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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의 행복여행 | 네팔 쿠마리 신전

7세 女神이 살아 있었네

힌두교와 불교 공존의 상징적 인물…300여 년 역사 많은 사람 믿음도 여전

  • 정찬주 소설가 ibuljae@naver.com

7세 女神이 살아 있었네

7세 女神이 살아 있었네

크리슈나 힌두 사원(왼쪽)과 더르바르 옛 왕궁.

쿠마리 신전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더르바르(Durbar) 광장 남쪽에 자리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살아 있는 신’이 사는 곳이다. 쿠마리(Kumari)는 산스크리트어로 ‘처녀’라는 말이다. 반대로 쿠마르는 총각이다.

비가 다시 추적추적 내린다. 쿠마리 신전 건물의 창과 문은 모두 검은 색조다. 비가 내린 탓인지 더욱 우중충하다.

관광객들이 처마 밑에 서서 쿠마리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내가 15년 전 왔을 때는 현관문으로 들어가 쿠마리가 사는 방에 직접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관리인이 하루 2번 정도 창을 열어 쿠마리가 외부인을 내다보게 하는 모양이다. 처마 밑에서 밖으로 조금 고개를 내밀자 비둘기가 똥을 싸고 날아간다. 우산을 쓰지 않았더라면 비둘기 똥을 머리에 맞았을 것이다.

지혜롭고도 특이한 쿠마리 문화

사실 내가 쿠마리 신전에 다시 온 까닭은 쿠마리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예전엔 이곳에서 어린아이로 장사를 한다는 잔인한 느낌이 들어 메모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다시 온 것은 쿠마리가 불교와 힌두교의 갈등을 방지하려는 네팔 사람들의 지혜롭고 독특한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쿠마리 역사는 3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라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자야프라카시 때부터 쿠마리 역사는 시작된다. 여러 전설이 내려오지만 하리 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왕이 밤에 꿈을 꿨는데, 어린 여자아이가 나타나 자기가 신이라고 말했답니다. 그런데 왕은 꿈에서 깨고 나서도 그 여자아이를 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은 그 여자아이를 신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고, 모든 백성에게 알렸다고 해요.”

말라족은 열반에 든 부처를 화장했던, 불자들에게는 고마운 종족이다. 부처가 “수행자는 장례에 간여하지 마라. 잠시도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고 유언했기 때문에 당시 쿠시나가라에 살던 말라족 사내들이 모두 나서서 전단향을 쌓아놓고 부처를 화장했던 것이다.

쿠마리는 신이지만 재위기간이 있다. 5, 6세에 뽑혀 초경 전까지만 신으로 대접받다가 후임 신에게 신위를 물려줘야 한다. 물론 아무나 간택되는 것은 아니다. 혈통과 신체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혈통은 반드시 아버지는 불교를 믿는 석가족이어야 하고 어머니는 힌두교인어야 한다. 그러니 쿠마리는 두 종교 간 화합의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워 하리 씨에게 재차 확인했다.

“네팔에서는 불교인과 힌두교인 간 싸움이 없어요. 모두 쿠마리 때문이죠. 쿠마리가 있는 한 평화로울 겁니다.”

쿠마리의 자격 가운데 신체 조건으로는 머리카락과 눈은 검고, 얼굴 피부는 보리수나무 같고, 눈꺼풀은 소의 것과 같고, 목은 고둥 같고, 다리는 사슴의 다리 같고, 몸에는 어떤 상처도 없어야 하는 등 32가지가 있다.

혈통과 신체 조건을 통과한 쿠마리 후보자들은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즉 신은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는지 없는지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후보자는 어두운 방에 갇혀 잘린 양이나 닭 머리 곁에서 하루를 견뎌야 한다. 그런가 하면 시험관이 괴성을 지르거나 무서운 가면을 쓰고 나타나 겁을 주어 쿠마리 후보자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시험하는데, 두려워서 울거나 소리 지르면 탈락이다.

“쿠마리가 되면 그 가족은 경제적으로 부가 보장됩니다. 백성은 물론 국왕도 쿠마리를 신으로 대접하기에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은퇴한 쿠마리와 살면 남편이 죽는다는 속설이 있어 결혼하지 못했지만 25년 전부터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결혼해서 잘 사는 은퇴한 쿠마리도 있습니다.”

