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1

2011.06.13

딸아, 넌 나처럼 30대를 살지 마라!

연극 ‘돐날’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06-13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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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아, 넌 나처럼 30대를 살지 마라!
    누가 말했던가. 비극은 장례식장에서 끝나고, 희극은 결혼식장에서 마친다고. 연극 ‘돐날’은 결혼식도, 장례식도 아닌 30대 부부의 낡은 전세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이 연극은 희극이어야 마땅한 ‘결혼’에 ‘생활’이 붙으면 비극보다 처참한 ‘현실’이 됨을 보여준다. 오늘은 지호, 정숙의 둘째딸 혜진의 돌날이다. 정숙은 꿈 많은 화가 지망생이었지만 가난한 인문학도인 남편 지호를 뒷바라지하느라 꿈을 접었다. 지호는 정숙을 “돈에 눈 먼 속물”이라 욕하고, 정숙은 지호를 “고고한 자존심 때문에 인간 구실도 못하는 병신”이라 공격한다.

    어딘가 아파 보이는 정숙은 더운 여름, 겨우겨우 잔칫상을 차린다. 손님인 지호 친구는 모두 386세대. 한때 민주주의와 정의를 ‘종교’로 삼았던 그들은 모두 다른 모습이다. 누군가는 잘난 부모 덕에 떵떵거리는 사업가가 됐고 다른 누군가는 만년 과장, 또 다른 이는 가난한 시인이다. 시민운동가로 남았던 한 친구는 먹고살고자 다단계 판매에 뛰어들었다.

    오랜 친구들은 위태롭다. 사업가 친구는 나머지 친구들을 한심해하고, 나머지 친구들은 사업가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하거나 그를 고까워한다. 사업가 친구는 지호에게 “석사 논문을 대신 써주면 1000만 원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부부 역시 삐걱거리기는 마찬가지. 남편은 “맥주!” “화투!” 하며 쉴 새 없이 아내를 부르고,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말도 곱지 않다. 결국 친구끼리, 그리고 부부 사이에 갈등이 터진 최악의 순간, 지호와 정숙이 결혼한 직후 홀연 유학을 떠났던 경주가 등장한다.

    ‘돐날’은 30대의 연극이다. 그들은 20대의 ‘열정’을 잃었고 40대의 ‘안정’을 못 얻었다. 정숙은 동화 ‘빨간구두’ 이야기를 통해 자기 처지를 한탄한다. 빨간구두를 신었다가 평생 춤을 추게 된 소녀처럼, 자신은 20대에 섣불리 신어버린 구질구질한 싸구려 검정구두 때문에 평생 이런 누추한 삶을 살게 됐다는 것. 동화 속 소녀는 신발을 벗고자 결국 발을 자른다. 정숙은 발을 자르는 대신 딸 혜진에게 속삭인다. “너는 나와 다르게 살아라, 남자처럼 살거라, 하늘을 훨훨 날거라.”

    유학파 경주는 후반부 위기, 절정, 결말에 꼭 필요한 인물이지만 가능하다면 등장 분량을 최소화하는 편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초반부에는 시끌벅적 긴장감이 넘치지만, 경주가 등장한 이후로는 지나치게 독백이 많다. 너무 많은 부분을 말로 설명하려 든다. 마지막 경주와 지호의 육탄전 역시 의아하다. 경주의 백 마디 말보다 혜진의 울음소리 하나가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딸아, 넌 나처럼 30대를 살지 마라!
    그들이 즐겨 불렀을 노래 가사처럼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편 객석에 비해 무대가 너무 낮은 점은 보완이 필요하다. 배우가 바닥에 앉아 대사를 할 때 모든 관객이 배우 표정을 보려고 앞사람 뒤통수를 피해 기웃기웃할 정도니 말이다. 7월 10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시어터, 문의 02-76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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