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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하얀전쟁’ 우유 열국지 02

‘분유의 제왕’은 바뀌는가

매일유업 상반기 첫 1위 등극 … 45년 절대강자 남양유업 아성 흔들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분유의 제왕’은 바뀌는가

‘분유의 제왕’은 바뀌는가
‘한 번 1등은 영원한 1등’이라는 공식이 통하는 시장이 유(乳)업계다. 그만큼 순위변동이 흔치 않다. 하지만 최근 이런 ‘유업계 공식’이 깨지고 있다. 45년간 국내 분유시장에서 ‘부동의 에이스’로 군림한 남양유업(이하 남양)이 그동안 버티고 있던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서 한발 물러선 것.

그 틈에 35년 전 첫 분유 생산 이후 지금까지 남양의 그늘에 가려져왔던 ‘2인자’ 매일유업(이하 매일)이 가장 높은 자리로 치고 올라갔다. 매일은 이번 일을 천우신조의 호기로 활용해 남양처럼 분유업계 장기집권을 꿈꾸는 분위기다.

두 회사가 8월 발표한 올해 2분기 실적공시에 따르면, 매일은 상반기 915억원의 분유 매출을 기록해 남양을 154억원 차이로 제치고 사상 처음 분유시장 1위에 올랐다. 매일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453억원. 같은 기간 남양은 408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수치만 놓고 보면 1분기에 이미 매일이 남양을 제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엔 논란의 소지가 있다.

매일은 분기 매출에 전·탈지분유를 포함시켰고 남양은 뺐기 때문인데, 보통 분유라고 하면 전·탈지분유를 뺀 조제분유(성장기용 조제식 포함)만을 일컫는다. 하지만 2분기 매출액은 이런 논란을 끝낼 정도로 두 회사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매일이 462억원, 남양은 353억원을 기록해 109억원으로 차이를 벌린 것. 이는 유업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사건’이다. 다음은 유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쪽(유업계)은 주원료가 원유(原乳)로 같고, 기술력에도 큰 차이가 없어 후발주자가 1위 자리를 꿰차는 일은 매우 드물다. 우유는 ‘서울우유’, 분유는 ‘남양분유’, 발효유는 ‘요플레’(빙그레)처럼 1위 업체의 브랜드 파워가 막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에서 분유업계 1, 2위 자리바꿈은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다.”



1, 2위 자리바꿈은 유업계 ‘상징적 사건’

시장에 던져진 충격파가 큰 만큼 남양 측은 곤혹스러워하면서도 ‘1, 2위 간 자리다툼은 매일의 매출액 숫자놀음’이라 규정하는 분위기다. 순위 바꿈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니와, 인정한다 해도 연말까지는 가봐야 제대로 된 성적표가 나온다는 모호한 표정이 연출되고 있다.

“매일의 전·탈지분유 매출액은 반기 110억~15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를 감안하면 상반기 분유 매출액은 760억원 수준이다. 대형할인마트 판매량을 보면 된다. 설사 1위가 바뀌었다 해도 최근 매일 제품 샘플 조사에서 사카자키균이 검출돼 판매량이 줄고 있기 때문에 연말에는 확실히 남양의 우세가 예상된다.”

남양 홍보 관계자의 말처럼 국내 4개 대형할인점의 6~8월 분유 판매실적을 보면 55대 45 정도로 남양분유의 판매량이 높다. 하지만 남양 측 주장에는 군색한 측면이 있다. 매일의 전·탈지분유 매출액을 150억원으로 추정하는 근거에 대해 “회사 내부 자료여서 알 수 없다. 명백한 근거는 없다”고 설명하기 때문. 여기에 대형할인점에서 남양의 분유 판매량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양이 전체 분유시장의 50%를 넘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추산(남양은 대형할인점 판매 비중이 60% 정도라고 주장한다)이다.

나머지는 동네 소매점(슈퍼마켓 등) 판매와 온라인 판매가 차지한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2009 매일유업 전·탈지분유 월별 매출액’을 보면 1월 2억1000만원, 2월 1억9000만원, 3월 17억원, 4월 24억원, 5월 13억3000만원, 6월 18억7000만원으로 나와 있다. 1분기 전·탈지분유 판매액은 21억원, 2분기는 56억원인데, 매일은 2분기 전·탈지분유 매출액 56억원을 뺀 조제분유만 따져도 40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남양보다 53억원 앞서는 규모다. 올해 1분기 매출액 또한 전·탈지분유를 빼도 23억원 많다. 매일 홍보 관계자의 말이다.

