달부터 바로 주말 초급반에 등록하고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 타고난 지적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고, 영어를 기본으로 당시 열심히 배우던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에 스페인어까지 더하면 더 멋있지 않겠느냐는 치기 어린 낭만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터다.

    동사변화 혀 내두르고 같은 철자도 뜻 달라

    R학원은 막 개원한 만큼 시설도 깔끔했고 강사들도 의욕적이었다. 스페인어 공부는 처음부터 꽤 재미있게 다가왔다. 듣던 대로 발음은 어렵지 않았고, 프랑스어와 닮은 부분도 많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오히려 힘들기도 했다. 프랑스어 바탕이 확실하다면 당연히 스페인어 공부에 유리하겠지만, 당시 프랑스어 초보 학습자 처지에선 이만저만 혼동되는 게 아니었다.



    어렵기로 소문난 두 언어의 동사변화를 동시에 공부하려니 어느 것이 스페인어 쪽이고 어느 것이 프랑스어 쪽인지 수시로 헷갈렸다. 단어 역시 그 유사성만큼이나 혼란을 일으켰다. 프랑스어 Mer(바다), Sel(소금)이 스페인어에서 Mar, Sal이 될 때는 ‘이것 참, 거저 먹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프랑스에서는 땅바닥(Sol)으로 쓰였던 것이 스페인어에서는 태양이 되기도 하고, 프랑스어 목(Col)이 스페인어에서는 난데없이 양배추로 둔갑할 때는 마치 내 머리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걸림돌에도 어쨌든 스페인어 공부는 착실히 진행됐다. R학원의 교과 과정은 상당히 체계적이었다. 초급 과정은 각 2개월씩 모두 3단계로 구성돼 모두 끝내려면 6개월이 걸렸다. 강사들은 주로 남미의 한국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국에 오게 된 젊은이였다.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꾸준히 6개월간 초급 과정을 끝낸 뒤 중급 과정에 들어갔다. 중급 역시 초급과 동일하게 각 2개월 과정의 3단계로 구성돼 있었다. 초급 과정을 끝낸 바로 그다음 달인 2007년 7월부터 중급 과정에 입문했다. 중급부터는 스페인 출신 원어민 강사가 수업을 담당했다. 처음 경험하는 원어민 수업이라 그만큼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얻는 것도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초급과 달리 중급이 되니 수강 학생 수가 점점 줄어, 급기야 세 달째 접어들자 학생 수 미달로 강의가 폐강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었다. 그달 수강 신청 학생이 나밖에 없었으니 학원 처지도 이해되긴 했지만 스페인어 공부에 한껏 사로잡혀 있던 나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중도 포기는 할 수 없어 스페인어 강의를 물색하려고 인근 대형 어학원인 P학원을 찾아갔다. P학원은 R학원처럼 스페인어 전문 학원은 아니었지만 큰 학원이었기 때문에 구색용인지는 몰라도 마침 스페인어 강의가 몇 개 개설돼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신청 학생 수 때문에 기초반을 제외하고 개강이 확실한 것은 토요일에 진행하는 ‘자유 회화반’뿐이었던 것. 이름 그대로 고급반에 속하는 강의였다. ‘불과 9개월 동안, 그것도 주말에만 배운 실력으로 자유 회화가 과연 가능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다른 선택 여지가 없었기에 이전에 중국어 공부에서의 비슷한 도전 경험을 떠올리며 용감하게 수강 신청을 했다.

    이렇게 우연하게 시작한 P학원에서의 스페인어 공부는 기대 이상이었다.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중후한 스타일의 페루 출신 강사는 모 외국어 고교에서 스페인어 교사로 재직하며 아르바이트로 주말에만 학원에 나온다고 했다. 강의는 강사가 매주 직접 준비해온 시사교재를 이용해 자유롭게 문답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당연히 학생 수준도 전반적으로 매우 높았다. 대부분 스페인어학과 출신이거나 직업상 수시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다.

    학원 망하고, 강사 그만두고

    4개 외국어 마지막 스페인어 프랑스어와 헷갈려 머리 지끈

    스페인어학원의 교재.

    어려움은 컸지만 고비를 넘겨가며 열심히 수업 내용을 따라잡으려고 애썼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전체 학생 중 바닥에 있던 실력이 어느새 중간쯤은 되겠다는 확신이 들 정도가 됐다. 원래 어떤 강의든 한 번 듣기 시작하면 꾸준히 계속하는 습관이 있는 데다, 매주 다른 성격의 시사성 있는 주제를 다룬 교재들이 제공돼 오래 들어도 지루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이어 수강 신청을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2007년 10월 시작한 수강이 해를 두 번이나 넘겨 2009년 2월까지 이어졌다. 중간에 쉰 것은 2008년 9~10월에 걸쳐 있던 외국 단기연수 기간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짧지 않은 스페인어 공부 과정에서 이때가 결정적으로 바탕을 다진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실력도 상당히 향상돼 새롭게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로부터 스페인어권에서 얼마나 공부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기도 했다.

    2008년 가을 미국 휴스턴에 단기연수를 갔을 때는 실력 이상의 과분한 평가를 받은 적도 있다. 당시 병원에 중남미 환자를 위해 통역도 겸하던 멕시코 출신 직원이 있었는데, 우연히 스페인어로 간단하게 말을 나눌 기회를 갖게 됐다. 그런데 그가 한국인의 뜻하지 않은 스페인어 몇 마디에 큰 감명을 받았는지 병원에 내 실력을 원어민 수준으로 소문내는 바람에 주위 기대에 부응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어쨌든 이렇게 2009년 초까지 1년 반 가까이 계속된 수강 전선에 그만 문제가 생겼다. 강사가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강의를 할 수 없게 됐다고 통고한 것이다. 크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전문 학원을 찾는 작업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전문 학원 수 자체가 적으니 나처럼 초급 수준을 넘어선 사람은 더더욱 들을 수 있는 강의 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 나름대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가며 스페인어 공부를 지속해나갔다.

    그 와중에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하는 동기를 마련해줬던 R스페인어학원이 경영상 문제로 문을 닫았다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됐다. 그런데 다행히 얼마 후 바로 그 자리에 F스페인어 전문 학원이 새롭게 들어섰다. 나로서는 집에서 가까워 퇴근길에 다니기 편한 지리적 장점이 큰 곳이었다. 바로 이곳을 터전으로 나의 마지막 외국어 능력 평가시험 도전 준비가 이뤄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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