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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우리 집 벽장 속 고문서 알고 보니 국보 였네

장서각 100년, 왕실 및 민간 자료의 보고 … 관리와 연구 통해 숨겨진 가치 재평가

  • 김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holyjjin@donga.com

우리 집 벽장 속 고문서 알고 보니 국보 였네

우리 집 벽장 속 고문서 알고 보니 국보 였네

서울 창경궁에 있던 옛 장서각.

2006년 1월 4일 늦은 겨울밤,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의 한 오래된 가옥. 차가운 밤바람이 창호지 문을 스산하게 흔들었다. 모두가 잠든 시각, 경주손씨(慶州孫氏) 우재(愚齋) 가문의 종가인 그곳에 정체 모를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두운 그림자는 굳게 잠긴 별채로 향했다.

그날 밤, 별채에 보관 중이던 고서(古書) 수십 권과 400년 넘은 병풍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람 키보다 큰 병풍은 조선 정조 때 사하당(四河堂)이라고 불린 정연(鄭沇)의 작품으로, 가보였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를 흘려 쓴 것이다. 종손인 손성훈(56) 씨는 그해 4월 집에서 보관하던 남은 고문헌을 모두 한국학중앙연구원(경기 성남시 분당구) 장서각(藏書閣)에 기탁했다.

조선시대 사대부 출신 가문을 노리는 절도가 심각하다. 탄소절단기와 방탄유리절단기 등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특수 장비로 중무장한 절도범 앞에 오래된 한옥에 설치한 경보장치와 금고는 한낱 종잇장 같다. 문화재청 홈페이지는 신고된 도난 문화재 목록을 게시하고 있다. 범행 수법과 지역, 훔쳐간 문화재도 다양하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경남 합천의 한 서원에선 2008년 2월경 서고의 벽면을 완전히 부수고 침입해 500여 점의 고문헌을 절도해간 사건이 발생했다. 경남 진주하씨 집안에 들어온 도둑은 방탄유리로 된 최첨단 수장고를 특수 기계로 뚫고 3000여 점의 고문헌을 훔쳐갔다. 경북 영덕박씨 종택에선 2006년 2월 경 차량까지 동원해 종가에 비치한 현판을 뜯어간 절도사건이 발생했다. 현재 신고된 건만 547건, 한 건으로 도난당한 자료 수가 많게는 3000여 점에 달한다.

우리 집 벽장 속 고문서 알고 보니 국보 였네
종가에서 고문서 기증 줄이어



“집에 고문서가 많다고 소문나 도둑이 들었어요. 심지어 조상의 초상화를 훔쳐간 장물아비가 그 초상화를 사지 않겠느냐고 전화를 걸어온 일도 있었죠. 보관이 어려워요. 문화재청에서 준 금고를 단단하게 채워도 소용없더군요.”

손성훈 씨의 말이다. 조선시대 명가(名家)의 고충은 이뿐이 아니다. 무안박씨 무의공 가문의 종손 박연대 씨도 집에서 보관하던 고문헌을 2005년과 2006년 장서각에 대부분 기탁했다.

“우리 가문에 고문헌을 비롯한 유물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 고어(古語)로 돼 있어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후손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하지만 어떤 가치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거죠.”

이처럼 명가의 종손들이 각 가문에 내려온 고문헌의 전문적 보존과 학술적 연구를 위해 하나 둘 장서각에 기증 및 기탁하고 있다. 7월 5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새로 개관한 장서각은 고종이 계획했지만 끝내 실행하지 못했던 ‘제실(帝室)도서관’에서 비롯해 1911년 ‘이왕직장서각’으로 출발했다. 원래 왕실의 도서관 구실을 하다 이처럼 명망 있는 문중이 맡긴 고문서와 목판까지 아우르는 고문헌의 보고 구실을 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 의궤, ‘동의보감’ 초간본 등 조선왕실 자료 9만여 점과 민간 수집 고문헌 4만여 점을 소장 및 연구 중이다.

현재까지 장서각에 고문헌 등을 기탁한 가문은 43개. 1997년 처음 기증, 기탁을 받기 시작해 2011년 현재 4만여 점에 이르렀다. 기탁 자료 중에는 중국 송나라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국보 제283호 ‘통감속편(痛鑑續編)’과 17세기 조선 실학자인 서계(西溪) 박세당의 시문을 모은 보물 제1674호 ‘서계유묵(西溪遺墨)’ 등 문화재급 고문헌이 많다. 유일본이 대부분이고, 소장 및 전래 경위가 분명해 학술적 연구 가치도 크다. 안동 고성이씨(固城李氏) 종택은 2004년 5000여 점, 안동 전주유씨(全州柳氏) 종택은 1997·2003·2008년 3회에 걸쳐 3800여 점을 장서각에 기탁했다. 장서각에 있는 보물 25종 가운데 6종이 이 같은 민간 기탁본에서 선정됐다.

