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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공포 유전일까 경험일까

상상과 현실 곳곳에 숨어 있다 불쑥불쑥 찾아와

  •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공포 유전일까 경험일까

공포 유전일까 경험일까
가을철 극장가에 때아닌 공포영화 바람이 불고 있다. 다큐멘터리식 공포영화로 인기를 끌고 있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전작의 효과를 충분히 본 ‘쏘우6’, 독창적 스타일로 주목을 끄는 ‘드레드’가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것.

한편에선 ‘리얼’ 공포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신종인플루엔자(H1N1)의 확산과 함께 감염에 대한 우려가 공포심을 자극한다. 이 밖에도 험악하게 짖는 개,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거미 등 도처에는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요소가 많다. 영화 속 상상이든, 현실의 두려움이든 공포는 사람에게 왜 찾아오는 것일까.

성인 10명 중 1명은 평소에 공포 느껴

미국보건의료원(NIH)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18세가 넘는 성인 1920만명 이상이 공포증을 겪고 있다고 한다. 성인 10명 중 1명은 뭔가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도 거의 비슷한 비율로 공포감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현대인이 느끼는 대표적인 공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얼마 전 미국의 과학 전문 웹사이트 라이브사이언스닷컴은 현대인이 느끼는 10대 공포를 선정해 발표했다. 가장 전형적인 공포가 치과치료를 받을 때 느끼는 두려움이다. 서양이나 한국이나 치과치료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미국의 의료 전문 사이트 웹엠디(WebMD)에 따르면, 미국인 5명 중 1명은 치과치료가 무서워 치과에 가길 꺼려한다.



국내에서는 240만명이 치아에 문제가 있는데도 치과치료에 따르는 고통에 대한 공포 때문에 진료를 기피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적지 않은 사람이 몹시 심각한 통증이 아니라면 가급적 치과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마취주사를 맞을 때의 고통이나 드릴이 치아를 뚫을 때 느껴지는 불가항력 등 과거의 좋지 않은 경험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개에 대한 공포 역시 마찬가지. 개는 사람과 가장 친숙한 동물로 인식되고 있지만, 한 번 부정적인 경험을 겪고 나면 태도가 180도 바뀐다. 미국 오하이오대 브래드 슈미트 교수팀은 “일반인은 개에 물리거나 누군가 개에 물린 모습을 본 경우 공포심을 느낀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후천적 경험에 의한 심리효과가 작용하는 셈이다. 그런데 거미나 뱀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이들에 대한 공포는 진화론적 측면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대다수의 사람은 거미에 혐오감을 갖고 있다. 특히 여성이 남성보다 거미에 더 큰 공포를 느낀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데이비드 랙슨 교수팀은 2007년 국제학술지 ‘진화와 인간행동’에 “뱀이나 거미를 본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공포에 질린 표정을 더 잘 짓는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랙슨 교수는 이 논문에서 “어미들이 식량을 모으고 새끼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습성으로 추정된다”면서 “이에 반해 남성은 사냥을 하면서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표정이 덜 일그러진다”고 설명했다. 뱀에 대한 공포도 진화론적 접근 방식이 통용된다. 오랜 야생 경험을 한 인류 조상이 생존을 위해 자신에게 위협적인 뱀을 더 잘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 눈이 뱀, 개구리, 꽃 가운데 뱀을 가장 쉽게 구별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이는 인류 조상이 위협적인 존재에게 대항하며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체득한 습성이라고 볼 수 있다.

공포 유전일까 경험일까

고소공포증은 특정인에게만 나타나는 증상이 아닌,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불가항력적 공포다.

무서우면 등골이 오싹, 본능적 반응

공포가 몸에 미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활발하다. 그렇다면 공포심이 유발될 때 나오는 ‘등골이 오싹하다’거나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는 말의 근거는 어디서 왔을까.

