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6

2010.07.19

네 번은 내가 냈다, 오늘은 니가 내라!

남성들 데이트 비용의 ‘경제 심리학’ …‘쪼잔한 남자’ 두려워 더치페이 말 못해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송인광 인턴기자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입력2010-07-19 16: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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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은 내가 냈다, 오늘은 니가 내라!
    ‘미디엄 웰던’으로 핏기가 살짝 도는 갈릭 립아이, 하얀 크림소스가 입맛을 돋우는 게살파스타, 청색과 적색 스트로가 나란히 꽂혀 있는 오렌지에이드, 그리고 통유리를 통해 반사되는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까지. 커플은 마주 앉아 뜨겁게 데워진 포크로 파스타를 꼬며 그들의 사랑을 엮어간다. 음식이 비워질 무렵, 남자는 재빠르게 빌(bill)지를 가져와 결제할 카드를 올려놓는다. 이때 남자는 할인카드 사용여부를 두고 일생일대 최대의 고민을 한다.

    ‘10% 할인카드가 내 이미지 10%를 할인하지는 않을까?’

    평균 데이트 비용 부담 비율 7대 3

    결국 할인카드를 포기한 채 근처 커피숍으로 향한다. 기름진 것을 먹었으니 아이스 그린티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한 남자. 그러나 여자는 뒤에서 “카페라떼 샷 추가”를 외친다. 남자는 자신의 손에서 떠나는 ‘세종대왕’에게 푸념을 해본다.

    “이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요.”



    얼마 전 울산에서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모(27) 씨는 여자친구와 1년간 교재해왔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자 불현듯 그동안 지출한 데이트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새벽 3시경 여자친구의 집에 몰래 들어가 80만 원 상당의 컴퓨터를 들고 나오다 경찰에 붙들려 현재 불구속 기소 상태다. 법적인 잣대를 들이밀기 전에 그는 ‘쪼잔한’ 남자로 손가락질받을 상황이다. 그러나 “운전은 내가 한다, 기름값은 네가 내라” “커피 값은 내가 내고, 쿠폰 도장 네가 찍냐”라는 ‘개그콘서트’ 속 남보원의 구호가 많은 남심(男心)을 울린 상황에서 미약하게나마 이씨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또 한 명의 쪼잔한 남자 A씨. 그는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성격이 맞지 않아서도 아니고 싫증이 나서도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돈 때문에 헤어졌다. 직장을 잡지 못한 여자친구를 위해 A씨는 데이트 비용을 전적으로 자신이 부담했다. 혹시 기라도 죽을까, 명품 백과 지갑도 선물했다. 여자친구는 그런 A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공짜 데이트에 익숙해져갔다. 선물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보고 싶은 영화나 연극이 생기면 무조건 남자친구에게 보여달라고 졸랐다.

    그러는 동안 여자친구는 일언반구의 고마움도 표시하지 않았다. 얼마 전 A씨가 “앞으로 데이트 비용을 조금이라도 분담하라”고 말하자 여자친구는 “나 좋아한다면서 이 정도도 못 해주냐”며 도리어 화를 냈다. A씨는 자존심을 버려가며 힘들게 이야기를 꺼냈지만 이해하기는커녕 화를 내는 여자친구에게 실망했다. 1년간 쌓인 정(情)도 돈 문제 앞에서는 파도 부서지듯 흩트려졌다.

    여론조사 기관 ‘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데이트 비용 평균 부담 비율은 남자가 67.4%, 여자가 32.6%로 나타났다. 대략 7대 3이다. 과연 이 비율은 얼마나 타당한 것일까. 시각적으로 가장 안정됐다는 LCD TV 모니터도 가로 세로의 비율이 16대 9. 웬만큼 부유하지 않으면 7대 3의 비율이 부담스럽지 않을 남자는 거의 없다. 평등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 카드 기계의 종이 내뱉는 소리는 남자의 마음도 함께 긁어댄다.

