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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505억 원 증액과 전작권의 함수

올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9200억 원…안보 우선 현실에서 협상력은 거의 제로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505억 원 증액과 전작권의 함수

505억 원 증액과 전작권의 함수

1월 9일 에릭 존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 대사를 비롯한 미국 측 대표단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10차 고위급 협의에 참여하려고 외교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솔직히 말해 여러 여건이 우리에게 불리하다. 당장 전시작전권(전작권) 전환 재연기 등 다양한 사안에서 우리가 미국 측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처지 아닌가. 협상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한국 외교부와 미국 국무부의 9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 개정협상이 시작된 2013년 7월 우리 측 당국자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원칙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요구는 높지만 객관적인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것. 그간 논란이 거듭돼왔던 방위비분담금 축적과 미군기지 이전비 전용 문제에 대해서도 이 무렵 외교부 협상팀 차원에서는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미국 측 견해 상대적으로 더 반영

6개월 뒤인 1월 11일 밀고 당기기가 지루하게 이어지던 협상이 마무리됐다. 당초 계획보다 3개월 가까이 연장된 일정이었다. 눈여겨볼 사실은 초기에는 분담금액에 초점을 맞추던 한국 측 태도가 9월 말 4차 고위급 협의를 계기로 ‘제도개선’ 문제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즉 ‘얼마나 줄 것이냐’에서 ‘얼마나 투명하게 관리할 것이냐’로 쟁점이 움직였다는 뜻이다.

그간 주한미군은 한국 측이 제공한 방위비분담금 가운데 매년 1000억 원 가까이 축적해두었고, 이를 2004년 체결된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경기 평택에 새로 건설하는 기지 이전비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2013년 기준으로 이렇게 쌓인 방위비분담금 규모는 총 7380억 원. 미군 측은 이 돈을 이자가 나오지 않는 영내은행 계좌에 넣어두었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영내은행은 이 자금을 다시 국내 시중은행 여러 곳에 정기예금 형태로 분산해 맡겨두었다. 해당 영내은행은 매년 정산을 통해 영업이익을 미 국방부에 납부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이자가 나오지 않으나 결국 시중은행에서 나오는 이익을 미 국방부가 쓰고 있는 셈. 야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투명성 문제가 강하게 제기돼온 배경이다.



당초 외교부 협상팀의 주된 논점이 아니었던 투명성 문제가 올해 협상에서 핵심 의제로 떠올랐던 것과 관련해 안보당국 주변에서는 “청와대 핵심의 강한 주문이 있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청와대 핵심에서 이 문제를 ‘비정상화의 정상화’ 작업 일환으로 인식한다는 것. 방위비분담금의 근본 취지에서 벗어나는 자금운용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결론을 놓고 보면 협상의 큰 틀은 미국 측 견해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반영된 모양새다. 먼저 금액부터 살펴보자. 2013년(8695억 원)보다 5.8%(505억 원) 증가한 9200억 원(올해 기준, 내년부터는 전전년도 소비자물가 상승지수만큼 추가 인상, 5년간 유효)이라는 최종합의안은 미국 측 당초 요구금액이던 1조 원 이상에 비하면 증가 폭이 적지만, 한국 측이 제시했던 8000억 원대에 비해서는 큰 금액이다. 시퀘스터(자동 예산 삭감) 등으로 전례 없는 국방예산 압박을 받는 미국 측이 “돈 문제를 갖고 이렇게 강하게 나온 적이 없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는 게 당국자들 설명이다.

