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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범국민 잡는 DNA法?

미제사건 연이은 해결에 검·경 “채취 확대를” … 누명 쓸 가능성과 인권침해 우려 목소리도 확산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범국민 잡는 DNA法?

범국민 잡는 DNA法?

2009년 1월 25일 경기 군포 여대생 실종사건 용의자를 검거한 경찰이 경기도 인근 제방에서 실종된 여대생의 사체를 국과수 직원들과 수습하고 있다.

K교도소에 강도상해죄로 12년째 복역 중인 재소자 A씨는 1월 6일 갑자기 자신이 13년 전에 저지른 10대 미성년자 강간살인사건을 교도관에게 고백했다. 2000년 9월 강도상해죄로 감옥에 들어온 그는 만기 출소를 앞두고 있었는데 새롭게 자백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2년밖에 남지 않은 상태. 더욱이 경찰은 1999년에 일어난 해당 사건을 미제 처리해 재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A씨는 K교도소에 있으면서 검찰로부터 자신의 DNA를 채취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13년 전 저지른 살인사건이 발각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두려움에 떨던 그는 감형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끝내 자수의 길을 택했다. 자수 소식을 들은 검찰은 곧 재수사에 착수해 1월 31일 살인사건 당시 피해자의 치마에서 검출된 정액의 DNA가 그의 것임을 확인했다. 결국 DNA 채취와 검사가 억울한 죽음의 범인을 밝혀내는 1등 공신 역할을 한 셈이다.

검찰이 A씨의 DNA를 미리 채취할 수 있었던 것은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DNA법) 덕분이다. DNA법은 검찰, 경찰이 1990년대 초부터 필요성을 주장해왔지만 인권침해 논란 끝에 지난해 7월 26일에야 시행됐다. 법 시행 뒤 경찰은 아동성폭력, 살인, 강간추행, 강도, 방화, 약취유인, 상습폭력, 조직폭력, 마약, 특수절도, 군형법상 상관살해 등 11개 범죄 피의자의 DNA를 채취하고, 검찰은 법 시행 전 저지른 범죄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나 이미 구속된 피의자의 DNA를 채취한 뒤 영구 보관한다. 채취 대상자가 동의하지 않을 때는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채취에 나선다.

검찰은 “DNA법이 공소시효가 2년밖에 남지 않은 사건도 해결하게 했다. 이처럼 이 법은 장기 미제 강력사건을 해결하는 데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이 사건에서처럼 범인의 추가 범죄를 자백하게 하는 데도 도움을 줘 종국에는 범죄 예방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며 홍보에 나서고 있다. 검찰이 법 시행 뒤 DNA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해결한 미제사건은 살인, 강도, 성폭력 등을 포함해 총 87건. 경찰도 법 시행 한 달 만에 47건의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신뢰성 높은 식별법 vs 맹신은 절대 금물”



범국민 잡는 DNA法?
DNA법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DNA 수사가 가장 신뢰성 높은 개인식별법”이라며 검찰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연쇄살인범 강호순도 경찰에 붙잡힌 뒤 여죄를 추궁하는 경찰의 물음에 입을 다물고 있다 DNA 증거가 나오자 죄를 인정한 적이 있다. 법 시행 뒤 한 지방경찰청은 각 일선 경찰서에 업무지침을 하달해 “DNA법 적용 대상 범죄가 아니거나 대상 범죄지만 불구속된 경우에도 기존 방식과 같이 형사소송법 임의수사 규정에 따라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의 동의를 얻어 DNA를 채취하라”고 독려했다.

하지만 “DNA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이은우 변호사는 “검찰, 경찰은 DNA법의 실효성을 집중 부각하기보다 법 시행 뒤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방지하는 데 힘써야 한다. 근대형법의 근간인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막아야 한다는 원칙이 후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효과’로, 재판부나 검찰이 법과학 전문가를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그들이 실수를 하거나 증거를 고의로 조작, 변형해 제시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고려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민지 부연구위원은 3월 9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2회 형사사법포럼에서 재판 시나리오 실험 결과를 토대로 “DNA 증거가 수사에서 효과가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제시한 DNA 증거의 문제점이나 한계를 지적해줄 수 있는 반대 전문가가 꼭 필요하다. 현재는 전문가 대부분이 경찰이나 검찰 산하 연구소에서 일해 피고인을 대변해줄 전문가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발표했다. 특히 경제력 상실로 능력 있는 변호사를 못 구하는 사람은 꼼짝없이 누명을 쓸 우려도 배제할 수 없는 현실. 미국 예시바대 카르도소 로스쿨은 공판 과정에서 DNA 등 과학적 증거가 왜곡돼 누명을 쓴 가난한 수형자 수십 명의 무죄를 입증하기도 했다.

범행 현장에서의 증거 조작 위험성도 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일선 경찰은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최악의 경우 현장에서 경찰이 증거를 조작하면 피의자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밝히고 무고를 입증하는 등 방어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는 “경찰이 현장을 완벽히 보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반인도 DNA 채취 대상

DNA 채취 과정에서 인권침해 논란도 끊이질 않는다.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실은 2010년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검찰은 DNA 채취 대상 범죄가 아닌 단순폭행사건 관련자에게 채취를 요청하기도 했고, 대상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 피의자에게 다른 사건과 관련해 사법경찰을 협박했다는 괘씸죄를 물어 채취를 강행하려다 법원에 의해 두 번이나 기각당한 적도 있다”고 폭로했다. 이 의원은 “법무부는 재범 우려가 높은 강력범죄자 등의 DNA를 사전 등록해 범죄 예방, 범인 조기 검거 및 인권 보호에 기여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채취 과정에서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 DNA 채취 사실도 모른 채 검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반인도 DNA 채취 대상이 될 수 있다. 전남 목포경찰서는 지난해 발생한 여대생 살인사건과 관련해 1100여 명을 대상으로 DNA 검사를 시행해 물의를 빚었다. 당시 목포서는 피해자 주변 인물, 현장 주변 거주자, 성폭력 우범자, 동일수법 전과자 등을 토대로 의심이 가는 사람에게 DNA 채취 동의서를 받아 DNA를 채취했다. 목포서는 “적법 절차에 따라 피채취자를 엄선했다”고 해명했지만 피채취자 일부는 경찰서에 “기분이 나빴다”고 전화를 걸거나 항의 방문을 하기도 했다.

목포서 형사과 관계자는 “DNA법은 인권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수사에 필요하다면 DNA를 채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목포서는 1100여 명의 DNA 속에서 8년 전 일어났던 성폭행사건의 범인을 발견해 검거하는 등 성폭력, 절도 등 12건의 미제사건을 해결했지만 아직 여대생 살해사건의 진범은 잡지 못했다.

검·경의 이런 해명과 주장에도 시민, 인권단체 등은 DNA법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채취 대상 범죄가 11개 범죄에서 확대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2009년 11월 공청회에서 “DNA 데이터베이스가 효용성을 가지려면 더 많은 자료가 입력돼야 하기에 앞으로 적용 대상이 되는 범죄 종류를 늘려나갈 것이다. 2007년 기준으로 한 해 254만8883명이 수사 대상이 된 상황에 비춰볼 때 그 채집 대상이 전 국민이 되는 사실상 범국민적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활동가는 “일부 법의학자가 DNA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범죄자의 유전자형을 미리 추출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인종차별 소지가 있는 만큼 절대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780호 (p50~51)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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