‘분유의 제왕’은 바뀌는가
“할인매장도 주요 판매시장이지만 동네 슈퍼마켓 판매량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공시실적이 나와 있는데 인정하지 못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2위가 됐으면 절치부심해서 1위를 탈환하겠다고 하면 되는데 왜 이런 식으로 나오는지 모르겠다.”

분유시장의 이 같은 급성장에 힘입어 매일은 올 상반기에만 173억원(전체 매출액 418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창사 이래 최대 영업이익으로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175억원)과 맞먹는다. 이에 비해 남양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131억원(전체 매출액 4802억원)이었다.

남양, 멜라민 파동과 가격인상 등 악재 겹쳐

유업계 관계자들의 말처럼 ‘1000원을 넣은 후 한 번의 실패도 없이 5회 연속 인형 뽑기’보다 어렵다는 유제품 판매순위 변동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매일의 꾸준한 신제품 개발도 영향을 미쳤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남양의 잇따른 ‘패착’이 더 큰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분기마다 50억원 이상 격차를 벌리며 앞서나가던 남양이 매일에 추격의 빌미를 준 것은 ‘멜라민 분유 파동’ 때부터라고 업계는 분석한다.

지난해 9월 남양은 수입한 분유 원료에서 멜라민이 검출되자 ‘멜라민이 검출된 분유가 한 통이라도 나오면 100억원을 드리겠다’는 광고로 긴급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 광고는 오히려 소비자들의 불안을 가중시켰고, 회사 관계자가 국정감사에 출석하는 광경이 TV로 안방에 전해졌다. 소비자들에겐 ‘뭔가 잘못이 있어 국감에까지 나갔다’는 인식이 형성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조사를 통해 남양의 분유는 멜라민 검출 원료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판명됐지만, 소비자의 ‘각인효과’는 매출 하락으로 이어졌다.

‘분유의 제왕’은 바뀌는가

1971년 시작된 ‘전국우량아선발대회’는 남양을 분유업계 제왕자리에 올려놓았다.

여기에 올해 초 정부가 출산장려를 위해 3년간 분유와 기저귀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면제한다고 발표하자 소비자들은 분유값 하락을 예상했으나 남양은 오히려 9~13% 올렸다. 리뉴얼 제품을 출시하면서 가격을 올린 것이지만,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서 소비자들은 저렴한 제품에 손이 갔다. 이때 매일은 분유 가격을 4~5% 내렸다.

사실 저출산과 모유 수유 확대로 분유 매출이 주는 데다 두 회사에서 분유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도 생각보다 높지 않은 상황(지난해 매일의 분유 매출 비중은 22%, 남양은 19% 정도다)에서 두 회사의 선두경쟁은 다소 소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일본 분유로 우리나라 어린이를 키울 수 없다는 생각에’(남양 창업주 홍두영 회장), ‘남양의 까다로운 거래조건과 불리한 영업조건에 불만이 있던 상인들은 새로운 매일의 견제상품을 기다렸다’(매일유업 社史)는 두 회사의 ‘분유사업 진출 정신’은 30년 넘게 경쟁하면서 그들의 자존심이나 다름없게 돼버렸다.

두 회사 설립자의 각별한 애정만큼 두 회사 간 경쟁은 이미 업계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혹여 경쟁사의 실착(멜라민, 사카자키균 파동 등)이 포착되면 문자메시지로 그것을 적극 알리는가 하면 인터넷 여론몰이에도 공격적이다. 두 회사 모두 회사 차원의 조직적인 개입은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영업점 관계자들이 비방글로 고소되는 등 난타전은 치열하다.

어쨌든 ‘절대강자’가 존재하는 유일한 시장인 유업계에서 상반기 매일의 약진은 남양의 아성을 허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올 연말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주목된다. 남양이 2인자임을 자인할지, 아니면 매일의 ‘상반기 깜짝 천하’로 귀착될지는 연말 성적표를 받아볼 때쯤 결정되기 때문이다.

Tip!
분유의 종류
◎ 조제분유 원유 또는 유가공품을 원료로 모유 성분과 비슷하게 제조·가공한 것으로 유성분이 60% 이상 포함된 모유 대용품.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모유수유 장려를 위해 조제분유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 성장기용 조제식 이유식 제품으로 분리대두단백 등 단백질 함유 식품을 원료로 생후 6개월 이상 영·유아의 성장과 발육에 필요한 영양소를 첨가해 제조·가공한 것. 유성분이 60% 미만 포함됐다.
◎ 전지분유 우유를 그대로 건조시켜 분말로 만들어 첨가물을 넣지 않은 것.
◎ 탈지분유 우유에서 지방을 분리, 제거하여 건조시켜 분말로 만든 것으로 과자나 아이스크림에 들어가는 가루우유로 보면 된다.




주간동아 2009.09.29 705호 (p20~21)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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