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1

2011.06.13

‘하얀 가운’의 몰염치 행각 청진기 들지 못하게 해야

의사와 性범죄

  •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1-06-13 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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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가운’의 몰염치 행각 청진기 들지 못하게 해야

    의사는 직업 특성상 환자의 신체와 접촉하는 일이 잦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5월 21일 경기 가평의 한 민박집에서 학과 동기 여학생의 옷을 벗겨 신체 부위를 만지고 촬영한 혐의 등으로 현재 고려대 의대생 3명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의사가 되기 직전에 있는 학생들이고, 혐의도 워낙 충격적이기에 비난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비추어 피의자에 대한 성급하고 일방적인 인신공격은 마땅히 지양할 일이지만, 향후 이러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고민과 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다.

    의사가 진료받기 위해 찾아온 환자를 성폭행했다는 기사는 종종 지면을 달궜다. 2007년 6월 경남 통영의 40대 의사는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온 여성 환자들을 마취시킨 뒤 성폭행해오다 구속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의사협회는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회원 권리를 3년간 정지하고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에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현행 의료법에는 성폭행 의사의 면허를 박탈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다만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킨 의료인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1년 범위 안에서 면허자격을 정지할 수 있다. 성폭력 범죄로 실형을 산 의사가 형 만료 후 다른 지역에서 의료행위를 해도 아무런 제약이 없는 셈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로 입건된 의사 수는 2006년 35명, 2007년 40명, 2008년 48명 등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또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08년 2월 발간한 ‘성폭력 범죄의 유형과 재범억제방안’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의 재범률은 50%대로 다른 범죄보다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박탈하도록 현행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성폭행한 의사가 훗날 재범을 저지를 위험성이 크다는 점에서, 그런 위험성과 불안을 안고 진료를 받고 싶지 않다는 환자들의 원성은 어쩌면 당연해보인다.

    민주당 김춘진 의원은 올해 1월 환자를 성폭행한 의사의 면허를 영구 취소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감사원도 2월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변호사 등 다른 자격증 소지자와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의료법 개정을 요구하면서, 복지부에 진료행위 중이거나 진료행위를 이용해 성범죄를 범한 경우를 의료인의 결격사유 및 자격정지 사유에 포함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통보했다.

    개정 의료법에 대해 의료계는 “법 취지에는 공감하나 개정에는 반대한다”는 의견을 보인다. 면허 취소는 과도한 측면이 있는 데다 악용될 소지도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의사 처지에서는 일부의 잘못으로 전체가 매도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이 앞서고, 한 번의 잘못으로 각고의 노력끝에 얻은 면허까지 잃게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통해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다고 서약한 의사라면, 신을 대리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사명을 부여받은 자만이 입을 수 있다는 ‘하얀 가운’의 의미를 아는 의사라면, 작금의 사태가 얼마나 엄중한지 절감할 것이다. 진료행위를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라면 그 직을 감당할 수 없도록 하는 게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라 믿는 것은 지나친 편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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