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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술’ 출퇴근하면서 단주(斷酒)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 알코올의존치료센터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그놈의 술’ 출퇴근하면서 단주(斷酒)

‘그놈의 술’ 출퇴근하면서 단주(斷酒)

알코올의존증 환자들이 부천성모병원 알코올의존치료센터에서 주장 훈련을 하고 있다.

만취 상태로 주택가나 상가 등지에서 상습적으로 폭력과 협박을 일삼는 사회적 위해범을 뜻하는 ‘주폭(酒暴)’,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등교한 후 부엌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주부를 가리키는 ‘키친 드렁커(kitchen drunker)’.

별난 신조어까지 생겨날 만큼 우리 사회의 음주 폐해는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과음은 음주자 개인에 그치지 않고 가족과 주위 사람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치며 음주운전, 성범죄 등 각종 사회문제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더한다.

전국 최초…다양한 프로그램 자발적 치료

이런 상황에서 국내 최초의 ‘출퇴근’ 알코올의존 치료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 알코올의존치료센터(이하 센터)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2000년 문을 열어 올해 6월 30일로 개설 12주년을 맞은 센터는 알코올에 중독된 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건강하고 보람된 삶을 되찾아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알코올의존증은 만성적으로 진행되면서 재발률이 높아 자칫 치료시기가 늦어지면 가족관계의 해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대표적 질환이다. 술에 대한 금단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건강이 나빠지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데도 본인 의지로는 술을 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알코올의존증 환자는 치료기관을 스스로 찾길 꺼린다. 강압적이고 폐쇄적인 치료 분위기 탓이다. 이에 반해 센터는 환자들이 강제 입원을 하지 않고 출퇴근(낮병동 운영)하면서 의학적 치료와 심리적 치료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개방형’ 치료를 지향한다.

센터는 정신건강의학과, 내과, 사회사업팀 간 협력 시스템을 갖추고 환자의 음주 실태, 건강 상태, 사회적 관계 등에 대한 면밀한 상담을 거쳐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환자가 치료를 결정하면 8주 동안 매주 월~금요일 센터를 오가면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집중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프로그램은 체조, 명상, 전문의 강의, ‘천주의 성 요한 알코올상담치료센터’가 펴낸 책 ‘회복에 이르는 길’ 정독, 주장(의사소통) 훈련, 스트레스 관리, 미술치료, 역할극, 환자 간 음주 경험 공유, 환자들의 과거 실수와 아픔을 치유하는 영적 회복 등 다양한 활동으로 구성돼 있다. 8주간의 프로그램 참여에 드는 비용은 70여만 원.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도 단주(斷酒) 의지가 확실한 환자의 경우 센터 측이 사회사업팀과 협력해 무료 지원을 해주기도 한다.

7월 2일 현재 센터에서 치료받는 환자는 8명. 이들 외에도 지난 12년 동안 환자 403명이 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들 가운데 30~40%가 단주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통상 치료 후 재발률이 70~80%에 이르는 현실을 감안할 때 센터의 치료 성공률은 매우 높다는 게 센터 측 설명이다. 환자 연령대는 20~60대이며 직업도 자영업자, 전직 교수, 대학생 등 다양하다. 센터에서 이들을 ‘환자’가 아닌 ‘교육생’으로 호칭하는 것도 치료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줄이는 데 한몫한다.

환자들은 매일 출퇴근 과정에서 음주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그러한 유혹을 극복하는 일은 되레 이들에게 재활의지를 북돋우는 작용을 한다. 특히 치료 중에도 사회생활을 중단하지 않고 지속함으로써 사회 재적응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환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낸다.

후속 모임에 2년간 참여 가능

환자들은 8주 프로그램이 끝나더라도 원할 경우 단주를 지속할 확실한 동기 제공을 위한 후속 모임(After Care)에 2년간 참여할 수 있다. 단주친목모임(A.A), 가족친목모임, 성인자녀모임, 청소년 자녀모임 등 각종 자조 모임에 참석해 치료 못지않은 체계적인 관리와 결속을 유지하는 것. 이러한 모임이 환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이 함께 알코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센터 측은 치료 경험의 공유, 상담, 만남 장소 제공, 관련 도서 대여, 다양한 교육자료 제공 등을 무료로 지원한다.

