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9

2017.05.24

일코노미 전성시대

“욜로족은 작고 예쁜 걸 좋아해”

3명 중 1명 1인 가구, 소용량 식품  · 가전제품 봇물…경제 변화 주도하는 일코노미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7-05-22 14: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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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남 직장인 최모(38) 씨는 매주 금요일 오후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해 장을 본다. 주말에 먹을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저녁에 주문하면 그다음 날 아침 집으로 배달되는 서비스 덕에 주말 아침 먹을 게 없어 난감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마침 오늘은 쇼핑몰에 ‘전자레인지 히트 메뉴’ 카테고리가 새로 생겼다. 만두계의 신흥강자인 ‘OOO 딤섬’, 냄비에 물을 끓일 필요도 없는 ‘OOO 쌀국수’, 혼자 먹어도 부담 없는 양의 ‘OOO 피자’까지 ‘혼족’을 위한 메뉴가 즐비하다.

    햇빛이 좋은 토요일 아침, 냉동볶음밥을 프라이팬에 살짝 데워 식사를 해결한 최씨는 일주일 동안 쌓인 빨랫감을 미니세탁기에 집어넣고 동작 버튼을 누른다. 롤클리너로 이불을 청소한 뒤 빨기 번거로운 천 걸레 대신 청소용 물티슈로 방(원룸)을 닦는다. 점심은 집 앞에 새로 생긴 ‘1인 보쌈집’에서 든든히 먹고 CGV 영화관으로 향한다. 1인 관객용 싱글팩(음료+즉석구이오징어·치즈볼·팝콘 중 택1)을 사 영화를 관람하면서 먹은 뒤 어제 쇼핑몰에서 주문한 음식 가운데 뭘 해치울까 고민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혼자만의 삶이 트렌드가 된 시대에 살고 있다. 혼자 밥 먹고, 술 마시고, 영화 보는 것쯤은 이제 예삿일이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1인 가구는 540만(28.1%)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2인 가구가 그 뒤를 이어 전체의 27.5%인 529만, 3인 가구는 408만으로 21.2%, 4인 가구는 336만으로 17.5%이다. 3·4인 가구보다 1인 가구가 더 흔한 셈이다. 우리나라 1인 가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10년 만에 미국, 스페인 등을 따라잡았다. 2020년에는 3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그래프 참조)

    최근 불고 있는 ‘일코노미’ 바람은 이러한 1인 가구의 증가와 연관이 깊다. ‘1인’과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의 합성어인 일코노미는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먹을거리, 가전, 가구 등 혼족을 위한 제품이 넘쳐나고, 1인 가구를 겨냥한 마케팅 또한 보편화됐다. 싱글을 보는 시선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보편적이다 보니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걸 고독하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혼밥’ ‘혼술’ ‘혼놀’ 같은 신조어가 생길 만큼 일코노미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들 역시 ‘궁색함’ 대신 ‘퀄리티’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1인 가구를 일컬어 일명 ‘포미(FOR ME)족’이라고 한다. 포미족이란 건강(For Health)·싱글(One)·여가(Recreation)·편의(More Convenient)·고가(Expensive)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딴 신조어로, 자신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람을 의미한다.


    편의점 매출, 백화점 따돌려  

    여기서 더 나아가 최근에는 ‘욜로(YOLO)족’이란 신조어도 생겨났다. ‘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로, ‘한 번뿐인 인생, 후회 없이 살자’를 삶의 모토로 삼는 이들을 일컫는다. 욜로족은 남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소비활동을 한다. 미래를 위해 저축하기보다 지금 당장의 행복을 추구해 여행 같은 취미생활이나 자기계발에 아낌없이 돈을 투자하다.



    서정주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1인가구연구센터장은 “최근 들어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결혼하지 않은 채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성인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도 1인 가구를 새로운 소비 대상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2030세대 1인 가구의 평균소비성향은 66.1%에서 73.6%로 증가했다. 4050세대의 소비도 57.7%에서 64.7%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소비성향은 가처분소득 중 소비로 지출한 비중을 나타내는 지표다. 2030세대의 가처분소득은 5.6%밖에 늘지 않았지만 소비 지출액은 18.2%나 증가했다.

    혼족, 포미족, 욜로족 등 이름은 다 달라도 이들의 공통된 소비패턴은 편리함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 식사할 때도 직접 요리하는 것보다 외식이나 가정간편식, 배달음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외식비는 2인 가구의 인당 외식비보다 27% 높고 동결식품, 조리된 반찬 등 가공식품의 소비도 51%나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최근 식품업계는 1인 가구를 겨냥한 소용량·소포장 패키지 제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CJ제일제당이 출시한 ‘햇반 컵반’은 컵 형태의 용기에 밥과 국, 덮밥 소스 등을 함께 담은 제품이다. 풀무원도 건강을 생각하는 1인 가구를 겨냥해 연두부에 토핑을 올린 ‘컵 안의 맛있는 두부 한 끼’를 출시했다. 농심켈로그는 기존 대용량 패키지가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해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켈로그 컵 시리얼’을 내놓았고, 델몬트는 제철 과일을 한입 크기와 스틱 형태로 담은 ‘과일보감’을 판매 중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양이 많은 과일을 잘 먹지 않는다는 점에서 착안해 파인애플, 포도, 바나나 등을 먹기 좋게 소포장했다. 그 밖에도 빙그레는 아이스크림 ‘투게더’ 출시 이후 42년 만에 처음으로 1인용 소용량 제품 ‘시그니처 싱글컵’을 선보였고, 동원은 ‘혼술’하는 일코노미족을 위해 90g 소량의 안주 캔 제품 ‘동원 포차’ 시리즈를 내놨다.

