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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또 하나의 가족 이야기, 개가 사람을 만났을 때 02

‘개 세러피’를 아십니까?

사람의 몸과 마음 치료에 이용…선진국에선 치료견·치료사 양성

  •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l.com

‘개 세러피’를 아십니까?

‘개 세러피’를 아십니까?

한국동물병원협회 김광식 부회장.

길을 가다 보면 몸이 불편한 청각·시각 장애인의 귀와 눈 구실을 하는 도우미견과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충직함, 영민함으로 따지자면 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단 생각도 듭니다. 개는 여느 가축과 달리 사냥을 돕고, 위험을 알리며 재산도 지켰죠. 부의 상징이기도 했답니다. 요즘은 인간의 벗으로 반려동물이라고 부릅니다. 코로 범죄자를 찾아내고, 지진 같은 재해를 인지하는 구실도 하죠.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개는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데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합니다. 개 매개 치료(Dog assisted therapy)라고 하지요. 고양이, 말, 돌고래, 새 같은 동물도 치료에 이용하지만 개의 능력이 특히 뛰어납니다. 개 매개 치료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아픈 사람과 소통하는 개

“고등학생 때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을 읽다 개 매개 치료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진로를 결정하는 계기가 됐죠.”

정은지 씨는 건국대 수의학과에서 공부한다. 2009년 예과 1학년 입학과 동시에 동물 매개 치료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삼성에버랜드가 치료도우미견 센터를 운영했지만 교육을 받은 개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교수진과 학생은 자신들이 키우는 개 가운데 적합한 개를 선별, 교육한 후 치료견으로 투입했다.

“중곡사회복지관에서 자폐아동을 대상으로 놀이치료를 진행했어요. 쓰다듬기, 인사하기, 산책하기 같은 간단한 관계 형성 프로그램은 물론, 게임이나 패션쇼 같은 놀이 프로그램을 병행했죠. 하나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수줍음을 타 말도 잘 못하고 뒤로 숨곤 했어요. 반년 만에 스스로 반장을 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차렷’ ‘경례’ 같은 구령을 앞장서서 붙이는 활발한 아이로 바뀌었어요. 정말 감동적이었죠.”



정씨는 자폐아동의 마음을 여는 데 치료견이 큰 도움을 줬다며 웃었다.

부드러운 감촉의 개와 자연스레 스킨십을 나누면서 친밀감을 느낀 아이들은 개를 매개로 소통을 익힌 뒤 사람과도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감정을 나눴다.

정씨는 자신의 개를 치료견으로 만들려 했으나 실패했다.

“개가 너무 힘들어 해서 그만뒀어요. 버려진 강아지였는데, 치료견 훈련 과정을 거쳤어도 녀석 나름의 상처가 있는 터라 일반인에 비해 돌발 행동이 많은 자폐아동을 감내하기엔 역부족인 듯했어요. 아이들이 치유받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뿌듯한 일이지만 개가 받는 스트레스가 워낙 컸죠.”

‘개 세러피’를 아십니까?

사람은 개와의 유대를 통해 병을 치료하거나 새 삶을 살 수 있다.

엔도르핀 분비 늘어 불안 사라져

글로리병원(인천 부평구)은 2007년부터 개 매개 치료를 시작했다. 정신분열병 진단을 받은 환자를 상대로 개 매개 치료를 진행한 결과, 환자의 문제 해결 능력이 향상하고, 대인관계가 좋아졌다. 자아 존중감도 커졌다. 같은 병원 어린이재활치료센터의 개 매개 치료에서도 주변 사물을 무서워하던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변화했다.

글로리병원은 개에 거부감이 없는 경증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던 치료 범위를 중증장애 환자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동물매개치료복지협회는 장애인 특수학교와 복지관에서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지체장애, 지적장애, 청각장애, 시각장애 등 환자 상태에 따라 맞춤형으로 훈련받은 개를 현장에 투입한다.

의료진이 참여한 ‘치료’의 형태는 아니지만, 동물문화사업단 ‘주주메카’는 일반인과 어린이를 상대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인간과 개의 유대(Human-dog bond)는 놀랄 만큼 폭넓다. 개 매개 치료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영역으로 주목받는다.

개가 사람에게 심리적 안정과 충만함을 부여하고 책임감과 사회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개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안정감,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홀로 사는 노인은 개를 키우면서 고독감에서 벗어나 삶의 동기를 부여받고 정서적 풍요로움을 누린다. 한자녀가정에서 자라는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개 매개 치료 가능성 무궁무진

김지현(53·서울 광진구) 씨는 올 초 아파트 앞동에 홀로 사는 어머니(79)에게 개를 선물했다. 개를 키운 뒤 어머니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활기를 되찾은 데다 머리숱도 늘었어요. 말씀도 많아지셨고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가 약해진 탓일까, 세상살이가 각박해진 탓일까. 사람보다 개와의 관계에서 정신적 안정을 찾는 이가 늘고 있다.

