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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흠 없는 건물 짓느니 욕먹어도 ‘다양성’ 계속 추구”

유걸 서울시청 신청사 설계자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흠 없는 건물 짓느니 욕먹어도 ‘다양성’ 계속 추구”

“흠 없는 건물 짓느니 욕먹어도 ‘다양성’ 계속 추구”
다양성, 아이덴티티(identity), 미래. 유걸(73·사진) 건축설계사무소 ‘아이아크’ 대표가 인터뷰 도중 자주 언급한 단어들이다. 유 대표는 지난해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서울시 한복판에 들어선 거대한 유리 건물, 서울시청 신청사(신청사)를 설계한 뒤 숱한 입길에 오르내린 탓이다.

이 건물은 ‘동아일보’와 건축 전문 월간지 ‘SPACE’가 전문가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한 ‘우리나라 현대 건축물 중 최악의 건물’ 1위에 뽑혔다. 이런 평가는 건축 당시부터 예견됐던 터다. “건물 외관이 쓰나미를 형상화한 것 같다”거나 “복구 불가능한 파국”이라는 비난이 공공연하게 쏟아졌다. 심지어 박원순 서울시장이 “(신청사에) 안 들어가면 안 되나”라고 말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고,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 대표, 대한민국건축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한 70대 건축가는 이 모든 과정을 물끄러미 지켜봐야 했다.

한때 우리나라 최고 건축가로 꼽혔고, 일순간 ‘공공의 적’이 됐다가, 이제는 많은 사람에게 잊힌 유 대표와 11월 19일 신청사에서 마주 앉았다. 최근 이 건물 건축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 시티:홀’(정재은 감독)이 개봉하면서 새삼 화제에 오른 공간이다.

영화는 서울시가 2005년 신청사 건축을 확정 짓고 2012년 10월 마침내 개청식을 갖기까지 7년에 걸쳐 펼쳐진 ‘대하드라마’를 다루고 있다. 그사이 건물 디자인은 여섯 차례나 바뀌었다. 최종 공모를 통해 유 대표의 아이디어가 신청사 콘셉트 디자인으로 선정되지만, 정작 그는 세부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배제당한다. 이미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턴키(turn key·일괄수주) 사업자로 선정된 후였기 때문이다. ‘턴키’는 열쇠(key)만 돌리면(turn)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상태로 건물을 인도한다는 뜻으로, 건설업체가 설계부터 시공 및 인테리어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해 건축주에게 넘기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 건축 과정에 끼어들 틈이 없었던 유 대표는 서울시 등을 향해 “설계자로서 건축 과정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했다.

“내가 상상한 이미지 거의 구현”



“흠 없는 건물 짓느니 욕먹어도 ‘다양성’ 계속 추구”

서울시청 신청사 건축과 관련한 다 큐멘터리 영화 포스터. 논란을 빚은 건물 외관 대신 내부 모습을 전면에 내세웠다.

마침내 그가 ‘총괄디자이너’라는 직함을 받은 것은 2011년 8월. 이미 골조가 완성돼 관여할 여지가 많지 않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필름 안에서 유 대표는 발주처인 서울시 담당공무원, 시공사인 삼성물산 담당자, 하청을 받은 인테리어 업체 관계자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때로는 요구하고, 때로는 읍소하며 자신의 뜻을 반영하려고 몸부림친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한 노력 끝에 건물이 완성됐다. 당시 쏟아진 대중의 비난에 그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유 대표는 “결과만 놓고 말하면 신청사 외관은 내가 상상한 이미지가 거의 그대로 구현된 결과물”이라며 “미추(美醜)에 대한 판단은 개인에 따라 갈릴 수 있다. 다만 이 건물이 어떤 철학을 담고 있으며, 왜 이런 형태를 띠게 됐는지에 대해 시민과 충분히 공유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그가 애초부터 신청사를 공무원이 아니라 시민이 사용할 공간으로 상정하고 설계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유 대표는 “이 건물을 설계할 때 가장 염두에 둔 건 ‘광장’이었다. 시청 앞 광장이 시민에게 열려 있는 공간인 것처럼 신청사 역시 활짝 열려 있어 시민이 언제든, 어디든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게 되길 바랐다”고 했다. 건물 전면에만 유리판을 무려 1604장이나 쓴 것도 ‘열린 공간’을 향한 꿈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신청사 곳곳을 걸었다. 1층 아트리움(안뜰)에 서자 유리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전면의 그린월(green wall)이 싱그럽게 반짝였다. 신청사 로비에 7층 높이로 조성된 수직 정원에는 10여 종, 약 6만5000본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유 대표는 이 벽이 건물과 광장을 이어주는 장치라고 말했다. 잔디가 수평으로 펼쳐진 서울광장이 신청사와 만나 수직으로 뻗어 올라가는 것이다. 시민들이 광장을 걷 듯, 편안하고 자연스레 신청사에 들어와 건물 구석구석을 거니는 모습을 그는 꿈꿨다. 그래서 건물 꼭대기에 공연, 강연 등을 열 수 있는 다목적홀과 전망대인 하늘정원, 이 둘을 잇는 시민라운지를 지었다. 중간이 뻥 뚫린 건물 구조 덕에 아트리움에서 올려다보면 천장에 마치 비행선처럼 둥실 떠 있는 질감의 공간 세 덩이가 보인다.