2009년 4월부터 센터장을 맡은 이수정(54) 부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알코올의존 치료엔 환자 본인의 자발성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환자가 단주하는 동안 의존대상인 술을 대체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도록 돕는 일도 꼭 필요하므로 가족, 지인의 지지가 중요하다”면서 “술을 음식처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는 반드시 개선돼야 하며 청소년기부터 확고한 알코올 관련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문의 : 부천성모병원 알코올의존치료센터 032-340-7215~6

알코올의존치료센터 통해 새 삶 찾은 50대 남성의 단주 성공기 요약

“한잔의 유혹 주말이 고비…반주도 절대 금물”


‘그놈의 술’ 출퇴근하면서 단주(斷酒)
나는 의류 편직 기술자로 일하는 경기 부천시 역곡동의 53세 남성 박○○다. 지금은 아내, 대학생 아들과 행복한 삶을 살지만, 2009년만 해도 하루하루가 희망 없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30년 음주 경력 탓에 오십 넘어 남은 건 술 없인 살 수 없는 알코올의존 상태. 소주 한두 병이라도 반드시 마셔야 하루를 넘길 수 있었다.

처음 술을 입에 댄 것은 스물한 살 때다. 담배도 함께 피웠다. 남자가 사회생활하려면 술을 당연히 마실 줄 알아야 한다고 여겼다. 평소 모임에서 소주 두세 병은 거뜬히 마셨다. 어느 모임에서든 내가 가장 많이 마셨고, 남들이 남긴 술까지 싹쓸이했다. 그래도 허전해 혼자 새벽까지 주점이나 포장마차 등에서 2차, 3차 음주를 했다. 그게 서서히 습관으로 변해갔다.

성격이 내성적이라 누구와 대화할 때마다 술 힘을 빌렸던 것 같다. 하루도 술 깰 틈이 없었다. 그러니 왜 문제가 없었겠는가. 술 마시면 특히 목소리가 커졌다. 집에 와서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은 물론, 출근해야 하는 아내를 붙들고 밤새 횡설수설한 적도 많다. 아들은 공부를 잘했는데, 내가 하도 술을 먹고 다니니 대입수능시험도 보지 않았고, 결국 나중에 지방대에 진학했다. “아빠 보기 싫어서 일부러 지방에 간 거냐?”라고 물으면 그냥 웃고 만다.

아내는 술을 끊게 하려고 700만 원인가를 들여 굿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허사였다. 그러다 아내가 답답한 마음에 상담이라도 해보자며 우연히 전화를 건 곳이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이었다. 그곳에서 출퇴근 치료에 대해 알게 됐는데, 정말 운명처럼 느껴졌다.

병원 수녀님과 먼저 면담을 했다. 2009년 6월경이었는데, 솔직히 면담 후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어 가기 싫었다. 아내도 마음대로 하라며 포기하는 듯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엔 새로운 인생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1년 365일 내내 술 냄새를 풍기는 가장과 직장동료를 누가 옆에 두고 싶겠는가. 이대로 가다간 가족, 직업, 인생 다 잃고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그해 12월부터 치료에 들어갔다. 치료를 결정한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혼자 막걸리 세 병을 마셨다. 치료 결정을 해놓고도 술과의 이별주를 마신 셈이다. 하지만 그건 내 생애 마지막 술이 됐다.

8주 동안 알코올의존치료센터를 오가며 집중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센터 동기끼리는 치료차 병원 오가는 것을 ‘등하교’라고 불렀다. 가끔은 가족과 함께 상담을 받기도 했다. 처음 일주일간은 힘들었는데, 점차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지각 한번 없이 매일 등하교했다. 8주 프로그램을 마친 후에도 센터에서 환자를 위한 이벤트나 행사를 열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출퇴근 치료는 주말이 고비다. 평일엔 센터에서 교육받고 마음을 다잡기 때문에 자제력을 유지하지만, 주말엔 통제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신무장을 단단히 했다. 강제로 입원해 치료받아야 했다면, 아마 반발심이 생겨 단주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치료받으니 더 효과적이었다.

센터를 찾은 후 지금까지 단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래도 ‘술’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서 평소 ‘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도, 사용하지도 않으려 한다. ‘술’이라는 단어를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

단주에 성공한 후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술을 끊고 나니 ‘세상을 참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서 지금은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쓴다. 직장도 다시 잘 다니게 되고, 가정에도 웃음이 많아져 행복하다. 다른 알코올의존 환자들에게 혼자 술 먹는 행동을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나도 술을 감추고 먹었다. 하지만 가정에서 혼자 마시는 술은 알코올중독의 수렁으로 빠지는 지름길이다. 반주로 먹는 것도 습관이 돼 좋지 않다. ‘한두 잔 술은 보약’이라는 말, 이젠 없어졌으면 한다.




주간동아 2012.07.09 845호 (p50~51)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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