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5

2010.12.06

지명직 최고위원 ‘그들만의 전쟁’

한나라당 각 계파 태클과 힘겨루기…지도부 정치력 부재 다섯 달째 공석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0-12-06 10:1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지명직 최고위원 ‘그들만의 전쟁’

    11월 22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친박계 서병수 최고위원(왼쪽)이 친이계가 추천한 윤진식 의원의 최고위원 지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며 퇴장하자 안상수 대표(맨 오른쪽)가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당이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을 하겠다는 것인가.”

    11월 22일 한나라당 서병수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윤진식 의원이 당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거론되는데 반발해 당무 거부를 선언했다.

    “당무 거부는 무슨 의미인가. 이렇게 난리를 피우고 그냥 나가겠다는 것이냐.”

    안상수 대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서 최고위원을 향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당 지도부를 선출한 7·14 전당대회(이하 전대)가 열린 지 5개월 가까이 된 상황에서 그의 리더십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지명직 최고위원은 대표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 지명한다. 그만큼 당 대표는 각 정파와 당원이 두루 공감하는 인물을 추천해 최고위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정치력이 필요하다. 이날 서 최고위원의 반발로 최고위원 추천 및 선출에 관한 안건은 상정 자체가 보류됐다. 이후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이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여당 역학관계 리트머스 시험지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최고위원 지명 논의가 미뤄졌지만 곧 다시 불거질 것이다. 최고위원은 당 의사결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각 정파는 ‘자기 편’을 심으려 한다. 이 문제는 앞으로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계 간 갈등 정도와 당청(黨靑) 관계를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일 수밖에 없다. 누가 양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처음 꺼낸 카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의 말처럼 최고위원 지명을 놓고 당내 복잡한 구도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 7·14 전대 직후 안 대표는 ‘호남과 충청권을 배려하고 친이-친박계 간 화합’이란 원칙 아래 7·28 재보선 뒤 지명직 최고위원 구성을 끝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곤 친이-호남 몫으로 김대식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카드를 내밀었다. 부산 동서대 교수 출신(고향은 전남 영광)인 김 전 사무처장은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전남도지사 후보로 나서 14.4%를 득표한 인물. 17대 대선 당시 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과 함께 선진국민연대를 조직하고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대외협력도 맡았다.

    하지만 정두언 최고위원이 발끈했다. 정 최고위원으로서는 선진국민연대 출신인 데다 자신과 ‘앙숙’인 박영준 차관과 ‘의형제’ 사이인 김 전 사무처장이 탐탁지 않다. 정 최고위원은 “나를 욕보이려는 거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뿐이 아니다. 앞서 김 전 사무처장은 지방선거 이후 7·14 전대에서 대표최고위원 선거에도 출마했다. 당시 정 최고위원은 “나를 떨어뜨리려는 의도”라며 반발했다. 광주를 배경으로 한(부친 고향이 광주, 자신은 서울 출생. 어릴 적 광주에 살았다) 정 최고위원과 호남을 기반으로 출사표를 던진 김 전 사무처장의 지지표는 겹칠 수밖에 없다. 동시에 박 차관과 의형제라는 데서, 정 최고위원 측은 ‘박영준 연출, 김대식 주연의 정두언 떨어뜨리기’라고 봤다. 당시 ‘서로 드롭(중도 사퇴)하라’며 으르렁대는 모습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한 친이계 의원의 분석이다.

    “지명직 최고위원이 장기간 공석이 된 사태는 ‘김대식 카드’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맞다. 이명박 대통령이 ‘조직의 달인’이라고 칭찬할 만큼 그를 신뢰하고, 불모지 전남에서 의미 있는 득표를 한 만큼 그를 배려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대식 카드가 나왔을 때 당 내부의 평가는 엇갈렸다. 그가 야당 당원 출신이라는 말도 나왔고, ‘영포회’ 사건으로 선진국민연대 출신에 대한 반발도 컸다. 존경받는 최고위원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물론 전남에서 14%대의 득표를 한 만큼 제대로 키워주자는 의견도 있었다.”

