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9

2011.08.08

神도 죽이고 살리고 거절하기 힘든 유혹

가상의 절대권력자

  • 허행량 세종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image@sejong.ac.kr

    입력2011-08-08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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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神도 죽이고 살리고 거절하기 힘든 유혹

    악마를 물리치고 세상을 구원하는 스토리의 게임 ‘갓 핸드’.

    비디오게임을 한번 시작하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게이머에게 절대권력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손가락만 까딱하면 누구나 가혹한 현실에서 벗어나 인간을 창조하는 신(神), 지구를 구하는 영웅,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 게임에 들어선 순간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를 손가락에 낀 절대권력자로 변모하는 것이다. 성적이나 업무 부담 같은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고 신이나 영웅, 슈퍼스타가 될 수 있는 유혹을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생명 창조와 진화는 게이머 영역

    천지와 생명을 창조하고, 인간과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은 지금까지 신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비디오게임에서 ‘신’은 죽었다. 신을 통제하는 것은 게이머이기 때문에 신의 운명 역시 게이머의 손에 달렸다. 과학이 신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면, 비디오게임은 신을 죽일 수 있는 셈이다.

    “천국이나 지옥을 믿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동화(fairy story)에 불과하다”고 말한 스티븐 호킹 박사는 과학으로 신을 죽이려 시도하지만, 게이머는 게임 속 스토리에서 신을 죽인다. ‘블랙앤화이트(Black and White)’ 게임을 하면 ‘선의 신(White)’과 ‘악의 신(Black)’의 조언을 받아 누구나 인간을 다스릴 수 있다. 신의 횡포에 맞서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다면 ‘갓 오브 워(God of War)’ 게임을 해보라. 대서사시 같은 모험을 통해 자신에게 비극을 안긴 신을 죽이고 복수할 수 있다.

    악마를 물리치고 세상을 구원하고 싶은 사람은 ‘갓 핸드(God Hand)’게임을 즐기면 된다. 신의 오른손을 가진 캐릭터가 악마의 힘을 가진 악당을 물리쳐 세계를 구한다. 이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게이머는 바로 신이 되거나, 신을 죽이거나, 신의 오른손을 가질 수 있다. 비디오게임은 신을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스포어(Spore)’ 게임은 세포에서 우주 단계까지 생명체가 진화하는 과정, 즉 생명 창조와 진화, 문명과 기술 발전, 심지어 우주 여행까지 다룬다. 이 게임은 생명의 근원과 진화는 신의 영역이 아니라 게이머의 영역임을 천명했다고 할 수 있다.



    ‘문명’게임은 게이머가 절대군주가 돼 초기 인류부터 미래 사회까지 전 세계 최고의 문명을 만들어가도록 허용한다. 게이머는 몇천 년을 살면서 최고 문명을 구축할 수 있다. 역사가 영웅으로 창조한 람세스, 측천무후, 나폴레옹, 엘리자베스 1세 등으로 변신해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자신만의 강력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다. ‘심스3’ 게임은 버튼만 누르면 소방관, 사설탐정, 의사, 유령사냥꾼, 건축가, 스타일리스트, 과학자, 문신예술가, 영웅, 발명가, 탐정, 폭력배 등 현실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직업으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풋볼 매니저’ 게임은 구단주, 감독, 에이전트 등 실제 축구 세계를 반영한 게임 구성으로 게이머를 유혹하는 데 큰 성공을 거뒀다.

    게이머는 게임 속에서 권력자, 신, 슈퍼스타로의 변신을 선호한다. 권력자 대신 핍박받는 계층이나 신 대신 악마, 슈퍼스타 대신 초라한 서민이 되는 것을 선택하는 게이머는 거의 없다. 사장 대신 실업자, 이사 대신 대리, 사모님 대신 가정부 등 단순직종을 선택하는 게이머 역시 거의 없다. 누구나 게임이라는 환상세계에서만이라도 세상을 구하는 영웅, 신마저 응징하는 영웅, 슈퍼스타가 되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영화 ‘아이언 맨’을 보면서 관객은 멋진 주인공에 감동받아 “정말 멋져”라고 반응하지만 거기서 그친다. 축구 천재 ‘메시’의 경기를 시청해도 그의 현란한 실력에 찬탄하며 ‘스타는 스타, 나는 나’라는 철저한 이분법만 절감할 뿐이다. 주인공을 부러워하면서도 영화나 축구경기가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비디오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게이머가 실제로 아이언맨, 메시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이들보다 훨씬 우월한 절대권력을 누릴 수도 있다.

    神도 죽이고 살리고 거절하기 힘든 유혹

    ‘갓 오브 워’, ‘블랙 앤 화이트’, ‘스포어’(왼쪽부터).

    대중의 갈망 충족시켜 줄 최고 무기

    과학자들은 정치·경제의 불안은 슈퍼맨의 출현을 선호한다면서 ‘9·11테러’ 이후 슈퍼맨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미국에서 집중 제작된 것도 이 같은 대중의 잠재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미국 부시 전 대통령이나 러시아 푸틴 전 대통령을 미국이나 러시아를 구하는 영웅으로 만화화한 것도 이 같은 잠재의식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정치·경제적 불안은 심화하므로 대중은 더욱 더 절대반지를 낀 슈퍼맨의 출현을 기다릴 것이다.

    비디오게임은 이 같은 대중의 갈망을 충족시킬 최고의 무기다. 현실에서는 학교 성적, 회사 업무, 친구관계, 이성관계로 스트레스받고 초라함 때문에 고개 숙이지만, 게임을 하는 순간 곧바로 신이나 영웅, 슈퍼스타로 변신해 통쾌하게 세상과 신에게 복수할 수 있다. 비디오게임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들어내 통제하고 조종하면서 ‘게이머=신, 영웅, 슈퍼스타’라는 황홀감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지상 최대의 오락물이다.

    물론 비디오게임을 마치면 비디오게임이라는 증강현실에서 현실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비디오게임이 허락하는 시뮬레이션 대상만은 게이머의 상상대로 실현된다. 그것도 단순히 구경꾼으로서 경험하는 게 아니라 게임이 설계한 환상세계를 직접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신이 돼 세상을 개혁하고 싶은가. 영웅이 돼 세상을 구원하고 싶은가. 슈퍼스타가 돼 세상 사람의 부러움을 마음껏 누려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비디오게임을 시작하라. 구경꾼에서 벗어나 세상을 시뮬레이션하고 싶다면 당장 비디오게임을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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