한국 측 주안점이던 투명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할 말이 더욱 많지 않아 보인다. 1월 12일 브리핑을 통해 외교부는 “분담금 배정 초기단계에서부터 한미 간 공동으로 철저한 검토와 평가를 실시하고, 군사건설 분야에서 상시 사전협의 체제를 수립하는 등 많은 제도적 개선책에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지만, 불투명성의 대표사항이던 축적 문제는 오히려 공식화되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눈여겨볼 것은 애초부터 이 문제를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지 이전비 전용 문제는 LPP 체결 당시 우리 정부가 묵인, 양해한 사항이고 2008년 8차 협정 이후 국회 비준까지 받아 문제 삼기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도 분담금이 축적된 현 상황을 바람직하다고 생각지 않지만, 기지 이전 사업이 올해와 내년에 집중 진행되기 때문에 (미집행액은) 거의 소진될 것”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2003~2004년 무렵 한미 양국은 서울 용산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흩어진 주한미군 기지를 평택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두고 협상을 벌인 바 있다. 그 결과 체결된 것이 용산기지이전계획(YRP)과 LPP. 용산기지의 경우 한국 측이 이전비용을 부담하고, LPP가 규정하는 동두천의 미 2사단 등 다른 23개 기지 이전비용은 미국 측이 부담한다는 게 주된 골자였다. 이후 한국 측의 용산기지 이전비용은 당초 예상보다 80% 가까이 늘었지만, 미국 측은 자신들이 부담하기로 한 이전비용의 상당 부분을 방위비분담금에서 충당하겠다며 축적해왔다.

‘비정상의 정상화’ 무색

더욱 곤혹스러운 대목은 LPP에 따라 이전할 계획이던 경기 북부의 주한미군 부대 상당수의 잔류가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 지난해 11월 25일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은 국방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한강 이북 지역에 미군이 잔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국방부는 “어떠한 협의도 없었다”며 선을 그었지만 ‘잔류설’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태.

2사단을 비롯한 경기 북부의 주요 미군부대가 평택으로 가지 않고 현 위치에 남을 경우, 미국 측이 부담하기로 한 LPP 비용은 크게 줄어든다. 10조 원에 육박하는 용산기지 이전비용을 대는 한국 측과 균형이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가능성 차원에서만 놓고 보면, LPP 비용을 충당하려고 미군 측이 쌓아놓은 분담금이 실제 들어가는 비용보다 많아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공식 발표와 달리 미국 측이 LPP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으로 충당하려 할 것이라는 의심은 2004년 LPP 체결 당시부터 제기된 바 있다. 협상결과의 국회비준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는 “그런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했지만, 1월 12일 외교부 브리핑에서 재확인됐듯 당시 협상팀은 분담금의 이전비 전용을 암묵적으로 인정했다. 당시 협상의 감독책임을 맡았던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라인 고위관계자는 “(협상팀이) 보고하지 않는 사안까지 챙길 수는 없었다. 실무진이 청와대를 속인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주한미군 측의 방위비분담금 축적 사실이 폭로되면서 비판 목소리도 커졌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2008년 8차 SMA 협상 당시 한국 측은 그간 쌓인 분담금의 이전비 전용은 물론, 2013년까지 같은 방식으로 축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하기에 이른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보니 이번 9차 SMA 협정에서 바로잡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 한국 정부의 주요 관심사였다는 ‘투명성 문제’는 애초부터 접점이 쉽지 않았던 셈이다. ‘비정상화의 정상화’라는 청와대 의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이번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의 유효기간은 5년으로, 전작권 전환이 예정된 2015년 12월 이후로도 3년간 적용된다. 이후 주한미군의 위상이나 구실에 변화가 불가피하지만, 그와 관계 없이 방위비분담금은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셈이다. 이번 협상과정에서 한국 측은 유효기간 3년을 제시했지만 미국 측이 고집한 유효기간 5년이 관철됐다.

지난해 5월을 계기로 한국 정부가 전작권 재연기 협의를 정식 요청한 상황이다 보니 3년을 고집할 논거가 부족했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협상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는 정부 당국자 말이 새삼 의미심장한 이유고, “전작권 전환 문제는 이번 협상과 아무 관련 없다”는 정부당국의 설명이 무색해지는 또 하나의 배경이다. 2000년대 초반 이래 한미동맹의 주요 현안에서 일관성을 지키지 못하고 흔들려온 한국 정부의 한계를 보는 듯하다.



주간동아 922호 (p52~53)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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