    지명직 최고위원 ‘그들만의 전쟁’

    1 친박계는 이완구 전 충남지사를 추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 전 도지사와 담소 중인 박근혜 전 대표(오른쪽). 2 2009년 12월 청와대 정책실장 시절 이명박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윤진식 의원. 3 7월 14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정두언(왼쪽), 김대식 후보가 냉랭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김대식 카드’부터 꼬이기 시작

    이에 대해 김 전 사무처장은 ‘김대식=박영준’이라 보는 것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김 처장 카드에 대한 반발이 일자, 6·2지방선거에서 전북지사 후보로 나선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게도 지명직 최고위원 제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사무처장의 말이다.

    “한두 분에게 지명직 최고위원 자리를 권한 걸로 안다. 정 전 장관에게도 (지명직 최고위원을) 권했는데, 그는 ‘당의 전면에 나서는 게 부담된다’고 말했다고 내게 전했다. ‘호남은 김대식이 해야 한다’고 말하더라.”

    호남에서 청와대와 안 대표를 만족시킬 만한 ‘김대식 대안’을 찾으려 해도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다. ‘김대식 카드’를 여전히 만지작거리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 여기에 친이-호남 몫 최고위원 인선이 마땅치 않자, 친박-충청 몫으로 눈을 돌려 윤진식 의원 카드를 내밀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친박계는 들끓었다. 최고위원회의에서 친박계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는 서 최고위원이 ‘당무 정지’를 선언했다는 것 자체가 이를 방증한다. 당초 안 대표가 친박계에게 충청 몫으로 지명직 최고위원 추천을 요구했다. 친박계는 김학원, 강창희 전 의원과 이완구 전 충남지사를 추천했지만 충청 몫 최고위원 지명 역시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면서 ‘MB노믹스’의 전도사인 윤진식 의원 지명설이 나돌자 친박계가 폭발한 것이다. 서 최고위원은 “안 대표가 친박계 충청권 인사를 추천해달라고 해서 3명을 올렸는데 이유 없이 거부됐다. (거부한 데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한 친박계 의원은 ‘청와대가 당 최고위원 자리까지 노린다’며 흥분했다.

    “우리(친박계)는 3명을 추천했다. 강창희 전 의원은 ‘당 전면에 나서고 싶지 않다’며 본인이 고사한 걸로 안다. 그럼 이완구 전 지사는 왜 안 되나? 청와대에서 못 받아들인다는 것 아니냐. 안 대표도 비공식적으로 김대식 카드에 대해 ‘나의 뜻이 아니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윤진식 카드 역시 그 연장선상이다. 서 최고위원이 안 대표에게 ‘청와대 거수기가 될 거냐’며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전 지사는 세종시 수정 방침에 반발해 지사직은 사퇴했지만 당내에서 싸우겠다며 탈당하지 않은 분이다. 단체장으로서 당연히 이해되는 행동 아닌가. 당 화합을 위해 친박계에 최고위원을 추천하라고 해놓고 그 자리에 친이계 의원을 거론하는 게 말이 되나. 우리는 친이계 사무총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태클 걸지 않는다. 이렇게 뒤통수를 쳐도 되나.”

    한나라당 지명직 최고위원 선출은 이처럼 정파 간 첨예한 이해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청와대를 안고 가야 하는 안 대표 역시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수직적인 당청 관계에 대한 비판과 친이-호남 몫 인물 부재 속에 안 대표의 고심도 깊어간다.