우울증을 앓던 K씨는 정신과 치료를 반복해서 받았다. 약을 먹을 때는 우울한 기분이 사라졌지만, 약을 끊고 수 주일이 지나면 기분이 가라앉았다. 치료견을 입양해 키우면서 거짓말처럼 우울증이 사라졌다.

개 매개 치료는 전문 의료인이 주도하는 엄연한 치료다. 의료진이 질환에 따라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기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주도록 훈련받은 개를 활용하는 ‘개 세러피(Dog animal therapy)’다. 개를 키우는 것 같은 일반적 매개 활동과 달리 환자의 신체적, 사회적, 감성적, 인지적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며, 환자 상태에 따라 맞춤형 목표를 설계하고 단계적으로 치료 효과를 높인다.

개를 매개로 심신 질환을 개선하는 개 세러피는 개를 돌보고 함께 놀면서 개와의 접촉 횟수를 늘려 나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단지 개를 보고만 있어도 증상이 호전되는 경우가 있다. 개와 친밀감을 형성하면 체내의 엔도르핀 분비량이 늘어나 불안감이 사라지고, 심장 박동수가 안정을 찾으면서 정서적으로 편안한 상태가 된다. 심신의 안정을 요하는 정신질환이나 노인성 질환 환자, 장기간 치료를 요하는 만성 환자의 증상 완화는 물론 임종을 눈앞에 둔 말기 환자의 호스피스 과정에 이르기까지 개 매개 치료를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일본, 미국 등지에서는 개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시설도 있는데, 개와 함께 생활하면서 조울증, 우울증, 정신분열병, 자폐증 같은 질환뿐 아니라 육체적 질병도 완화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애견사망증후군(상자기사 참조)에도 개 세러피가 효과를 보인다.

한국동물매개치료복지협회 이형구 회장은 수십 년 동안 애견학교를 운영하면서 장애인도우미견 훈련을 해왔다. 그 인연으로 개 매개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협회 박은영 치료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개 매개 치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환자의 지적·육체적 능력을 향상하고 치료하는 영역으로 접근하기보다 단순한 놀이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개 매개 치료에서 활동의 중심은 치료 대상인 사람입니다. 개를 길들이는 능력을 갖췄다고 치료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대체의학으로서 개 매개 치료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법제화 등 제도적 지원 필요”

‘개 세러피’를 아십니까?
개를 이용해 환자를 치료할 때는 치료사뿐 아니라 전문 의료진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 치료견의 특성과 훈련 정도, 건강 상태가 중요하므로 치료에 투입하기 전 공격성과 친화력, 위생 상태, 건강 상태 등도 점검해야 한다.

대경대 구본창 교수는 단순히 개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개 매개 치료에 관심을 가진 학생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고 했다. 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치료’는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치료사가 되려면 개의 습성을 파악해 훈련시킬 수 있는 능력은 기본이고, 치유 과정에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동물병원협회 김광식 부회장은 병원 현장에 투입하는 치료견은 어릴 적부터 훈련받은 개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치료견은 사람으로 치면 여덟 살인 생후 4개월 이전부터 훈련을 시작해야 해요. 어릴 적에 목발을 짚는 사람도, 휠체어를 타는 사람도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죠. 그래야만 장애인에 경계심을 드러내지 않는 쪽으로 사회화합니다. 어릴 때 장애인, 어린이를 접해보지 않은 개는 그들을 낯선 존재로 인식하거나 공격적 존재로 파악하죠.”

김 원장은 반려견인 ‘샤인’을 생후 3개월 때부터 치료견으로 훈련했다. 샤인은 체력이 뛰어나고 충성심이 강한 보더 콜리 종. 영국의 ‘좋은 시민 개 만들기(Good Citizen Dog Scheme ·GCDS)’ 과정을 수료했으며, 2008년에는 삼성에버랜드가 진행한 치료도우미견 평가시험을 통과했다. 그는 “치료견을 더 많이 키우고 싶지만 제도적 지원이 부족해 한계가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개 매개 치료를 접한 환자와 보호자, 병원은 더욱 활발한 도움을 요청하지만 원하는 곳에 비해 치료견과 치료사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개 매개 치료와 관련해 수의사회, 동물보호협회, 보건복지부, 농림수산식품부와 토론회를 여는 등 법제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가시적 성과는 아직 없다. 민간단체에만 의존하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개가 가진 치료 능력을 더 많은 사람이 활용하기 어렵다. 선진국에서는 개 매개 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은 데다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로 치료견, 치료사를 양성하고 있다.

