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1

2012.04.02

클래식 연주회야, 재즈 콘서트야

뮤지컬 ‘모비딕’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12-04-02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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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연주회야, 재즈 콘서트야
    동시대 공연예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장르 간 경계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그리고 배우를 비롯한 멤버들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뮤지컬에서도 이러한 양상이 나타나는데, 이 경우 어떻게 보면 ‘뮤지컬(musical theatre)’이라기보다 좀 더 확장적인 ‘음악극(music theatre)’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하다.

    뮤지컬 ‘모비딕’(조용신 대본, 작사, 공동연출/ 정예경 작사, 작곡, 음악감독/ 이소영 공동연출, 안무)은 틀에 박힌 관습을 따르기보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제작했다. 어찌 보면 클래식 연주회나 재즈 콘서트만큼 음악이 풍부하지만, 드라마와 캐릭터도 그에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이 작품은 여타 창작뮤지컬과 달리 많은 리딩 공연과 워크숍을 통해 공개적으로 진화했으며, 그 과정에서 배우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했다. 대체로 창작극 초연에는 배우의 구실이 크긴 하지만, 액터 뮤지션 뮤지컬인 만큼 배우들이 연기, 노래, 춤, 연주까지 모두 소화해야 해 그 구실의 폭이 더 넓었던 것이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기존 배우를 찾기 힘들어 연주자를 대거 영입한 덕에 오히려 배우들이 음악으로 캐릭터를 구현하고 연주의 현장성을 부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스마엘과 퀴퀘그가 배틀을 벌이는 부분의 음악은 작곡가가 정해준 큐에 따라 배우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원작소설에서처럼 흰 고래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헙 선장이 선원들의 만류에도 복수를 위해 모비딕을 쫓다 선원들과 함께 죽음을 맞는 내용이다. 사건 중심엔 에이헙이 있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화자(話者)는 혼자 살아남은 이스마엘이다.



    화자이면서 끊임없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스마엘이 가장 큰 활약을 보이긴 하지만, 나머지 등장인물도 개성을 골고루 발휘한다. 이스마엘과 퀴퀘그 역에는 초연 멤버 신지호와 이일근 외에도 윤한, 지현준이 더블캐스팅됐는데, 이들은 회마다 전혀 다른 느낌의 공연을 펼친다. 특히 지현준은 연주자가 아닌 연극배우 출신으로 근육질의 몸과 거친 연기로 퀴퀘그의 야성을 보여준다. 역시 연극배우 출신이면서 첼로 연주도 매끄럽게 하는 에이헙 역의 황건은 숙련된 연기력과 존재감으로 작품의 중심을 잡아준다.

    음악이 세련되고 격조 높으면서도 귀에 감기는데, 절묘한 타이밍에 악기를 배치한 편곡도 범상치 않다. 이번 공연은 한층 치밀한 드라마와 명확한 캐릭터로 완성도를 높였으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부각해 주제 의식을 명확히 했다. 모비딕을 정복하려는 에이헙과 그 행동을 무의미하게 보는 스타벅(이승현, 유성재 분)은 자연과 세상에 대한 상반된 가치관을 보여준다.

    클래식 연주회야, 재즈 콘서트야
    사건 중심에 서 있는 에이헙은 양면성을 지닌 흥미로운 캐릭터다.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운명에 맞서 숭고미까지 느끼게 하는 영웅적 인물이지만, 독단적인 생각과 욕망 탓에 인간뿐 아니라 자연과도 갈등을 빚는다. 그런가 하면 남태평양 섬에서 온 퀴퀘그는 자연과 교감하고 동화되는 존재로, 네레이드(이지영, 차여울 분)와 대화하면서 앞날을 예언한다. 그가 온전한 우정으로 이스마엘을 지켜내는 모습은 인간이 찾아야 할 감수성을 떠올리게 한다.

    단일 세트인 무대(여신동)는 그로테스크한 동시에 아기자기하며 여관, 멀쩡한 배, 난파선 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디자인이 돋보인다. 몸집을 키운 이번 ‘모비딕’ 무대에서는 짧지 않은 기간에 한 배를 타고 온 멤버들의 노력과 풍부한 정서가 빛을 발한다. ‘모비딕‘은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는 독창성을 보이며, 다양한 분야와 연령층의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에 충분한 공연이다. 4월 29일까지 연강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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