    계산에서만큼은 ‘금녀 구역’ 여전

    이런 일은 비단 데이트 상황에 그치지 않는다. 1000만 원에서 억 단위로 들어가는 결혼 비용을 두고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진다.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의 설문에 따르면 자신이 준비해야 할 결혼자금으로 남성은 6000만 원 이상을 꼽은 반면, 여성은 3000만 원이라고 답해 역시 남자가 2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네 번은 내가 냈다, 오늘은 니가 내라!

    남자들이 데이트 비용에 대해 말을 했다가는 자칫 ‘쪼잔한 남자’로 몰린다. 남자의 애환을 재미있게 풀어내 인기를 얻는 개그콘서트 ‘남보원’의 한 장면.

    그렇다면 한국 남자들은 왜 당당하게 더치페이를 요구하지 못하는가. 가장 흔한 답변은 우리 고유의 유교적, 가부장적 문화 때문이다. 여대생 문모(26) 씨는 “남자는 바깥일을, 여자는 안살림을 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문화가 잔존하기 때문에 남녀 모두 남자가 더 많은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경제학적인 투자와 기회비용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자들이 자기 투자에 돈을 쓰는 만큼, 데이트 비용만으로 여자들이 돈을 안 쓴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것 같다.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야 한다. 여자들이 자기 외모를 가꾸고 투자하는 만큼 그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 한다.”(최한빛, ‘미녀들의 수다’ 중에서)

    경제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은 바로 기회비용이다. 기회비용이란 무엇인가를 선택하기 위해 반드시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할 때 그 포기한 것의 가치다. 위의 언급에 비춰볼 때, 여자들의 기회비용은 데이트 비용이다. 데이트 비용과 자기를 가꾸는 비용 중 후자를 택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데이트 비용은 남자에게 양보(?)한 것이다.

    반면, 남자들의 기회비용은 자신을 매력적으로 가꿀 수 있는 자기 투자 비용이다. 대학생 커플 남학생의 경우 한 달 용돈에서 식비와 교통비, 친구들과의 술자리 등 생활비용을 빼면 나머지는 거의 데이트 비용에 들어간다. 회사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험료, 펀드 및 주식 납입금, 자동차 할부금, 부모님 용돈, 각종 경조사비 등을 제하고 나면 결국 데이트 비용만 남는다.

    그러나 데이트 비용을 남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여자들이 분담할 때, 비용 절감은 물론 연애의 질도 높아진다. 캠퍼스 커플인 변종국(26) 씨와 성지혜(26) 씨는 커플 통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한 달에 대략 쓰는 데이트 비용을 파악하고 월 초에 그만큼을 통장에 넣는다. 주로 변씨가 6대 4의 비율로 더 많이 입금한다. 그리고 데이트를 하다 비용이 초과하면 성씨가 부족한 부분을 메운다. 변씨는 “물론 나 혼자 데이트 비용을 부담했어도 지금 여자친구를 만났겠지만, 자꾸 옆에서 도와주고 분담하려는 모습에 더욱 신뢰가 가고 믿음이 생긴다”고 밝혔다.

    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고 독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박모(25) 씨는 연수 시절 독일 여성을 사귀면서 같이 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준비할 때 박씨는 교통편, 숙박편 등을 모두 예약해두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여자친구가 매우 불쾌해했다. 자기를 얼마나 불쌍하게 봤으면 모든 비용을 한마디 상의 없이 혼자 낼 수 있느냐며 화를 냈던 것.

    최근 사회 곳곳에서 여풍이 불고 있다. 사법시험,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 고시 합격자 수에서 여성의 비율이 남성을 웃돈다. 이전에는 어렵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기피하던 전투기 조종이나 건설 현장의 크레인 작업에도 여성들이 진출할 만큼 ‘금녀의 구역’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계산에서만큼은 금녀의 구역이 존재한다. 계산할 때가 되면 화장을 고치거나 자리를 피하는 모습은 오늘날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알파걸’의 모습이 아니다. 같은 유교문화권인 일본에서 10엔 단위까지 정확히 계산하는 모습과 사뭇 다를뿐더러 ‘레이디 퍼스트’가 일상화된 서구에서도 데이트 비용은 남녀가 거의 동등하게 지불하고 있음을 볼 때 상당히 이질적이다. 진정한 남녀평등은 데이트 비용의 더치페이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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