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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온두라스로 날아간 3인방 누명 풀고 청춘도 살리고

법의학자 등 특별팀 한지수 씨 사건에 투입 전문지식과 인맥 총동원 무죄판결 이끌어내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온두라스로 날아간 3인방 누명 풀고 청춘도 살리고

온두라스로 날아간 3인방 누명 풀고 청춘도 살리고
온두라스에서 네덜란드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0년 10월 무죄판결을 받은 한지수(27) 씨가 1월 5일 한국 땅을 밟았다. 2009년 8월 이집트 공항에서 인터폴에 체포된 지 1년 5개월 만이었다. 2009년 10월경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한씨 사건이 알려지자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는 그해 12월 한국외대 로스쿨 하상욱 교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김형중 박사, 과테말라 주재 경찰 출신인 서울 수서경찰서 교통조사계 김정석 경감(당시 강력계장) 등을 포함한 ‘특별 전문가팀’을 꾸려 현지로 가 온두라스 검찰청장을 만나고 한씨의 재판을 다방면으로 도왔다. 이들이 없었다면 한씨의 한국 귀국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2010년 10월 17일 온두라스 로아탄 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 긴장한 한씨 곁에는 하상욱 교수가 있었다. 하 교수는 한국 측 반론을 지휘하며 전반적인 법률 자문과 통역을 맡았다. 그는 “젊은 아가씨의 인생을 더는 망치지 말았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과 나라를 대표해 그를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칠레 국립대 법학과를 졸업해 스페인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2009년 9월부터 한국외대에서 중남미법을 강의하는 하 교수는 대한민국 최고의 중남미법 전문가다.

1년 5개월 만의 감격스러운 귀국

하 교수는 갈피를 못 잡는 가족과 외교부에 “변호사를 바꾸고 가석방을 신청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는 온두라스에도 비공식적으로 ‘전관예우’가 있음을 알고 검찰 출신으로 해당 사건 법원 담당자와 동료 관계였던 변호사 호엘 세라노(Joel Serrano) 씨를 한씨의 변호사로 바꿨다. 당시 한씨가 수감된 라세이바 감옥은 2003년 폭동이 일어나 86명이 사망했을 정도로 온두라스에서도 악명이 높은 곳이었으므로, 더는 그 감옥에 한씨를 둘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 하 교수는 당시 한인교회를 운영하는 박명하 목사를 설득해 그를 후견인 삼아 한씨의 가석방을 신청했다. 그 덕에 한씨는 2009년 12월부터 교회에 연금되는 조건으로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후 하 교수는 온두라스 담당검사를 만나고 검찰 분위기를 파악해 한씨의 진술 방향을 결정하는 등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김형중 박사는 한 방송사를 통해 2009년 9월 온두라스에서 온 2건의 부검보고서를 건네받았다. 바로 온두라스 검찰 측에서 증거로 제출한 네덜란드 여성의 부검보고서였다. 부검보고서에는 사망자의 목 부위 내부출혈을 근거로 “누군가 목을 졸라 질식사했다”고 서술돼 있는데, 이에 대해 김 박사는 사체의 얼굴에 충혈이나 울혈, 다수의 반상출혈 등의 흔적이 없고, 목 부분에 어떠한 외상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질식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사체에서 마약류인 암페타민에 대한 양성 반응이 나왔는데도 그와 관련된 검사를 하지 않은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후 김 박사도 ‘특별 전문가팀’에 포함돼 2009년 12월과 2010년 10월 두 차례 온두라스를 방문했다.



그가 두 건의 부검보고서를 조목조목 분석해 작성한 ‘최종보고서’는 한씨가 무죄판결을 받는 데 상당히 중요한 증거로 작용했다. 그 보고서에서 김 박사는 “나는 피해자가 심장 부정맥과 관련된 암페타민의 독성에 의해 사망했다고 믿는다”라고 서술하는 등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한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한씨 측이 해부학적 근거로 밀어붙이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로하탄 병원 당직 의사가 마침내 “피해자 응급처치 과정에서 목에 의료기구인 후두경을 넣었다”고 진술해, 피해자의 목 부위 상처가 질식으로 인한 것이 아님이 명확해졌다.

온두라스로 날아간 3인방 누명 풀고 청춘도 살리고

2009년 12월 가택연금된 한지수 씨(가운데)와 박명하 목사(왼쪽), 원종온 주(駐) 온두라스 대사.

처음부터 ‘피해자가 응급처치 과정에서 목에 후두경을 넣었다’는 증거가 있었다면 한씨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긴급체포되지는 않았을 것. 2009년 12월 이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낸 이가 바로 김정석 경감이다. 20년간 강력사건을 도맡아 처리해왔던 김 경감은 TV를 통해 모자이크된 사체 사진을 보자마자 직감으로 “질식사로 죽은 게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2002년부터 칠레경찰대학에 2년간 유학했고 2006년 2월부터 3년간 과테말라 경찰주재관을 하면서 주재 경찰관이 없는 온두라스까지 관리했던 김 경감은 한씨의 사건을 듣고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꼈다.

한지수 씨 “어떻게 은혜 갚을지…”

경찰 대표로 전문가팀과 온두라스에 간 김 경감은 10여 년간 중남미에서 쌓은 모든 인맥을 동원했다. 3년 전 주재 당시 알았던 경찰들, 함께 경찰대학에서 수학한 동기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마침 김 경감과 함께 유학했던 경찰이 온두라스 경찰청 차장으로 근무 중이었고, 김 경감은 그에게 “한지수 씨 관련 자료를 모두 볼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김 경감은 현지 경찰이 가지고 있는 사건 관련 자료를 모두 검토했고, 그중 ‘피해자 응급처치 당시 차트’를 찍은 사진을 우연히 발견했다. 김 경감은 “피해자가 응급처치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라세이바에 홀로 머물며 딸을 뒷바라지하던 한씨 아버지에게 현지 교인을 소개해 숙소와 자가용도 제공해주고자 했다. 무죄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에도 김 경감은 “지수가 한국에 발을 디디기 전에는 안심이 안 된다”며 말을 아꼈다.

한씨 사건과 관련해 외교부는 ‘초동 대응이 미흡했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 교수는 “피해자의 국가인 네덜란드 측 대응을 보면서 ‘우리 국민이 같은 상황이라면 우리 외교부가 저렇게까지 밀착방어를 해줄까’하는 의문이 든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의문사로 묻힐 사건에 대해 네덜란드 측은 자국민 보호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네덜란드의 압박을 받은 온두라스 측은 ‘희생양’이 필요했고, 억울하게도 한씨가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하 교수는 “그래도 외교부가 늦게나마 특별팀을 구성하고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말했다. 김 경감은 “하필 ‘마약의 천국’ 온두라스에서 살인 사건에 얽힌 한씨는 억세게 운이 안 좋았지만 젊은 친구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자유롭고 열심히 살 수 있길 기대한다”며 “국민들도 이와 같은 선례를 봤으니 외국에선 더욱 몸가짐을 조심하고, 외교부도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외국민 사건에 대한 예방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귀국 후 한씨는 이들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같이 눈물 흘려주셨던 분들과 이제는 같이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하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분이 안 계셨다면 전 아직도 라세이바 감옥에 있었을 거예요.”

온두라스로 날아간 3인방 누명 풀고 청춘도 살리고

1 원종온 대사는 한씨에게 생필품을 전달했다. 2 여행을 좋아하는 한씨 미니홈피에서. 3 결정적 증거가 된 피해자 응급처치 당시 차트.





주간동아 770호 (p48~49)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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