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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으로 들어온 한 권

차가운 의술에 온기를 입혀라

‘기술 시대의 의사’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차가운 의술에 온기를 입혀라

차가운 의술에 온기를 입혀라

카를 야스퍼스 지음/ 김정현 옮김/ 책세상/ 220쪽/ 1만5000원

몸이 아프면 기분도 처진다. 사소한 일에도 기운이 빠지고, ‘개그 콘서트’를 봐도 웃음이 안 난다. 이 때문에 병은 약으로만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약보다 중요한 것은 위로와 관심이다. 아픈 배를 엄마가 문지르면 거짓말처럼 낫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병원은 어느 곳보다 훈훈한 장소여야 한다. 하지만 경험상 그런 병원은 드물다. 오히려 병 고치러 갔다가 기분 잡치고 왔다는 사람이 더 많다. 눈 한 번 안 마주치고 2분 만에 기계적인 진료를 마치는 의사는 양반 축에 속한다. 환자에게 짜증을 내거나 무의미한 훈수를 두는 등 병을 얹히는 의사도 있다.

환자들의 원성 탓일까. 최근 의료계에서도 각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의료를 차가운 메스가 아닌 따뜻한 미소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의료 인력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격화된 탓도 있다. 건강을 체크하는 문안 전화와 문자를 보내는 개인병원이 등장했을 정도다.

‘기술 시대의 의사’는 ‘의료 전문 기능인’으로 변한 의사들에게 던지는 일성이다. 지은이 카를 야스퍼스는 실존철학의 대표자다. 또한 정신병리학, 정신분석학, 심리치료학, 의철학 분야를 넘나든 정신병리학자이기도 하다. 의사 출신인 그는 평생 선천성 기관지염을 앓았다. 그래서 환자의 고통과 의사의 노고를 동시에 이해하는 사유를 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야스퍼스의 강연과 논문 5편이 실렸다. 책 전반에서 그는 진정한 의술에 봉사하는 히포크라테스적 정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의사의 이념’ ‘의사와 환자’ ‘기술 시대의 의사’ 등 3편에서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성찰한다. 현대에 들어 전문화·조직화·기능화된 의술. 그러면서 의사와 환자 역시 비인격적이고 사무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의술은 실천적 휴머니즘이다. 훌륭한 의사가 되려면 자연과학뿐 아니라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정신분석에 대한 비판’ ‘심리치료의 본질과 비판’ 등 2편은 정신분석과 심리치료의 한계를 분석한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정신분석과 심리치료는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 “정신분석은 인과적 설명과 의미 이해의 문제를 혼동하며, 심리치료는 자유로운 인간을 대상화하고 객관화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심리치료사는 무엇보다 고통과 상처를 껴안는 따뜻한 인격이 중요하다.

환자와 질병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근대 이후 ‘환자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로 탈바꿈했다. 의학이 질병의 객관화에만 몰두한 까닭이다. 일부 의학자와 인문학자는 질병에 온기를 입혀 의학을 새롭게 하자고 주장한다. 의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은 어쩌면 질병 치료에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몸이 마음보다 먼저 병을 알아챈 경험, 한 번쯤 해보지 않았나.



주간동아 2011.01.17 771호 (p84~84)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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