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6

2010.12.13

‘손일’이 사무직보다 더 행복하거든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12-13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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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일’이 사무직보다 더 행복하거든

    매튜 크로포드 지음/ 정희은 옮김/ 이음/ 320쪽/ 1만3000원

    표지를 꼼꼼히 살펴도 내용을 가늠하기 힘들다. 제목은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부제는 ‘손으로 생각하기’. 저자 소개를 봐도 아리송하다. 오토바이 수리공이 된 철학자가 전하는 손일의 매혹이라니. “수리공 매튜 크로포드가 현실적 활동세계를 탐험하며 써내려간 도덕과 형이상학에 관한 놀라운 책”이라는 하버드 대학 하비 맨스필드 교수의 추천사에 호기심이 일어 책장을 넘겼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저자의 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저자인 매튜 크로포드는 전형적인 화이트칼라였다.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워싱턴 싱크탱크의 연구소장으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연구소를 박차고 나와 오토바이 수리점으로 달려갔다. 오토바이를 사기 위해서? 아니다. 오토바이 부품을 뜯고 고치는 수리공으로 일하기 위해서다.

    부와 명예가 보장된 직업을 팽개치고 그가 오토바이 수리공으로 변신한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저자는 “밀려드는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괴짜처럼 보이는 이직이 어떻게 인생의 허무함을 메운다는 걸까. ‘모터사이클 필로소피’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일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일해야 행복한가’ ‘손으로 하는 일의 강점은 무엇인가’ 등 묵직한 주제를 풀어가는 철학 에세이다.

    저자는 14세부터 전기기사 조수로 기술 일을 시작했고, 고등학교와 대학에 가서는 여름마다 기술이 녹슬지 않도록 일을 배웠다. 작업을 마치는 순간은 늘 즐거웠다. 그것은 행위주체성과 능력의 경험이었다. 모두가 작업의 결과를 볼 수 있었기에, 그의 능력은 모두에게 실제로 존재했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 또한 충만한 자부심도 느꼈다. 전선관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움직이다가 결국 같은 판에 닿는 작업 결과를 보노라면 가슴이 뿌듯해졌다. 하지만 연구소장으로 일할 때는 가슴 뛰는 일의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육체노동이야말로 지적 성찰과 행복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노동”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오늘날 자녀가 배관공이나 전기기사가 되길 원하는 부모는 흔치 않다. 기술직은 언제부턴가 갑갑하고 하찮은 이미지로 통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이분법화와 관련이 있다. 정신 대 육체의 이분법은 20세기 즈음 인위적으로 형성됐다. 이런 노력으로 경제생활의 질서를 세우는 데 성공했지만, 저자는 이 ‘성공’에 딴죽을 건다. “행동에서 사고가 분리되면서 노동의 쇠퇴가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다.



    20세기 ‘과학적 관리’ 도입으로 노동현장은 일대 변혁을 맞았다. 과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기술들이 고용주의 손에 집중되고, 노동자는 고용주에게서 부분적인 노동을 부여받았다. “모든 정신노동이 공장에서 쫓겨나 계획 및 배치 부서로 집중”된 것이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초기 노동자들에게 혐오감을 줬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자 그들은 시스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기산업경제로 돌입하며 거의 모든 노동자는 ‘손일’에서 멀어져 추상적 개념을 다루게 됐다. 자연히 전문지식은 한 곳으로 집중됐다. 대형 금융거래, 첨단기술, 복잡한 서비스 같은 최첨단 영역의 진정한 지식노동은 컨설턴트라고 불리는 소수 전문가집단에 넘어간 것이다. 이렇게 점차 일에서 행위주체성을 잃고, 보이지 않는 부품으로 전락하면서 자립을 잃어갔다. 그리고 행복과도 멀어졌다.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를 책임질 수 있다고 느끼고 싶어 하며, 그러려면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이 어디에서 왔는지 좀 더 확실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잘 살려면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듣고 자랐다. 여기서 좋은 직장이란 일반적으로 ‘고소득 화이트칼라 직종’을 뜻한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어느 나라를 가도 육체노동을 경시하고 지식노동을 경배하는 분위기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던지는 ‘기술, 육체노동, 장인들이 더 높은 수준의 지적 성찰을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는 그래서 더 당돌하고 신선하다. 왠지 모르게 일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 젊은이들에게 저자는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당신이 필요하지 않은데 어려운 책들에 끌리고, 그 책을 읽는 데 선뜻 4년을 바칠 수 있다면 대학에 가라. 가서 장인정신을 갖고 인문학과 과학에 파고들어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시키는 대로 할 필요는 없다. 하루 종일 사무실 칸막이 속에서 낮은 수준의 ‘창조적 업무’를 감시하는 사람보다는 독립적인 기술자가 되는 편이 나쁜 영향도 덜 받고, 돈도 더 잘 벌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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