실제로 공포영화를 보면 이처럼 시원한 느낌이 든다. 사자나 고슴도치 등 야생동물이 적과 만났을 때 갈기나 온몸의 털을 곧추세우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거나 날카로운 털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다. 피부 밑 털주머니에 붙어 있는 ‘털세움근’이 수축하면서 털을 직각 형태로 바짝 세운다. 과학자들은 공포심을 느낄 때, 사람의 머리털 역시 쭈뼛 서지만 그 정도가 미미해 눈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말한다. 동물보다 퇴화하긴 했지만 털세움근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의지와 무관하게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자율신경계 중 근육의 수축을 일으키는 교감신경이 활성화한 결과다.

공포를 느낄 때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유는 추울 때 나타나는 신체 반응과 비슷하다. 사전에서 등골이란 ‘등의 한가운데 길게 고랑이 진 곳’을 뜻한다. 공포영화를 볼 때 실제로 오싹해지는 부위는 여기가 아니다. 다만 추울 때처럼 등이 움츠러들고 몸이 으스스해지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다. 신경정신 전문가들은 “공포를 감지하는 부위는 대뇌 변연계”이며 “피부나 장기 등 인체 곳곳에 퍼져 있는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추울 때와 유사한 반응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체온이 떨어지면 몸 안의 장기에 혈액이 원활히 흐르도록 하기 위해 피부로 향하는 혈관은 거의 닫히게 된다. 그리고 체온을 올리기 위해 피부 근육을 떨게 만들어 열을 발생시킨다. 그래서 얼굴에 핏기가 없어지고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다. 공포영화를 본 뒤 체온이 약간 올라가고 추위를 느끼는 이유도 같은 메커니즘이다.

여전히 많은 공포의 원인들이 베일에 싸여 있다. 선천적 뇌 이상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후천적 원인이 강하다는 게 과학자들의 설명. 비행공포증은 선천적 이유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공포에 속한다. 현대인에게 흔히 나타나는 공포증으로, 아주 작은 긴장에서부터 극도의 두려움까지 그 편차가 크다.

미국 에머리대 트라우마 회복 프로그램의 책임자 바버라 로스봄 교수는 “비행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비행기의 추락을 걱정하거나 좁은 객실 안에서 폐쇄공포증에 시달리는 두 부류로 나뉜다”고 말한다. 하지만 비행기가 추락할 가능성은 2만대 중 1대꼴로, 자동차 100대 중 1대가 충돌사고가 나고, 심장질환자 5명 중 1명이 사망하는 것과 비교하면 실제로 비행기 사고를 경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천둥, 번개에 대한 공포는 심장박동의 상승과 식은땀을 유발하는 등 신체에 변화를 가져온다. 미국 아이오와대 존 웨스트펠드 교수는 2006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날씨에 대한 공포를 조사한 결과, 의외로 많은 사람이 날씨공포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웨스트펠드 교수는 “천둥, 번개에 대한 공포는 오랫동안 한 이불을 덮고 잔 배우자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천둥, 번개에 대한 공포처럼 어둠에 대한 공포 역시 성인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어린이는 누구나 어둠에 공포를 느낄 수 있다. 두뇌 발달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어린이들은 상상 속의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리라고 믿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어둠에 대한 공포는 ‘불확실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또한 ‘어둠 공포증’이라고 불리는 이 공포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성인이 돼서도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불가항력적 공포도 있다. 바로 고소공포증이다. 과학자들은 고소공포증이 특정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비정상적 두려움이라고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영국왕립학회에 보고된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들도 3~12m 높이에서 공포심을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 원인이 밝혀진 것이 거의 없는 공포증 중에는 광장공포증도 있다. 낯선 거리나 사람이 밀집한 백화점 또는 공공장소에 혼자 나가게 되면 심한 공포에 휩싸이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중교통 안 타기, 쇼핑 안 하기 등 바깥 생활을 최대한 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광장공포증에 대해 시작 시기가 13세 전후라는 정도만 알아냈을 뿐이다.



주간동아 2009.11.17 711호 (p72~73)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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