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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그 많던 비보이는 어디로 갔을까 02

“세계대회 우승 기쁨은 잠시 차가운 현실만 남았다”

인터뷰 | 가라오케에서 춤추는 비보이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세계대회 우승 기쁨은 잠시 차가운 현실만 남았다”

“세계대회 우승 기쁨은 잠시 차가운 현실만 남았다”
가라오케에서 일하는 비보이를 수소문했다. 하지만 비보이들은 쉽사리 연락처를 주지 않았다. 자칫 모든 비보이가 가라오케에서 일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우려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비보이는 혹여 가라오케에서 일하는 비보이들이 취재 때문에 상처받을까 싶어 더욱 망설였다. 하지만 연락처를 얻자 섭외는 생각보다 쉬웠다. 당사자는 잠시 멈칫하다가 ‘쿨’하게 시간을 내줬다.

6월 25일 서울 강남에 있는 한 비보이 연습실. 비보이 20여 명이 몸을 풀고 있었다. 외부인이 들어서자 비보이들이 일제히 인사를 건넸다. 태릉선수촌처럼 위계질서가 있는 곳인가 싶었지만, 그들의 복장과 헤어스타일에서 자유가 묻어났다. 기자는 이곳에서 2007년 UK비보이챔피언십(영국) 우승, 2008년 UK비보이챔피언십과 배틀 오브 더 이어(독일) 준우승에 이어 일본, 프랑스 등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실력자 비보이를 만나 그간의 삶을 물었다.

▼ 가라오케에서 10년째 일한다고 들었다. 왜 그곳에서 일하나.

“세계대회에서 우승해도 자격증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춤을 잘 춰도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학원에서 춤을 가르쳐도 월급이 70만~80만 원밖에 안 된다. 가라오케에서 일했던 친구들이 여기에서 시간 낭비할 바에는 춤에 더 투자하겠다며 그만두는데, 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쉽게 그만둘 수 없었다. 이만한 벌이가 없다.”

▼ 지금도 가라오케에서 춤을 추나.



“예전에는 룸에 들어가서 춤을 췄지만 지금은 비보이 20명 정도를 관리한다. 룸에서 춤추는 친구들이 팁을 받아오면 그중 10%를 받아 한 달에 200만 원 정도 번다. 지금도 가끔 비보이 친구들이 펑크를 내면 그 자리를 메우느라 춤을 추는데, 손님에 대한 스트레스가 예전보다 덜하긴 하지만 여전하다. 지금은 애들 관리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연습하기 위해 가라오케에서 일 시작

▼ 언제부터 비보잉을 했나. 춤을 시작한 이유는 뭔가.

“중학교 2학년 때 그룹 R.ef의 박철우 씨가 헤드스핀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서 따라 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재미있더라. 체했을 때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시원했다. 1년간 혼자 그 춤의 녹화테이프를 수없이 돌려보며 연습했다. 비보잉은 스핀(도는 행위)을 많이 하기 때문에 바닥이 매끄러운 병원 로비에서 주로 춤을 췄다.

▼ 비보잉을 오래하면 몸이 안 좋아질 것 같다.

“나는 물구나무서서 두 다리를 땅으로 내려오게 하는 카포에라 프리즈(동작)를 많이 하다 보니까 허리가 많이 안 좋다. 지금도 물리치료를 받고 있지만 며칠 전에도 연습을 좀 무리해서 했더니 통증이 심하다. 척추뼈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안다.”

▼ 현재 활동하는 팀에 들어온 건 언제인가.

“중학교 2학년 때 텀블링을 잘한다는 이유로 이 팀에 합류했다. 연습시간에는 형들 춤을 따라 하기 바빴기 때문에 혼자 실력을 쌓으려면 10분이라도 빨리 연습실에 가야 했다. 수업을 가장 빨리 끝내는 고등학교를 택한 것도 그래서다. 연습실에서 새벽까지 연습한 뒤 바로 학교로 가서 경비아저씨 방에서 잤다. 친구들이 춤 실력을 인정해줘 기분이 좋았다.”