    인터뷰 / 김대식 前 민주평통 사무처장

    “정두언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


    지명직 최고위원 ‘그들만의 전쟁’
    김대식(48·사진)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자신의 최고위원 지명을 반대한 정두언 의원과 오해를 풀려고 수차례 연락을 했지만 ‘리턴 콜이 없다’며 씁쓸해했다. 그러면서도 ‘6·2지방선거 때 호남에서 역대 최다 득표를 한 자신이 호남 몫 최고위원 최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지명직 최고위원이 다섯 달째 공석인데.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알아서 할 문제지만 하루빨리 지명해야 한다. 나는 최고위원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한나라당이 호남에 더욱 애정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는 한나라당 출신으로서 전남에서 역대 최다 득표를 했다. 그만큼 호남이 마음을 열었다. 이젠 한나라당이 호남을 안고 가야 한다.”

    지명직 최고위원과 관련해 사전 언질이 있었나.

    “통보는 없었다. (당 최고위원회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집권당 후보로 전남에 출마한 나는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최고위원이 되면) 한나라당과 정부, 국회, 호남사람들 중간에서 심부름꾼 역할을 하겠다.”

    7·14 전대 과정에서 ‘지명직 최고위원은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선출직 최고위원에 출마하는 사람으로선 표를 얻어야 했다. ‘지명직은 줘도 안 한다’고 강하게 말한 것은 선출직으로 뽑히겠다는 강한 의지로 봐달라.”

    최고위원 지명을 반대한 정두언 최고위원에게 서운한 점은 없나.

    “‘김대식=박영준’으로 보는 것 같은데 그건 오해다. 연좌제다. 정 최고위원은 대선 캠프 시절 나에게 정치를 권했다. 지방선거에 앞서 후보 사무실 개소식 때도 오셨고 선거도 도와주셨다. 휴대전화 컬러링도 정 최고위원의 노래 ‘희망’이다(정 최고위원은 4집 앨범을 낸 가수다). 그런 분이….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나를 알아주고 발탁한 대통령을 위해 휘발유통을 들고 불속으로 뛰어가는 사람이 나다. 호남에서 가장 의리 있는 사람이 김대식이다.”

    의리파? 그럼 오해도 풀 수 있는 거 아닌가.

    “사실 비서를 통해 몇 번 연락을 했는데 답이 없다. 내가 무릎 꿇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구걸해서 되는 것도 없지 않나.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다.”

    최고위원에 대한 열의라고 봐도 되나.

    “내가 최고위원 되면 해외세력(민주평통 해외위원을 지칭) 있겠다, 대학 교수로서 20, 30대 마음 잘 알겠다, 자수성가했겠다…. 호남 출신으로 지방 야간대학(부산 동의대 일어일문학과) 나온 사람이 한나라당 최고위원에 입성하는 그 자체가 국민에게는 희망이다. 지금 최고위원 면면을 보라. 모두 특정 대학 출신이다. (자신이 최고위원이 되면) 호남 출신 600만 수도권 시민들에게도 한나라당이 달리 보일 것이다. 나는 욕심 없는 사람이다.”

    욕심이 없다? 그런데 최고위원 자리를?

    “최고위원은 명예직 아닌가. 관용차가 있나 급여가 나오나. 그동안 내가 언제 자리를 달랬나. 민주평통 사무처장도 한직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같이 했던 동지들은 청와대 수석으로 가고 관용차 나오는 좋은 자리 갔지만 나는 안 갔다. 가라고 해도 안 갔다(그가 말하는 관용차 나오는 좋은 자리는 공기업 이사장, 감사였다. 그는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위원회 위원이었다).”

    어떤 자리를 제의받았나.

    “뭘 그런 걸…. 3곳 정도 있었다.”

    야당 당원이었다는 말도 나오는데.

    “지난 18대 총선에서 장제원 의원이 부산 사상구에서 공천받자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한) 권철현 주일대사가 홈페이지 그 글을 올렸다. 내가 장 후보를 미니까. 야당 당적을 보유한 사실이 없다는 것은 당시 이방호 사무총장도 안다. 증명서를 당 사무국에 제출했다. 마타도어다.”

    장 의원의 아버지는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 동서학원 설립자로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 전 사무처장은 동서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장 의원을 지원했다. 부산 지역에선 그가 장성만 동서학원 이사장의 집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