    소규모 포장이 대세를 이루면서 편의점 매출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은 얼마 안 되는 물건을 사려고 굳이 멀리 있는 대형마트까지 가지 않기 때문이다. 값이 좀 비싸더라도 집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편의점에서 필요한 양만큼만 구매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편의점의 개인 신용카드 지출액은 2010년 1조931억 원에서 2011년 1조5825억 원, 2014년 2조8929억 원 등으로 해마다 쑥쑥 성장하고 있다. 이는 같은 기간 백화점 매출액(1조4197억 원)보다 훨씬 큰 수치다. 

    생활가전 구매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시장에서 제품 대부분이 ‘혼수용 가전’에 포함됐지만 최근에는 1인 가구용 가전을 아예 따로 분리해놓았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작고 예쁘다’는 것. 기능과 디자인 등이 혼수용 가전과는 차이가 있다. 수입 생활가전 브랜드 ‘스메그’는 최근 독신남녀 사이에서 ‘꿈의 가전’으로 꼽힌다. 특히 디자인이 독특한 소형 냉장고는 인테리어용으로도 손색없어 수백만 원대 고가임에도 불티나게 팔린다. ‘가전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일본 브랜드 ‘발뮤다’도 토스트 전용 오븐으로 히트를 기록 중이다. 아침 식사는 주로 토스트로 때우는 1인 가구를 겨냥한 상품이다.

    벽걸이 세탁기와 의류관리기, 의류건조기 수요도 늘고 있다. 벽걸이 세탁기는 기존 세탁기보다 크기가 작아 용도에 맞는 장소에 쉽게 설치할 수 있고, 적은 양의 빨래를 할 수 있다. 동부대우전자의 ‘미니’는 처음 출시된 2012년 2만 대가 팔렸고, 이후 해마다 2배 이상 성장해 최근에는 누적 판매 15만 대를 돌파했다. 매일 세탁할 수 없는 옷을 관리해주는 의류관리기도 인기다. 의류관리기는 코트나 니트 등 세탁이 까다로운 겨울 의류에 배인 냄새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물론, 다림질 기능까지 탑재했다. 의류건조기도 간편함을 추구하는 1인 가구 사이에서 각광받는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의류건조기 판매 규모는 지난해보다 3배 이상 증가한 30만~4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가구업계도 싱글남녀를 잡으려는 움직임을 빠르게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침대를 들 수 있다. 기존 1인용 침대는 주로 미취학 아동 혹은 청소년이 판매 대상이었지만 최근에는 20, 30대 이상 성인과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1인 가구 지원, 고령화에만 초점

    혼밥·혼술·혼영에 이어 최근에는 ‘혼행’(혼자 하는 여행)도 대세다. 최근 제주항공이 국제선 탑승객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28%가 ‘혼자 여행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항공권 예매 성향을 묻는 질문에는 4명 중 1명이 미리 여행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예약을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17%는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바로 항공권을 구매한다고 답했다.
    한 여행사 통계에 따르면 2015~2016년 항공권 판매량의 절반이 1인 예약으로 나타났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최근 국내 호텔업계도 혼자 숙박을 즐길 수 있는 1인 패키지 상품을 잇달아 출시했다. 하루 정도는 고급호텔에 머물며 ‘힐링 타임’을 갖고 싶어 하는 심리를 파악한 결과다. 흔히 1인 예약 시 싱글 요금(charge)이 붙지만 패키지 상품은 그렇지 않다. 

    한편 1인 가구의 소비패턴이 ‘나’ 중심으로 고급화되고 있다고 이들이 노후 걱정까지 외면하는 건 아니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17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1인 가구는 경제적 주거 안정과 노후를 위한 ‘주택구입자금’ 및 ‘노후자금’ 마련에 걱정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예·적금 등 안전자산 투자 비중이 높고, 건강 및 노후에 대비한 ‘암·연금·질병 보험’ 니즈가 큰 것으로 파악됐다.

    독신주의자인 30대 후반의 한 여성은 “앞으로도 계속 나를 위해 살기로 마음먹은 이상 ‘궁상맞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미래가 걱정되지 않은 건 절대 아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월급의 절반은 적금과 펀드로 지출한다. 그나마 안정된 직장이 있다는 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1인 가구를 위한 정부 지원정책이 ‘고령화’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대표적으로 2인 가구 이상 ‘가족중심’의 조세제도를 꼽을 수 있다. 지난해 이윤주 서울시청 공인회계사와 이영한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가 발표한 논문 ‘가구 유형에 따른 소득세 세부담률 차이 분석’에 따르면 부양가족이 없는 독신가구 근로자는 홑벌이 4인 가구 근로자에 비해 평균 52.7% 세금을 더 낸다. 중간소득 구간(연소득 4000만~6000만 원)으로 따졌을 때 독신가구가 홑벌이 두 자녀 가구(4인 가구)에 비해 연평균 79만 원 세금을 더 내고 있다. 비혼 처지에서는 ‘싱글세’를 내고 있다고 여길 만하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비혼이 더는 예외가 아닌, 보편화되고 있는 요즘 유자녀 가정에만 사회복지 혜택이 돌아가는 건 명백한 차별이다. 1인 가구를 위한 정책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혼족 역시 ‘관태기’(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따른 싱글라이프가 아닌, ‘건강한 개인주의’로 삶의 패턴을 정착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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