▼ 공부에 흥미가 없었나.

“읽은 책이 거의 없다. 영화 ‘친구’를 보고 나서 뒷얘기가 궁금해 원작을 읽은 게 전부다. 어렸을 때도 공부를 못해서 부모가 태권도를 시켰는데, 중학교 1학년 때 태권도 강습비를 낼 수 없어 끊었다. 이후에는 피자 배달,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연습시간이 부족해 그마저 그만뒀다. 결국 연습실에 오가는 비용을 마련하려고 친구들에게 돈을 꿨다.”

▼ 이후에는 용돈을 어떻게 충당했나. 계속 친구들에게 돈을 빌렸나.

“아니다. 그 일도 오래하니까 못하겠더라. 19세에 처음으로 가라오케 일을 했다.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도 춤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하루에 5만~10만 원을 벌었는데 팀 동생들에게 밥도 사줄 수 있고, 가족에게 도움도 줄 수 있어 좋았다.”

▼ 가라오케에서 일한 기분이 어땠나.

“비보이를 보려고 가라오케를 찾는 손님도 많아서 으쓱한 적이 있다. 하지만 손님이 ‘야, 테이블이 더러우니까 너희가 테이블 위에서 춤추고 돌면서 닦아봐라’고 하거나 바닥에 유리잔을 던져 흥건한 상태로 만들어놓은 뒤 그 위에서 춤추라고 하면 그때는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 요즘엔 손님이 진상이다 싶으면 대충 하고 나온다.”

꿈을 이루니 그 이상의 꿈 보이지 않아

▼ 그런 상황을 견디면서 연습한 이유가 뭔가.

“사람들에게 또 다른 나를 보여주는 게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대회에 서고 싶었다.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다. 기자들이 취재하러 올 것 같았고, 공연 섭외도 들어오고, 팬도 많아질 것 같았다.”

▼ 어떤 대회가 기억에 남나.

“모든 대회, 모든 공연이 기억에 다 남는다. 그만큼 공연할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처음으로 국내 대회에 출전했을 때다. 연습실에서 새벽까지 연습하다 잠들었는데 홍수가 나는 바람에 흙과 비를 퍼내고, 형들이 준 돈으로 사우나에 가서 씻은 뒤 어렵사리 출전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참 많이 고생했다.”

▼ 결국 10년 넘게 열심히 연습해 세계대회에서 우승했다. 소감이 어떤가.

“세계적인 대회에서 수만 명의 관중을 앞에 두고 그동안 쌓아온 실력을 보여주니까 기분이 좋았다. 긴장했지만 짜릿했다. 생전 처음 가본 외국을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 우승한 뒤에도 이 일을 계속한 이유는 뭔가.

“우승했다고 다른 세상이 열리진 않았다. 한국에서 유명해지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주목받지도 못했다. 단지 내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있었다는 기쁨만 남았을 뿐이다. 꿈을 이루고 나니까 그 이상의 꿈이 보이지 않았다.”

▼ 비보이들이 많은 뮤지컬을 만들어냈다. 뮤지컬은 안 만들었나.

“뮤지컬은 두 번 만들어봤다. 그런데 투자를 못 받아 진행이 안 되기도 하고, 임금을 떼이기도 했다. 현재 우리 팀 차원에서 뮤지컬을 준비 중인데 잘되면 좋겠다. 비보이 뮤지컬이라고 해서 비보잉만 들어가는 것이 아닌, 차별화된 뮤지컬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 나는 엄마랑 고깃집을 하면서 기회가 되면 가라오케도 하고 싶다.”

▼ 현재 꿈꾸는 미래는 세계대회 출전하기 전에 꿈꿔온 미래와 다르지 않나.

“그동안 내가 헛된 꿈을 꿨다고 생각한다.”

▼ 당신의 이름을 기사에 밝혀도 되나.

“가라오케에서 일하는 것이 공개되면 불이익이 있을 것 같다. 이름은 공개하지 않겠다.”



주간동아 2012.07.09 845호 (p16~17)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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