당쟁으로 아들 둘을 잃고 정치에 염증을 느껴 여생의 탈속(脫俗)을 추구했던 박세당의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담은 필첩인 ‘서계유묵’은 그의 후손 반남박씨 서계 가문이 장서각에 기탁한 후 2010년 보물 제1674호로 지정됐다. 박세당이 평소 동경하던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등의 시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우리 집 벽장 속 고문서 알고 보니 국보 였네
우리 집 벽장 속 고문서 알고 보니 국보 였네
또한 2003년 진주정씨(晉州鄭氏) 우복(愚伏) 가문에서 기탁한 동춘당필적(同春堂筆蹟)은 2010년 보물 제1672-1호로 지정됐다. 동춘당 송준길은 동양의 고전적 서법의 대가로 불리는 왕희지 서체를 한석봉 이후 새롭게 해석해 우암 송시열과 함께 양송(兩宋)으로 불린 서예가다. 둘 다 장서각에 기탁하지 않았으면 그 가치를 모른 채 어느 서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운명이었다.

우리 집 벽장 속 고문서 알고 보니 국보 였네

7월 5일 한국학중앙연구원 내에 새로 개관한 장서각.

인기 드라마 ‘추노’ 근거가 된 문헌

인기리에 방송된 드라마 ‘추노’의 근거가 됐던 문헌도 있다. 순흥안씨 사제당 가문에서 기탁한 고문헌 중에 노비를 찾아달라는 민원을 담은 문서가 있었던 것. 1460년 당시 순흥안씨가에서 전라도관찰사에게 전달한 문서였다. 순흥안씨 가문은 1519년 기묘사화 직전까지 남원의 대표적인 양반가문이었다. 기묘사화를 겪으며 정계에서 그 세력이 줄어들었다. 조선 정계를 피바람으로 뒤흔들던 격변의 시대에 조광조, 김정 등 사림파의 대표적인 기묘명현(己卯名賢) 24명의 글을 담은 ‘기묘제현수첩’도 순흥안씨 가문이 기탁한 고문헌이다. 보물 제1198호.

고성이씨 임청각 가문이 기탁한 고문헌도 주목할 만하다. 임청각 가문은 안동 일대에 지역문화를 주도한 대표적인 양반 가문. 청일전쟁 직후 의병활동 및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고,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으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석주(石州 ) 이상룡도 이 가문 출신이다. 18세기 문학과 예술에 심취해 방대한 문예활동을 펼쳤던 이종악의 장남인 이준형이 한일강제합방 이후 망국의 설움을 안고 자결하면서 남긴 유서는 처절함과 원통함을 담았다. 고성이씨 임청각 가문 종손 이항증 씨는 “망국의 슬픔과 그 억울함은 단 돈 몇 푼에 거래하는 유물과 비교할 수 없다. 마땅히 국가에서 연구하고 보존해야 하기에 기탁했다”고 말했다.

장서각의 김학수 국학자료조사실장은 “생활사나 일상사, 문화사 연구에서도 근래 고문서가 주목받고 있다. 고문헌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관리와 학술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새로 개관한 장서각은 8월 31일까지 ‘조선의 국왕과 선비’라는 주제로 개관 기념 전시회를 연다. 왕실 및 민간 자료 130여 점과 명가에서 기탁한 70여 점의 기탁본 원본을 관람할 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 문의 031-709-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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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이충원효성공신교서

전주이씨 기탁 자료 중 완양부원군 이충원 호성공신 교서.

보물 제874호로 임진왜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조선 전기 4대 명필 중 한 명인 한석봉이 썼다는 점에서 예술적 가치도 높다.

02 서계유묵

당쟁으로 아들 둘을 잃고 정치에 염증을 느껴 여생의 탈속(脫俗)을 추구했던 서계 박세당의 솔직한 심정을 담은 필첩. 박세당이 평소 동경하던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등의 시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03 손소적개 공신도상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이 있는 신하들에게 내린 적개공신의 칭호를 기념한 초상.

보물 제1216호로 경주손씨 우재 가문이 2003년 기탁한 것이다.

04 통감속편

경주 양동마을 손씨 종택에서 기탁한 고문헌으로, 국보 제283호로 지정됐다. 중국 고대부터 송나라까지의 역사를 기록했다.

05 추노 문서

1460년 순흥안씨 가문에서 전라도관찰사에게 도망간 노비를 찾아달라고 요청한 민원.

06 경주손씨 도난 병풍

2m 넘는 거대한 병풍은조선 정조 때 사하당(四河堂)이라 불린 정연(鄭沇)이 쓴 것으로,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를 흘려 쓴 특별한 가보였다.

07 기묘제현수첩

순흥안씨 사제당 가문의 고문헌으로 보물 제1198호다.

구례현감 안처순에게 조광조(趙光祖),성세창(成世昌),김정(金淨) 등 사림파의 기묘명현(己卯名賢) 24명이 보낸 편지를 모은 수첩이다.

08 동춘당필적

2003년 진주정씨 우복 가문에서 기탁한 동춘당필적은 2010년 보물 제1672-1호로 지정됐다.

동춘당 송준길은 동양의 고전적 서법의 대가로 불리는 왕희지 서체를 한석봉 이후 새롭게 해석해 우암 송시열과 함께 양송(兩宋)으로 불리던 서예가다.



주간동아 797호 (p52~55)

김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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