애견 집착 후폭풍

‘애도 반응’ 지나치면 우울증 등 정신병도 앓아


‘개 세러피’를 아십니까?
K씨는 결혼생활 내내 아이가 생기지 않아 10년 넘게 강아지 ‘예삐’에 의지해 살았다. 밤늦게 들어와 새벽같이 나가는 남편보다 예삐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김씨 부부는 서로의 호칭을 ‘예삐 엄마’ ‘예삐 아빠’라고 부를 만큼 개에게 애정을 쏟았다. 강아지를 키우게 된 계기가 불임이었던 만큼 예삐에 대한 애정은 각별함 그 이상이었다. 예삐는 멀어져가던 부부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자 노릇도 톡톡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일이 터졌다. 산책 중 김씨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예삐가 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것. 김씨는 그때부터 정신적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화장(火葬)을 하고 남은 예삐의 뼛가루를 화장대에 올려놓고 틈만 나면 만지고 우는가 하면, 사람과의 대화나 만남을 거부한 채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예삐의 사진과 장난감, 옷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일상사가 됐다. 대낮에도 술에 취해 있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먹은 음식을 토해내는 거식증 증상도 보였다. 우울증에 거식증, 알코올의존증이 겹친 것.

애견이 죽은 후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 이상으로 큰 충격을 받고 좀처럼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예가 많다. 일시적 감정이라고 가볍게 넘기기 쉽지만 당사자가 느끼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죽고 싶다”는 말만 되뇌는 김씨를 보다 못한 남편이 그를 정신과로 데려갔지만 처방받은 우울증 약은 이렇다 할 치료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심한 구역질 증상이 생기면서 정신과 치료에 대한 혐오만 커졌다.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이 같은 증상에 대해 “애완견이 죽은 후 나타나는 우울증과 상실감은 정상적인 ‘애도 반응’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고 3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에는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이 환자의 경우엔 상담만으로 치료할 수 없으니 반드시 약물치료를 동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씨는 음식을 거부하고 술만 먹은 결과 간에 이상이 생겼다. 알코올성 간염이 급속히 진행돼 간을 좀먹어 들어갔다. 마침내 내려진 진단명은 ‘회생 불능성 간경변’. 그는 입원해 있던 대학병원에서 퇴원 조치를 받고 집에 돌아와 대책 없는 나날을 보냈다.

이렇듯 오랜 기간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온 애완견의 죽음에 극심한 애도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늘고 있다. ‘애견사망증후군’이라는 질환도 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던 은유적 표현이 의료 신조어가 된 것.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애견사망증후군을 치료하려면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해결하기 위한 항우울제나 수면제 처방 등을 기본으로 하되, 마음 깊은 곳의 상처와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한 상담치료를 병행해 심리 상태를 안정시키고 슬픔을 극복하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혼 전부터 키우던 애견이 죽은 뒤 아랫배가 딱딱하게 뭉치는 증상을 보여 결국 임신 8개월 만에 제왕절개로 아이를 조산한 산모, 죽은 강아지가 다시 살아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말에 현혹돼 휴학하고 집을 나가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2년간 합숙했다는 대학생도 있다. 애견의 죽음은 어린이에게도 큰 상처를 안긴다. 초등학교 6학년 외아들을 둔 C씨는 애완견의 죽음 이후 아들이 겪은 혼란과 후유증 때문에 애완견을 키운 자체를 후회하고 있다. 며칠간 식사를 거부하며 울기만 하던 C씨의 아들은 그때부터 야뇨증이 시작돼 약 3년간 거의 매일 이부자리에 오줌을 쌌고, 말수가 적어지면서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학습 거부 반응도 보였다.

우성동물병원 이지연 원장은 “개는 주인과 절대적 복종, 신뢰를 포함한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젖먹이 아기와 엄마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주인 역시 애견에 대한 정서적 동일화를 이루면서 정신적으로 긴밀한 유대를 형성한다. 이런 상태에서 애견의 죽음이라는 극단적 형태의 이별을 맞으면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생을 함께한다는 의미의 반려동물은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즐거움을 선사할 때 본래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죽음 후의 슬픔이 도를 넘어 주인 인생을 뒤흔들 정도가 된다면 이미 반려동물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사람을 치유하는 개가 때로는 사람을 아프게도 한다.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주간동아 2011.09.19 804호 (p16~19)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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