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5

2009.12.15

檢, 한상률 강제송환 수사하나

‘학동마을’ 그림 구입 지시 밝혀져 파문 확산 … ‘안원구 파일’ 공개 가능성도

  • 박진석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jseok@hk.co.kr

    입력2009-12-09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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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2일 서울 종로구 가인갤러리는 반갑지 않은 손님들을 맞았다. 압수수색 영장을 앞세운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친 것. 가인갤러리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국세청 차장 시절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에게 인사 청탁과 함께 선물로 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최욱경 화백의 ‘학동마을’이 매물로 나온 화랑이다. 한 전 청장은 ‘그림 로비’ 의혹으로 올 초 퇴임한 뒤 쫓기듯 미국 연수를 떠났고, 야당은 뒤늦게 그를 검찰에 고발했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이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압수수색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것이 한 전 청장과 관련된 사안이 아니라, 이 화랑의 대표 홍혜경 씨의 남편 안원구 국세청 국장의 개인 비리 때문이라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검찰은 11월17일 자정에 안 국장을 체포했고, 세무조사 선처 또는 무마 대가로 기업들에게 30여 억원대의 그림과 미술품을 강매해 14억원의 이익을 챙긴 혐의로 20일 그를 구속했다. 이와 관련해 정가에서는 안 국장에 대한 ‘표적수사’설이 조금씩 유포됐지만, 그가 구속됨으로써 이 사안은 그대로 종결되는 듯했다.

    청장→핵심 실세→대통령, 확대되는 폭로전

    그런데 홍씨가 “한 전 청장이 남편에게 ‘정권 실세에게 10억원을 줘야 하는데 안 국장이 3억원을 마련해주면 차장직을 주겠다’고 제안했다”는 말을 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단순한 개인 비리에서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사건의 외연이 급속히 확대된 것. 이어 한 전 청장이 안 국장에게 “핵심 실세인 이상득 의원에게 내 유임 로비를 해달라”고 요청했으며, 그림 로비 의혹이 제기된 뒤 한 전 청장과 친한 박영준 국무조정실 국무차장의 측근들이 집요하게 관련 사안들을 캐물었다는 등 홍씨의 후속 폭로가 쏟아졌다.



    급기야 안 국장의 비밀 메모가 담긴 문건이 공개되면서 이명박 대통령까지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A4 용지 13쪽 분량의 이 문건은 안 국장이 자신의 구속에 대비해 작성한 뒤 일부 지인에게만 전달했던 것이다. 문건의 핵심은 2007년 포스코건설 정기 세무조사 과정에서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는 이명박’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전표가 발견됐다는 내용이다.

    문제의 도곡동 땅은 1985년 이 대통령의 큰형 상은 씨와 처남 김재정 씨가 현대건설 등으로부터 16억원에 사들였다가 95년 포스코개발(현 포스코건설)에 263억원을 받고 매각해 막대한 차익을 올린 땅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직전 ‘국회의원 재산공개 때 도곡동 땅을 처남 명의로 은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내용의 1993년 ‘세계일보’ 보도, 그리고 1999년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김만제 포항제철(현 포스코) 전 회장이 “땅 실소유주가 이명박 씨라는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답변한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이 대통령이 실소유주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검찰은 “상은 씨 보유분의 실소유주는 제3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유보적 결론을 내렸지만, 이듬해 특별검사팀은 “이 대통령과 무관한 땅”이라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그 결과가 뒤집어질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안 국장은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있던 2007년 7월~2008년 3월 포스코건설 정기 세무조사 때 회사 측이 제출한 자료 속에서 이 전표를 찾았다고 했다. 그러나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문서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도곡동 땅이 실제 이 대통령의 소유라면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등록 때 재산을 허위 신고한 셈이 돼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퇴임 후 수사를 받게 될 수 있다는 의미. 사실로 밝혀질 경우 무엇보다 국가지도자로서의 도덕성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될 것이므로 향후 국정운영에 ‘치명상’을 입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뇌관은 또 있다. ‘쫛쫛쫛과 △△일보 사장의 만남과 거래’라는 제목의 안 국장 메모다. 여기엔 10월20일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와 시사월간지를 발간하는 한 언론사 대표가 점심회동을 했다고 적혀 있다. 당시 이 언론사 대표가 안 국장과 관련한 기사의 요약본을 휴대하고 있었다고 한다.

    도곡동 땅 실소유주 관련 전표 발견 내용이 포함돼 있던 이 기사는 점심 회동 이후 결국 보도되지 못했다는 게 안 국장의 주장. 이에 대해 해당 언론사 측은 “기사 요약본을 들고 나갔다거나 기사를 무마시켰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며 강력하게 부인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메모엔 청와대, 국가정보원, 국세청 관계자들이 총동원돼 보도를 막았다는 주장도 적혀 있어 자칫 또 다른 논란을 낳을 수도 있다.

    다양한 경로 통해 귀국 종용

    물론 이 내용들은 아직까지 안 국장 개인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메모에 등장하는 당사자들도 하나같이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미국에 체류 중인 한 전 청장도 기자회견을 자청해 의혹을 부인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일단 한 전 청장의 귀국 여부가 초점이다. 모두가 의혹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한 전 청장조차 귀국을 거부한다면 사태가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 물론 그가 귀국한다고 해서 안 국장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중요한 변수가 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안원구 파일’의 추가 공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안 국장에게서 많은 자료를 넘겨받았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을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사태의 향방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열쇠는 ‘도곡동 땅 전표’다. 폐기 여부나 사본의 존재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안 국장이 ‘트릭’을 쓰고 있을 수도 있는데, 이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으로선 상상도 하기 싫은 시나리오일 것이다.

    검찰의 태도도 관심 대상이다. 검찰은 은밀하게 전군표 전 국세청장을 소환 조사하는 등 한 전 청장 조사에 필요한 사전 준비를 모두 마친 상황이다. 검찰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 전 청장의 귀국을 종용하고 있지만, 범죄인 인도 청구 등 강제송환에 나설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구속 사안에 해당하는 범죄 혐의가 포착되지 않아 강제송환은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겠다는 얘기다. 사실 검찰 처지에서는 이번 사안이 여러모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한 전 청장에 대해 참고인 중지나 기소 중지 조치를 한 뒤 이 사건을 장기 미제로 만드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라는 얘기가 검찰 안팎에서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한 전 청장이 당초 “보지도 못했다”던 ‘학동마을’ 그림을 직접 구입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검찰의 시나리오는 대폭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과연 검찰이 한 전 청장을 강제송환할 것인가, 그렇다면 수사 범위를 한 전 청장에 한정할 것인가, 아니면 정권 실세들로까지 확대할 것인가, 궁극적으로는 도곡동 땅 논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칼을 뽑을 것인가. 어쨌든 머지않아 서초동이 또 한 번 정국의 중심으로 달아오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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