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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미식생활

식후 커피 한잔 끊기 힘드시죠?

한민족의 습관성 음료 커피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식후 커피 한잔 끊기 힘드시죠?

식후 커피 한잔 끊기 힘드시죠?

한민족의 습관성 음료인 커피가 인스턴트커피에서 원두커피로 바뀌고 있다.

민족마다 습관성 음료가 있다. 서양 각국의 커피나 홍차, 남미의 마테, 중국과 일본의 차 같은 것 말이다. 이런 음료는 각 민족의 음식문화를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민족의 습관성 음료는 무엇일까. 녹차나 식혜, 아니면 수정과? 이런 음료는 기호로 마시는 전통차다. 습관성 음료란 끼니를 때울 때나, 끼니를 때우고 난 뒤 늘 마시는 음료로 전통차와는 거리가 있다. 그럼 숭늉? 글쎄다. 외식업체에서 음식 먹는 모습을 보면거의 커피가 한민족 습관성 음료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식당에는 커피 자판기가 있다. 대부분 밥 먹고 나서 이 커피를 한 잔 마신다. 고급 한식당에서는 마무리 음료로 수정과나 매실차를 내지만 식당을 나서면서 자판기 커피를 또 뽑아든다.

커피는 조선 말 한반도에 들어왔다. 커피 관련 책을 살펴보면, 이 땅 최초의 커피 중독자는 고종이었다. 고종을 커피 중독자로 만든 사람은 손탁이라는 독일 여성이었다. 당시엔 인스턴트커피가 없었으니 고종도 원두커피를 마셨을 것이다. 에스프레소 머신도 없었고, 드립하는 방법이 정착된 시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구에서 커피를 마셨던 방법을 추정해보면, 달임식 커피였을 가능성이 높다. 즉, 원두가루를 작은 냄비 같은 데 넣고 달여서 마셨을 것이다. 커피 원산지나 중동 등지에서는 아직 이런 달임 커피를 마신다. 당시 물류 사정으로 봐서 고종은 신선한 원두커피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손탁에게 로스터가 있었는지 알 수 없는데, 가마솥에 원두를 볶았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고종은 오래된 원두로, 그것도 적절하게 가공하지 못한 커피를 마셨을 것이다. 그 커피는 향도 없었을 테고, 쓰디쓰기만 했으리라. 왕국의 종말을 맞이하는 고종에게는 그 쓰디쓴, 소태 같은 커피가 딱 맞는 음료였을 수도 있다. 하긴 어떤 음식이 그의 입에 달았겠는가.

일제강점기 당시 커피는 모던한 지식인의 감상적 허영을 채우는 음료였다. 토속적 서정을 소설에 담은 이효석조차 낙엽을 태우면서 “갓 볶은 커피 냄새가 난다”고 했다. 다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사색하는 것이 그 시대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우리 땅에 커피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6·25전쟁 때다. 미군 피엑스에서 몰래 빼돌린 인스턴트커피는 보따리 아줌마의 손에 의해 가정집으로 번져나갔다. 찻잔이 없어 사발에 커피를 탄 뒤 숭늉 마시듯 하면서도 이를 멋으로 여겼다. 1970년 동서식품이 한국 최초로 인스턴트커피를 생산했다. 이 인스턴트커피에 같이 타 마시는 가짜 크림인 프림도 나왔다. 1980년대에는 스틱포장의 일회용 커피가 출시됐다. 곧 한국은 인스턴트커피만 있고 원두커피는 찾아보기 힘든 나라가 됐다.

한국의 인스턴트커피 시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인스턴트커피는 설탕과 프림을 넣어 달콤하고 구수한 맛이 난다. 커피 향이 거의 없는 흐리멍덩한 인스턴트커피가 한국에 크게 번진 까닭은 커피의 쓴맛과 신맛을 없애고 달고 구수한 맛을 더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커피가 모습을 바꾸고 있다. 원두커피가 빠른 속도로 인스턴트커피를 대체하는 것이다. 1998년 한국에 진출한 스타벅스가 질 떨어지는 커피에 뉴요커적 삶을 담아 비싸게 파는 업체로 욕을 먹지만, 한국의 커피시장을 바꾸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스타벅스 이후 수많은 원두커피 전문점이 생겼으며, 커피가 단지 쓴맛만 나는 음료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국인도 서서히 알아가는 중이다.

한국인은 우리의 음식문화가 가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부심으로 여긴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한민족 고유의 것보다 이미 세계화한 음식문화를 즐기는 일이 더 많다. 음식문화는 끝없이 변하는 것이다.



주간동아 2011.05.23 788호 (p72~72)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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