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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논문 ‘자기표절 금지’ 잘 지켜질까?

교과부 연구윤리규칙 제정 후폭풍 … 학계 반발로 조사위원 비율 조정하고 검증시효 없애

  • 이설 기자 snow@donga.com

논문 ‘자기표절 금지’ 잘 지켜질까?

논문 ‘자기표절 금지’ 잘 지켜질까?
‘자기표절’. 최근 미디어에 빈번히 등장하는 용어다. 고위 공직자 청문회가 이 용어를 알리는 데 톡톡한 노릇을 했다. 고위 공직자 후보의 자격 검증 때마다 어김없이 불거지는 논문 중복게재 의혹. 자기표절은 바로 자신의 논문 하나를 여러 군데에 게재하는 행위를 뜻한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장관 등이 자기표절 의혹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교과부가 2010년 12월 16일 발표한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규칙’(이하 연구윤리규칙)의 핵심은 자기표절 금지 명문화다. 교과부는 그간 훈령으로 운영해온 지침을 일부 보완해서 부령으로 격상한 연구윤리규칙을 제정했다. 1월 5일까지 의견 수렴을 마친 이 규칙은 법제처 심사를 거쳐 1월 말 공포·시행할 예정이다.

이번 규칙은 중복게재 행위 금지를 처음 적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새로 제정된 규칙 7조는 ‘연구자는 연구논문 등을 작성함에 있어 이전에 발표하지 않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사용해야 한다. 이전 연구결과와 동일하거나 실질적으로 유사한 저작물을 게재·출간해 본인의 연구결과 또는 성과·업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적고 있다. 기존 훈령에는 타인의 연구성과를 도용하는 부정행위를 규정할 뿐, 자기표절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논란 부분 2가지 모두 수정

자기표절 금지 명문화를 중심으로 기타 내용이 추가된 이번 규칙에 학계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논란이 된 부분은 크게 2가지. 하나는 연구 부정행위 검증시효를 5년으로 규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사위원회 외부인사 비율을 20%에서 50%로 늘리는 부분이다. 규칙 제정 후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교과부는 결국 공소시효 5년 부분을 삭제하고, 외부인사 비율도 조정하기로 했다. 이번 연구윤리규칙에 대한 현장의 반발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조사위원회 위원의 절반을 외부에서 동원하라는 규정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우선 타 대학의 불미스러운 일에 다들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지방대학의 경우 수개월간 해당 학교를 오가는 등 실질적인 문제가 있다.”(수도권 A대학 K교수)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조사는 각 기관이 담당한다. 대학, 연구기관, 정부 부처 등 기관마다 연구진실성위원회가 따로 있다. 위원회는 제보가 들어올 때마다 교과부의 훈령을 토대로 한 내부지침에 따라 조사를 진행한다. 교과부는 2007년부터 연구윤리 지침을 마련해 운영해왔다. 대학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조사위원회는 5~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조사 결과 중대한 위반사항이 발생하면 정부기관에 이를 보고한 뒤 수사기관에 고발조치를 할 수 있다.

조사위원회 외부인사 비율을 50%로 높이는 방안은 객관성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학계에서 일어나는 연구 부정행위를 기관에서는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 자연히 내부인사로만 구성된 위원회는 자기 식구를 감싸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위험이 크다. 외부인사 비율을 높이면 안이한 조사 태도를 견제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의 교수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반박한다. K교수는 “얼마간 이어질지 모를 조사에 외부인사가 참여하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 또 외부인사는 책임감이 떨어져 효과도 미미할 것이다”라는 의견을 보였다. 서울대도 “규칙에서 정하면 따라가겠지만 그로 인한 효과보다 불편함이 클 것”이라며 외부인사 확대에 반대하는 의견을 교과부에 제출한 바 있다. 교과부 학술진흥과 담당 직원에 따르면 서울대를 포함한 대학 7곳에서 반대 의견을 냈다. 결국 교과부는 외부인사 비율을 10~20% 낮춘 방안을 법제처에 제출하게 됐다.

논란 끝에 백지화된 검증시효 부분은 어떨까. 연구윤리규칙 14조는 대학과 연구기관은 5년이 지난 연구 부정행위는 접수를 받아도 처리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 연구자가 부정행위 결과를 재인용해서 5년 이내에 후속 연구에 사용했거나 공공의 복지와 안전에 위험이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5년이 지나도 조사를 하도록 했다. 원래 훈령에는 공소시효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걸음마 뗀 연구윤리 지침

검증시효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연구 부정행위 의혹을 무분별하게 악용할 수 있다는 근거를 든다. 복수의 교수에 따르면 실제 승진 시비나 교수 임용 시 이런 의혹이 집중 제기되는 경향이 있다. 또 1990년대 후반까지는 연구윤리 지침이 없어 부적절한 행위가 관행적으로 이뤄진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학문윤리에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맞받아친다. 다음은 교과부 연구윤리위원회 위원인 아주대 독고윤 경영학부 교수의 설명.

“1990년대에는 학문윤리 기준이 없었다. 학자들도 계몽이 덜 됐다. 그래서 5년 이전의 것은 들추지 말자는 검증시효 의견이 나온 것이다. 취지는 좋지만 연구행위에 시효를 두는 것은 우스꽝스럽다고 본다. 윤리에는 시효가 있을 수 없다. 예전에 발생한 부정행위는 그때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될 일이다.”

그간 교과부 훈령은 하나의 지침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가 불거져도 결국 기관 내부에서 해결을 봐야 했다. 징계 수위도 기관의 몫이었다. 연구윤리 지침의 법제화는 학문윤리에 대한 분위기를 제고하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학계에서는 이번 규칙에 대한 논란을 계기로 연구윤리 전반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음은 연세대 남형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설명.

“학문연구 윤리를 교과부가 법규범으로 규제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학문과 예술이 다르고, 학문 내에서도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다른데, 국가기관이 일괄 적용 가능한 기준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실성 없는 규칙은 오히려 모든 기관으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 또 교과부가 기준점을 잘못 잡을 경우 우리나라 연구윤리를 타락시킬 위험도 생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 학자들도 대부분 무관심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제보는 많아지는 추세다. 남형두 교수에 따르면 자연과학이나 의학계에서는 검증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예컨대 새로운 치료제에 대한 연구결과가 나오면 후속 연구자들이 그것을 검증하고, 비양심적인 연구결과가 발견되면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식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의도로 연구윤리를 악용하는 사례도 상당수다. 다음은 독고윤 교수의 설명이다.

“원래 제자나 동료 학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게 맞다. 하지만 국내 대학은 총장 선거철 때 동료 교수끼리 흠집 내기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아주대는 총장에 반대하는 교수 2명에 대해 본보기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보다 실질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학문 분야별 학회 연합단체가 학문 특성에 맞는 기준 제시 △학계가 자율적으로 검증 △표절검색 프로그램 개발·활용이 대표적이다. 남 교수는 “기관별로 가이드라인이 쏟아지고 있는데, 지나치게 엄격하고 이상적이라 장식용으로 전락했다. 좀 더 실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하버드대는 ‘어떻게 인용할 것인가’라는 책을 1920년대에 만들어서 90년간 개정 증보하고 있다. 이처럼 연구윤리 지침은 긴 호흡으로 다듬어야 한다.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학계에 지침을 맡기는 것에도 회의적이다. 사법기관에서 내린 수십 건의 연구 부정행위 관련 판결을 토대로 기준을 추려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주간동아 770호 (p44~45)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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