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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허를 찌르는 ‘바이러스 습격’

철새의 귀환 조류독감 위험도 증가…돌연변이 계속 발생 백신 개발 한계

  • 전준범 동아사이언스 기자 bbeom@donga.com

허를 찌르는 ‘바이러스 습격’

허를 찌르는 ‘바이러스 습격’

지난겨울 순천만을 찾은 철새들과 조류독감 바이러스(원 안).

매년 철새 150종 이상이 겨울을 나려고 우리나라를 찾는다. 조류학자들은 이때에 맞춰 다양한 연구를 하려고 전국 주요 철새 도래지를 찾는다. 최근에는 수만 마리가 동시에 날아오르며 장관을 연출하는 ‘가창오리 군무’ 등이 TV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해 철새 도래 시기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 높아졌다.

반면 방역당국 처지에서는 겨울 철새가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다. 외부에서 한반도를 찾는 조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조류독감(AI)’에 대한 위험도 덩달아 증가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3월 세계를 긴장하게 했던 중국발(發) AI바이러스(H7N9형) 공포가 사그라지기도 전에 최근 대만 질병관리본부가 20대 대만 여성이 변종 AI바이러스(H6N1형)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발표해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우리에게 ‘사스(SARS)’만큼이나 익숙한 AI는 닭, 칠면조 등 가금류와 야생 조류가 AI바이러스에 감염돼 나타나는 급성 전염병이다. 전파 속도가 워낙 빨라 한 지역에 감염 가축이 발생하면 주변으로 급속히 퍼진다. 감염된 가축은 폐사 말곤 달리 방도가 없어 축산농가 피해가 크고, 수출길이 막혀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

속도가 빠른 ‘변신의 귀재’

허를 찌르는 ‘바이러스 습격’

인천국제공항 검역소에서 발열 검사를 받고 있는 입국자.

과거 조류에만 해당하는 질병으로 여겨지던 AI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1997년 5월 홍콩에서 첫 ‘인간 감염’ 사례가 보고된 뒤부터다. 당시 독감에 걸려 사망한 3세 어린이 체내에서 고병원성 H5N1형 AI바이러스가 검출된 것. 이후 H5N1형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돼 환자를 꾸준히 발생시키고 있다.



사람이 AI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기침을 동반한 발열, 오한, 근육통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중추신경계 이상이나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H5N1형의 경우 치사율이 3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타미플루, 리렌자 등 치료제가 나와 있지만 예방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바이러스가 ‘변신’의 귀재라는 점이다. 표면단백질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다른 바이러스와 재조합해 새로운 유형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AI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그동안은 인간에 감염되는 AI바이러스가 H5N1형뿐인 것으로 파악됐으나, 올해 들어 H7N9형과 H6N1형이 추가적으로 발견됐다. 3월 중국에서 발견된 H7N9형은 저병원성 AI바이러스 유전자 3개가 재조합해 탄생한 신종 바이러스다. 중국인 수십 명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목숨을 잃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H7N9형이 H5N1형보다 치명적이고 사람에게 전염될 확률도 더 높다고 밝혔다.

가장 최근에는 대만에서 H6N1형의 첫 인체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H6N1형의 치사율이 H5N1형이나 H7N9형만큼 높지 않아 환자가 금세 건강을 되찾았지만, 주목할 점은 원래 H6N1형은 인간에게 감염되는 바이러스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표면단백질인 ‘헤마글루티닌’에 돌연변이가 발생해 인간 호흡기 내 특정 수용체에 달라붙을 수 있게 된 것이다.

AI바이러스 백신 개발 속도가 더딘 것도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돌연변이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는 일. AI ‘정복’을 위한 과학계의 연구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김희발 교수팀은 6월 세계 9개국 연구진과 함께 오리가 AI에 감염되지 않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오리는 다른 가금류와 마찬가지로 체내에 AI바이러스를 보유하긴 하지만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침팬지가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에 강하다는 점에 착안, 에이즈(AIDS) 백신 개발에 성공했던 것처럼 오리의 면역체계를 역추적한 것이다. 연구진은 오리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한 뒤 H5N1형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발현되는 유전자와 이때 폐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 결과, H5N1형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오리는 이를 차단하려고 ‘베타-디펜신’과 ‘BTNL’이라는 유전자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미국 일리노이대 약학과 마이클 커프리 교수팀은 지난달 식용방부제의 일종인 ‘삼차뷰틸하이드로퀴논(TBHQ)’이 H7N9형 바이러스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연구팀은 TBHQ가 H7N9형의 표면단백질에 달라붙음으로써 바이러스가 세포 속으로 침투해 AI 감염을 일으키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확인했다.

은 나노입자를 해결책으로 제시한 연구도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분자인식연구센터와 서울대 보건대학원 공동연구진은 자성을 띤 은 나노복합체를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제거에 이용했다. 연구진은 자성이 있는 소재 위에 은 나노입자와 은 이온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은 나노복합체를 만든 후 이를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에 섞었다. 그러자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모두 은 나노입자와 은 이온에 흡착돼 99% 이상 제거됐다.

겨울을 특히 좋아하는 바이러스

허를 찌르는 ‘바이러스 습격’

5월 초 경기 화성시 남양만 철새 도래지 일대에서 실시한 방역 소독 활동.

신기한 연구 결과는 이 밖에도 많지만 일반인에게는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제시한 기초연구일 뿐 당장 AI 백신이 상용화돼 병원이나 약국에 진열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상생활에서는 AI보다 독감이나 감기가 우리를 더 괴롭히는 편이다.

그렇다면 과학자가 아닌 우리는 무엇에 주의하면서 생활해야 할까. 빤하지만 지금으로선 “기본에 충실하자”고 할 수밖에 없다. AI바이러스의 경우 공기나 접촉을 통해 전파되기 때문에 축산농가는 방역 마스크, 장갑 등 작업복을 제대로 갖춰 입어 감염을 예방해야 한다. 또 바이러스는 75도 이상 온도에서 5분 정도 가열하면 모두 죽기 때문에 가금류를 섭취할 때는 잘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AI바이러스를 비롯한 여러 독감 바이러스가 ‘추운’ 환경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보통 바이러스는 단백질이 껍질(캡시드)을 이루는 ‘입자’ 형태를 띠는데, 이 입자들은 낮은 온도에서 형태를 더 오래 유지한다. 즉 날씨가 추울수록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왔을 때 얼굴이나 손에 바이러스가 더 많이 묻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손 씻기’가 왜 중요한지 잘 따져볼 일이다. 여기에 규칙적인 운동과 적당한 수면을 통해 인체 면역력을 유지하라는 ‘빤한 잔소리’도 그냥 넘겨선 안 된다. 술자리가 잦아 면역성과 항상성이 약해지는 연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주간동아 2013.11.25 914호 (p52~53)

전준범 동아사이언스 기자 bbe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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