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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연평도 포격 그 후 ①

다시 연평도로 가라고? 또 총알받이 하란 말이냐

찜질방에 갇힌 연평 주민들 불만 폭발 … 포격 충격 여전하고 살길 막막 한숨과 탄식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

다시 연평도로 가라고? 또 총알받이 하란 말이냐

다시 연평도로 가라고? 또 총알받이 하란 말이냐

연평도를 빠져나온 어르신들이 찜질방에서 링거를 맞고 있다.

“할 줄 아는 거 없어 보이지? 우리 섬에 살 땐 이러지 않았다우.”연평도 주민이 일주일 넘게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인천 중구 신흥동 인스파월드. 11월 30일 인스파월드 2층 찜질방 홀에서 공회순(79) 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25일 연평도를 빠져나올 때 만난 할머니는 남편 이기문(90) 할아버지와 함께였다. 허리가 굽어 거동이 불편한 노부부는 포탄이 터지는 연평도를 겨우 빠져나왔다. 인천에 도착한 뒤 갈 데 없어 방황하던 할머니는 계속 찜질방에만 머물렀다. 병원 갈 때 잠시 외출할 뿐 온종일 찜질방 생활이다. 찜질방이 답답한지 윗도리에는 늘어진 내복 한 겹만 걸쳤다.

할머니 인생에서 두 번째 피란이다. 60년 전 6·25전쟁이 터진 뒤 큰딸을 업고 할아버지와 고향 황해도를 빠져나왔다. 할머니는 그때를 회상하며 “가을걷이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그때도 누렇게 익은 벼를 놔두고 딸만 들쳐 업고 고향을 떠났는데 이번에도 떨어지는 포탄 때문에 추수한 벼를 건조기에 넣고 몸만 빠져나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20여 년 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연평도로 거처를 옮겼다. 중공업 회사에 근무하다 건강을 해친 할아버지를 위해 물 좋고 공기 좋은 연평도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연평도를 벗어나 찜질방에 갇힌 신세가 됐다. 할머니는 무엇보다 연평도에 두고 온 자식 같은 개 3마리가 걱정이다.

“말 못하는 짐승들이 배를 곯고 있으니 안 됐어. 나야 찜질방에서 밥이라도 먹지만….”

온종일 찜질방 생활로 망가진 주민들

찜질방에 갇힌 주민들은 “섬사람 모두가 활기를 잃고 망가졌다”고 표현했다. 30일 찜질방에서 배식한 점심을 먹은 연평도 주민은 모두 484명이다. 면회 온 가족, 관공서 직원, 취재진, 자원봉사자 등을 더하면 훨씬 많은 숫자가 찜질방에 모여 있다. 특히 연평군보건소 임시진료소, 옹진군청 임시사무소, 인천재난심리지원센터 등이 들어선 1650㎡ 규모의 2층 찜질방 홀은 늘 인산인해다. 서로 정보와 안부를 교환하는 주민들의 말소리에 연평도 지원대책 등을 전하는 마이크 소리가 섞여 귀가 얼얼하다. ‘모든 것이 즐겁고 편하다’는 찜질방 광고 문구와 달리 당장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 됐다.



주민들이 호소하는 가장 큰 불편은 수면 부족이다. 소연평도 주민 배진영(65) 씨는 처음 3일 동안은 한숨도 자질 못했다. 지금도 자다 깨는 시간이 계속된다. 찜질방 홀은 시끄러워서 잘 수 없고, 사우나 수면실은 온도가 높아 땀이 줄줄 흐른다. 고민 끝에 배씨는 사우나 탈의실을 잠자리로 정했다. 하지만 이곳은 새벽녘이면 기온이 떨어져 몸서리가 쳐진다. 기자도 잠을 청하려 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의 발이 머리에 닿았다. 배씨가 추천한 잠자리도 마찬가지였다. 인기척에 눈을 뜨면 벌거벗은 사람들이 올려다보였다. 모포, 침낭, 베개, 깔개 등도 넉넉지 않았다. 적십자에서 온 모포는 30일 저녁에 지급됐다. 물품이 부족하니 사이좋던 주민들 사이에도 다툼이 생겼다.