지금의 쿠마리는 42대이고 나이는 7세인데, 나와 지인들은 잠시 시큰둥한 표정의 쿠마리를 본 뒤 더르바르 광장으로 향한다. 관리인 말에 의하면 쿠마리의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한다. 비가 오락가락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는 더는 내릴 것 같지 않다. 구름 뒤편에서 해가 언뜻언뜻 발걸음하고 있다.

입장료를 내고 박물관에 들어갔지만 네팔 명절 기간이라 내부는 볼 수 없는 휴관이다. 네팔의 역대 왕들 사진이 걸린 회랑에서 하리 씨의 설명만 듣고 만다. 왕궁을 개조해 만들어서 그런지 박물관이 웅장하다. 어쨌든 무작정 회랑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다시 나와 광장으로 들어선다. 하리 씨가 광장 입구의 어떤 건물 2층으로 안내한다. 올라가보니 광장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카트만두 시내에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7군데나 된다.

7세 女神이 살아 있었네

더르바르 광장(왼쪽)과 더르바르 옛 왕궁에 있는 조각 작품.

금은세공 기술 뛰어난 석가족

7세 女神이 살아 있었네

더르바르 광장에 있는 자가나라얀 사원의 코끼리상과 수도자상.

교복을 입은 앳된 여학생들이 수다를 떨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 좀 전 주마간산으로 스쳤던 사원들과 관광객들이 한눈에 보인다. 광장에서 대표적인 힌두 사원은 시바 파르파티이다. 힌두 사원은 대부분 주신이 한 명이지만 저 사원은 다르다. 시바와 그의 부인 파르파티를 함께 모신다. 사원 3층 창을 열고 다정하게 밖을 내다보는 부부 조각상이 어딘지 인간냄새를 풍기는 시바와 파르파티다. 왕과 왕비로 착각할 정도이다.

옛 왕궁의 거무튀튀한 창과 창틀은 나무로 가공한 것들인데 대단히 정교하다. 성(性)을 감추지 않는 힌두의 성애문화는 어김없이 왕궁 건물에도 조각돼 있다. 온갖 성행위를 그림으로 그려놓은 책도 있다. ‘카마수트라’가 그것이다. 은밀하지 않고 너무 적나라해 무슨 해부학 서적처럼 무덤덤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관광객에게는 인기 있는 책이라고 한다.

옛 왕들이 즉위식을 한 더르바르 광장은 랄릿푸르(Lalitpur)라는 도시의 중심이다. 랄릿푸르는 파탄(Patan)이라고도 부르는데, 카트만두 계곡의 3개나 되는 옛 왕국 가운데 한 나라의 땅이었다. 현재 파탄 인구는 20만 명이며, 그중 석가모니 부처의 후예인 석가족이 5만여 명이다. 석가족은 금은세공 기술이 뛰어나 파탄에서 대대로 불상이나 불구(佛具)들을 만들며 살고 있다고 한다. 석가족이 만든 불상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문득 석가족을 만나고 싶어 하리 씨에게 부탁하자, 어렵지 않은 일이라며 곧 한 사람을 데리고 온다. 건네주는 명함을 보니 석가족이 분명하다. 이름은 슈라즈 샤카(Suraj Shakya)이고 나이는 41세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만화처럼 명함에 그려놓았는데, 감각적인 그림 솜씨가 제법이다. 그는 주로 독일인을 상대로 가이드를 하고 있으며 자신을 예술가, 번역가라고 소개한다. 그에게 석가족이 왜 인도 카필라 성에서 카트만두까지 올라와 살게 됐느냐고 묻자, 해박한 역사지식으로 설명해준다.

슈라즈 씨와 다시 만나기로 하고 광장으로 들어선다. 마주데발 힌두 사원 앞 광장 중앙쯤엔 휴식하기 좋게 사면계단이 있다. 이곳 역시 시바가 주신이고 성기 모양의 링가가 안치돼 있다. 쿠마리 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주변에는 여러 힌두 사원과 골든 템플 같은 불교 사원이 사이좋게 뒤섞여 있다.



주간동아 913호 (p58~59)

정찬주 소설가 ibulj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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