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6

2010.07.19

환호성 끝났다, 싸움은 안 끝났다

한나라당, 새 지도부 구성 하자마자 친이계 권력투쟁 ‘2라운드’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0-07-19 14: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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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호성 끝났다, 싸움은 안 끝났다

    7월 14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안상수 대표(가운데)와 최고위원들이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정부에서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또 대통령 주변에서 충성을 빙자해 호가호위하며 국정을 농단하는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당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7·14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가 선출된 다음 날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두언 최고위원이 터뜨린 일성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을 전후로 2년 반 동안 자신과 권력갈등을 빚어온 ‘SD(이상득 의원)계’, 특히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나 다름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여권 주류인 친이계 내부의 권력 다툼이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근 정치권을 들쑤셔놓은 ‘영포목우회’와 ‘선진국민연대’ 논란은 외형상 민주당이 여권 주류 일각의 정부 인사개입 등을 비판하는 형식이지만, 실제로는 정 최고위원과 박 차장 사이 권력투쟁의 부산물이란 게 정설이다. 정 최고위원은 청와대 모 수석비서관과 함께 박 차장 관련 정보나 자료를 야당에 건네는 데 간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고 있다. 또 본인이 직접 나서 “(영포목우회의 행태를 보고) 통곡하고 싶은 심정” “선진국민연대의 국정농단 사례가 100가지도 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두언 vs 박영준 “너 죽고 나 살자”

    정 최고위원은 그동안 두 차례 SD계를 겨냥한 도발을 감행했다. 정권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 초 18대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출마자들을 규합, 이상득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선상반란’을 주도했으나 무위로 돌아갔다. 그해 6월에는 이 의원과 박 차장(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등을 향해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비판해 박 차장을 청와대에서 나오게 만들었다. 두 차례의 도발로 정 최고위원도 내상(內傷)을 크게 입었다. 두 번 모두 이 대통령에게 심한 질책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음반을 취입하는 등 비정치적 활동에 열중하며 침잠(沈潛)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이제 정치적 목청을 돋울 무대가 마련됐다. 수시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최고위원들은 자주 기자간담회를 갖거나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때문에 언론을 통한 우회 공격도 수월해졌다. 그의 ‘승부사’ 기질로 볼 때 이번 선진국민연대 논란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권력투쟁의 장기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SD계도 방어와 반격에 나섰다. 이상득 의원은 자신이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리비아 등을 순방하는 동안 불거진 이번 논란에 대해 “영포목우회가 범죄집단처럼 취급받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그런 발언을 한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의원은 또 “나는 지난해 6월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대국민 약속을 지금껏 잘 지켜왔다. 중남미를 비롯해 자원외교만 7번 다녀온 것을 봐도 알 수 있지 않느냐”며 이번 논란에서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였다.

    환호성 끝났다, 싸움은 안 끝났다

    7월 15일 오전 한나라당 안상수 신임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첫 최고위원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박 차장의 대응은 더 적극적이다. 자신을 포함한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이 메리어트 호텔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공기업 등 정부 인사 문제를 논의했다고 주장한 민주당 전병헌 의원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7월 13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박 차장은 “메리어트 호텔 구석구석에 설치된 CCTV를 조사하면 모임 여부가 명확하게 드러난다”며 “CCTV 확인 결과, 모임 자체가 없었음이 판명되면 전 의원도 자신에게 허위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누구인지 검찰에서 밝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위정보’ 제공자가 여권 내부에 있음을 직감하는 듯했다. 박 차장은 여권 일부에서 제기된 사퇴설에 대해선 “사실무근”이라며 “임명권자인 대통령만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대통령은 말씀이 없는데 누가 사퇴설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고 일축했다.

    박 차장은 정 최고위원의 ‘권력사유화’ 발언 여파로 청와대를 떠날 때도 기자에게 “정두언 의원이 추천한 사람이 청와대에 가장 많이 들어왔다. 자신이 청와대 인사에서 배제됐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 선배가 지도부 경선에 출마했으니,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라며 짐짓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대신 선진국민연대 출신인 장제원 의원은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만사정통(萬事鄭通)’이라고 불린 분이 누구한테 인사 전횡을 했다고 하는 것이냐. 권력의 화신처럼 느껴진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장 의원은 또 “정두언 의원이 ‘권력투쟁으로 몰아간다. 본질을 흐린다’고 하는데, 본인이 (권력투쟁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정 의원의 말과 행동을 보면) 백번 양보해도 권력투쟁 아니면 지도부 입성 마케팅”이라고 혹평했다.

    친이계-친박계 알력도 커질 조짐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종합해보면, 7·14전당대회를 계기로 권력투쟁이 일단락되기보다는 정 의원과 박 차장 사이에 사생결단의 맞대결이 벌어지는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당초에는 정 의원이 지도부 경선 선거전 막판에 “이제 그만 논쟁을 접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권력투쟁이 잠복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최고위원 취임 일성에서 ‘충성을 빙자한 호가호위’ ‘국정농단’이란 격한 용어까지 써가며 자신이 이를 막는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전선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 앞으로 정 의원은 ‘당·청 쇄신’을 명분으로 논란을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박 차장 진영의 정면대응도 불가피한 만큼 여권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이 대통령만이 이번 사태를 조정할 수 있지만 아직은 당사자들에게 자제와 화합을 당부하는 메시지만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최근 박형준 정무수석(교체 전)과 주호영 특임장관 등을 시켜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을 하는 당사자들을 경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곧 단행될 개각과 후속인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내분을 진정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한번 불붙은 여권 주류 내부의 주도권 싸움이 금방 그칠 것 같지는 않다.

    권력투쟁과는 성격을 달리하지만 7·14 전당대회 후 주류인 친이계와 비주류인 친박계의 알력이 심해질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에는 일단 이 대통령 친정체제가 구축됐다. 새로 구성된 최고위원단에 안상수 대표를 비롯해 홍준표·나경원·정두언 의원 등 4명의 범(汎)친이계가 들어갔다.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 친박계는 경선에서 5위를 기록해 턱걸이 당선된 서병수 의원뿐이다.

    그러자 친박계 주변에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후보 경선을 관리할 신임 지도부가 ‘친이계 판’으로 짜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와 상극(相剋) 관계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7·28 서울 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승리해 여의도 재입성에 성공할 경우 친박계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안 신임대표는 ‘친이재오계’다. 이래저래 7·14전당대회 이후의 한나라당 기상도에는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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