찜질방 생활이 길어지자 안정을 취해야 할 주민들이 도리어 소화불량, 위장장애, 두통 등을 호소하고 나섰다. 임시진료소 한 공중보건의는 “스트레스성 불안을 호소하는 주민이 대부분이다.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지내도 외상 후 스트레스가 치료될까 말까 한데 이곳은 상태를 더 나쁘게 만든다”고 말했다. 당시 연평도 상황을 끊임없이 떠올리는 환시, 환청 ‘재경험’에 시달리는 주민도 있다. 환기가 제대로 안 되는 곳에서 장시간 머물다 보니 감기와 가래에 시달리는 이도 많다. 서부리 주민 김영애 씨는 밥을 먹고 나와 땀을 뻘뻘 흘렸다. 김씨는 “좁은 공간에 모여 생활하다 보니 숨도 못 쉴 정도로 답답하다. 연평도 공기가 너무 그립다”고 말했다.

정부와 인천시 주거 대책에 불신 팽배

다시 연평도로 가라고? 또 총알받이 하란 말이냐

80세가 훌쩍 넘은 노인들은 인생에서 2번째 피란생활을 맞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다. 인천재난심리지원센터 박혜숙 미술치료 상담사는 “포탄이 떨어지는 걸 목격한 아이와 소리만 들은 아이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잘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평도 지역 초·중·고등학생 100여 명이 인천 서구 한 영어마을에 입소한 뒤 미취학 어린이들만이 찜질방에서 놀고 있다. 7세 박모 양은 찜질방 근처 유치원을 다녀온 뒤 표정이 밝아졌다. “고향집 세탁기가 불타 어머니가 손빨래를 하게 됐다”고 걱정할 정도로 의젓한 박양은 연평도에 홀로 남은 아버지가 늘 걱정이다.

밤이 깊어지자 곳곳에서 술자리가 벌어졌다. 여든이 넘는 노인들은 위문품으로 받은 귤과 떡, 찜질방 매점에서 산 과자, 마른 오징어로 소주를 마셨다. “할 말이 없다”던 노인들은 술이 몇 순배 돌자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라(정부)를 원망하는후목소리였다.

백군식 씨는 “과거 납북사건, 서해교전, 천안함 사태 때도 연평도 주민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날아오는 포탄에 집이 불타는 것을 목격했는데 아무 일 없었던 듯이 그냥 살라는 것은 우리를 기만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 주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억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 시절 집단 이주 이야기가 있었지만 정부에서 아낌없이 지원을 해줘 참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연평도 주민을 챙겨주는 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11월 29일 오전에 발표된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특별담화문 내용에 불만을 쏟아냈다. 이 담화문에 “연평도 주민들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을 약속드립니다”는 한 문장을 담았을 뿐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않았던 것. 찜질방 텔레비전 앞에 모여 담화를 경청했던 주민들이기에 배신감이 더 컸다. 남부리 한 주민은 “결국 적당히 보상해줄 테니 다시 총알받이로 들어가라는 이야기다”며 분노했다. 연평도로 돌아갈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던 기자는 혼쭐이 났다.

