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1

2011.11.07

어른들은 몰라요, 불안과 우울증 앓는 것을

대한민국 청소년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입력2011-11-07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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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청소년의 정신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11월 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집계한 전국 진료인원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과 재발성 우울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받은 10대(만 10∼19세) 청소년 수는 2만3806명으로 5년 전보다 15.3% 증가했다. 청소년 전체 인구가 같은 기간 1.1%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우울증이 의심돼도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도 많은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더 많은 청소년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

    분노와 적개심 키우는 아이들

    어른들은 몰라요, 불안과 우울증 앓는 것을

    청소년 우울증은 조기 발견과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

    청소년 사이에서 우울증이 증가하는 가장 주된 요인은 스트레스다. 2011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조사 대상 15∼19세 청소년 3089명 가운데 “평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한 이는 70.3%에 이른다. 2009년보다 10.3%포인트 증가했다. 이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공부(55.3%), 외모(16.6%), 직업(10.2%), 가정환경(6.8%) 순으로 나타났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필자는 진료 현장에서 마음이 아픈 청소년을 많이 만난다. 집안이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아이가 많다. 객관적으로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 집안의 아이도 주변의 잘사는 아이를 보고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우리 집이 제일 가난해요”라고 말하면서 “부모님은 왜 이 동네로 이사 왔는지 모르겠어요. 제대로 가르칠 능력도 안 되면서 괜히 저한테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요”라는 말로 부모에 대한 원망을 덧붙인다.

    자신의 노력보다 부모의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때론 할 말을 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사는 집 아이를 쫓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과 분노가 생기고, 그 결과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울증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 중 하나가 ‘학습된 무기력감(Learned Helplessness)’이다. 자신은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건만 고액 과외에 정밀한 학습 지도까지 받는 부자 친구에게 뒤처지는 경험을 한두 번 하다 보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저 친구를 따라갈 수 없어’라는 무기력감이 아이를 감싼다. 한 아이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지금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 중에 집안이 부유하지 않았던 사람이 별로 없던데요. 나경원과 안철수도 다 부자였고, 지금도 부자잖아요. 박원순도 변호사라면서요?”

    필자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본인이 열심히 노력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도 많아.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도 그랬어”라고 말했지만, 아이에게서 돌아오는 반응은 가히 냉소적이었다.

    “그분들은 옛날 사람이고, 자식들은 잘살 것 아니에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시선이 이처럼 곱지 않은데, 이 아이가 자라 사회에 진입할 때면 더 큰 장벽을 느껴 좌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아이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의 마지막 한마디가 필자의 가슴을 후벼댔다.

    “선생님도 공부 잘했으니까 의사가 된 거고, 집에 돈이 많으니까 병원도 차린 거잖아요. 한 달에 얼마 버세요?”

    우울증을 앓고 무력감에 빠진 상태지만 가진 자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얼마 전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홍익대 부근 호프집에서 남녀 대학생 40여 명을 만났다. 서울시장 참패가 2040의 여권을 향한 분노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젊은 세대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한 자리였다. 이때 한 여학생이 “한나라당은 부자들만 잘살게 하는 부자정당 이미지라서 싫다. 우리를 안아주지 못하는 당 같다”고 말했다.

    그들에 대한 치료는 어른 모두의 몫

    어른들은 몰라요, 불안과 우울증 앓는 것을

    9월 2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제 정치인은 젊은 20대 유권자뿐 아니라 차기 선거 때 유권자가 될 10대 청소년의 마음도 살펴야 한다. 지금 10대 청소년이 이대로 자란다면, 현재의 20대보다 기득권 세력에 훨씬 더 반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부잣집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할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다 자산이 많은 자본가 그룹과 아버지가 공부를 잘해서 전문직, 대학교수, 기업 임원, 고위 공무원 등으로 성공을 거둔 전문가 그룹이 그것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전문가 그룹은 부잣집이라기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자본가 그룹의 아이는 워낙 소수여서 잘 만나보지 못한다. 가끔 충동 조절 또는 욕구 조절이 어렵거나 부모님과의 불화로 필자를 방문한다. 그러나 전문가 그룹의 아이는 예상외로 우울증 및 불안장애를 많이 겪는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부모의 기대가 부담스러워요” 내지는 “어렸을 적엔 아빠처럼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아빠처럼 되지 못할 것 같아요”라는 내용이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어른들로부터 “너도 커서 이다음에 아빠처럼 변호사가 돼야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당연히 변호사가 되는 줄 알았건만, 현재 자신의 성적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아직 성적을 올릴 기회와 시간이 많다는 필자의 위로도 아버지의 실망 섞인 한숨 소리와 간헐적인 윽박지르기에 묻히고 만다.

    과도한 경쟁 사회, 너나 할 것 없이 좋은 직업을 갖고, 돈을 벌려고 하며, 남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려 하는 작금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선 소수의 성공한 사람과 다수의 실패한 사람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너무 일찍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간파한 것인가. 인생의 쓴맛과 사회의 냉혹함을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벌써부터 불안과 우울증에 몸살을 앓고 있다. 우울증의 또 다른 발병 이론 중 하나가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의 불일치’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이상은 부모님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부모님 정도에 머무르는 것인데, 이마저도 현실의 자기 모습과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하니 좌절과 우울감이 생겨난다.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자신이 자라던 때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면서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인 자녀가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는 데 대해 실망한다. 아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비난과 질타를 쏟아내고, 갈등은 기어이 파국으로 결말을 맺는다.

    가정은 사회의 축소판이요, 청소년의 심리상태는 어른들 마음의 계기판이다. 부의 창출과 재화의 생산이 사회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그것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때 우리 사회에는 구성원의 행복과 안녕이 넘치게 된다. 이때야 비로소 청소년 우울증의 발병도 줄어들 것이다. 결국 청소년 우울증을 고치는 일은 이 사회 어른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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