건물 곳곳에 광대한 여백을 둔 이러한 설계는 신청사 개청 후 각계의 비판을 받았다.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백과 유리가 상징하는 개방성, 투명성은 유 대표의 ‘아이덴티티’다. 그에게 ‘김수근 건축상’을 안긴 교육시설 ‘밀알학교’ 건물은 교실과 복도의 경계가 없다. 벽면이 유리로 돼 있어 모든 것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유 대표의 또 다른 대표작인 ‘아산정책연구원’도 내부에 기둥이 없고 안뜰이 지하 1층부터 옥상까지 뚫려 있다.

유 대표는 신청사도 이렇게 만들려 했다. 그는 “시장 집무실을 유리방으로 만들어 오가는 사람 누구나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고, 건물 곳곳을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로 연결하려 했다. 그러나 건축 단계에서 보안 등 여러 현실적 문제로 실현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다목적홀 등 애초 시민을 위해 설계한 공간조차 시민이 자유롭게 출입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장기적으로는 시청이 아이들이 이것저것 만지고 뛰어노는 공간, 어른들도 마음을 열고 즐길 수 있는 집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시청 건물의 성격에 대한 그의 이런 ‘철학’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다만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건물을 지으면서 새로운 것을 불편해하고 누구나 무난하게 받아들일 결과가 나오기만 바라는 건 문제”라는 그의 지적은 곱씹어볼 만하다. 유 대표는 “우리나라에는 ‘흠 없는 건물’이 너무 많다. 일부 흠이 있어도 건축가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특징 있는 건물이 건축적으로 더 낫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쓰나미 같다’는 비판을 받은 신청사 외관 디자인에 대해서도 그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건물이 높을수록 첨단이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고층 건물 맹신 사회’에서 신청사를 옆으로 눕히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또 “설계 당시부터 건물이 광장을 향해 뻗어가는 이미지를 갖기를 원했다. ‘쓰나미’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쓰이긴 했지만 건물이 정적인 이미지에 머물지 않고 다이내믹하면서도 파워풀하게 광장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는 칭찬으로 느껴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 외관이 미래에는 분명 새로운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른 것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조화

“흠 없는 건물 짓느니 욕먹어도 ‘다양성’ 계속 추구”

유걸 대표가 디자인한 서울시청 신청사.

유 대표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한 곳은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전망대. 그곳에 서면 덕수궁의 유려한 한옥 처마와 근대 건축 양식이 반영된 석조전, 성공회 성당, 그리고 서울시청 구청사와 신청사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유 대표는 한눈에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이곳의 스카이라인을 ‘부요(富饒)하다’고 표현했다.

“다양성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우리 사회는 ‘조화’를 ‘동질화’의 다른 단어 정도로 쓰는 경향이 있는데, 서로 다른 것의 어우러짐을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조화다.”

신청사가 덕수궁 등 기존 건물들과 ‘조화롭지 못하다’는 일각의 비판을 염두에 둔 말로 들렸다. 말하자면 유 대표는 신청사에 관한 한 ‘확신범’이다. 그는 이 건물에 ‘더욱 아름답고 살 만한 서울’에 대한 꿈을 담았고, 앞으로도 이처럼 ‘다양’하고, ‘아이덴티티’가 살아 있는, ‘미래’ 건축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가 다음엔 또 어떤 ‘작품’으로 대중을 깜짝 놀라게 할지 궁금해진다.



주간동아 2013.11.25 914호 (p36~37)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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