“연평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주민들의 생각은 확고하다. 최성일 연평도 주민비상대책위원장은 “안전한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 완전히 복구가 돼도 다시 들어가 사는 일은 없다”고 분명히 했다. 연평도 밖에서 생계가 막막한데도 결심을 굳힌 것이다. 연평도 주민들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공포가 더 강했다. 김용성(79) 씨는 6·25전쟁 참전 용사로 국가유공자다. 김씨의 왼쪽다리 정강이에는 황해도 구월산에서 북한군 토벌에 나섰다가 총알 파편을 맞아 다친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전쟁 한가운데서 살아남은 그도 이번 폭격으로 “입이 타들어갔다”고 말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폭격 당시 정부의 미흡한 대응도 주민들의 불안감을 키운다. 연평면사무소가 실전 상황임을 곧장 알리지 않아 혼란이 컸고, 놀란 주민들은 정부의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 알음알음 어선을 타고 빠져나왔다. 즉 대피 매뉴얼에 따라 통제된 상황은 없었던 것이다. 옹진군 비상상황실 관계자는 “1년에 한 번 을지연습을 한다. 을지연습 매뉴얼에 육지로 대피하는 계획이 있지만 공개할 수 없고, 거기에도 구체적인 절차는 없다”고 답했다.

인천시 자치행정과 관계자도 볼멘소리를 하기는 마찬가지다. “평소 대피훈련을 해도 주민들이 멍하니 사이렌을 바라볼 뿐 동참하지 않는다. 전면전이었다면 매뉴얼에 따라 움직였겠지만 이번에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연출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전면전과 이번 포격과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을 요구했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결국 똑같은 상황이 발생해도 주민들은 각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다시 연평도로 가라고? 또 총알받이 하란 말이냐

1 연평도 내 연평초등학교에 임시 구호주택이 만들어졌지만 주민비상대책위는 연평도 복귀를 거부했다. 2 연평도 주민들은 찜질방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3 답답한 찜질방을 벗어나 쉴 곳은 찜질방 입구가 유일했다.

70칸을 채워야 떠나려나

주민비상대책위원회는 12월 1일에도 임시 이주 대책을 거부했다. 인천시는 김포 시내 미분양 아파트, 인천 공무원 교육원 등을 주민대책위원회 간부들과 함께 방문해 협의를 시도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제 인천시도 임시 이주 대책과 관련해 “할 만큼 했다”는 태도다. 인천시 한 관계자는 “인천 시내 400개 다가구주택은 떨어져 살아야 해서 싫고, 김포시 미분양 아파트는 거리가 멀어 싫다면 인천시도 더는 방법이 없다. 영구 이주는 정부 차원에서 할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인천시에서 주민과 협의만 도출해내면 예산문제는 해결해보겠다. 하지만 지역 사람들이 그곳에 사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주민과 정부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는 이상 연평 주민의 찜질방 생활은 기약이 없게 됐다.

12월 1일 새벽 6시. 9일째 아침을 맞는 주민들 표정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어두운 찜질방 홀에 다들 멍하니 앉아 있다. 정부는 11월 30일 주민 1인당 100만 원씩 생활비를 지원한 데 이어, 12월 1일에는 “민방위기본법에 따라 주택 복구비용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여야는 국회에 ‘서해 5도 지원 특별법안’과 ‘연평도 피해주민 지원 특별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주민들 가슴에는 와 닿지 않는다. 지금 연평도 주민들은 일시생활위로금 100만 원을 받은 게 전부인 셈이다. 생활위로금도 주소지가 연평도로 돼 있고 섬에 사는 주민에게 주어져, 주소지만 다를 뿐 섬에서 생활한 주민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

찜질방에 있는 주민들은 저마다 사는 지역과 이름이 적힌 표찰을 목에 걸고 있다. 뒷면에는 구호물품 제공 현황표가 그려져 있다. 옹진군청이 주민들의 구호물품 중복수령을 막기 위해 하나를 받을 때마다 표찰에 표시를 하게 했다. 11월 30일 밤 70칸 중 4칸이 채워졌다. 주민들은 70칸을 다 채우고도 찜질방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근심이 깊다. 한 주민의 말이다.

“우리를 챙겨주겠다고 찜질방에 계속 구호물품이며 사람들이 들어오는데 이제는 반갑지 않아요. 여기 묶어두려는 속셈인 거 같아 믿음이 안 가.”



주간동아 2010.12.06 765호 (p16~18)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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