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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시청률 30% … 선덕여왕 납시오!

명확한 선악구도, 빠른 전개로 안방 점령 … ‘性 해방구’ 미실에 대리만족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시청률 30% … 선덕여왕 납시오!

시청률 30% … 선덕여왕 납시오!
지난달까지만 해도 ‘선덕여왕’이라 하면 ‘신라시대 여왕’이 대답의 전부였다. 미간에 힘을 주고 굳게 입술을 깨물면서 학창시절 기억을 짜낸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 그리고 동양 최초의 천문관측대인 첨성대(국보 31호)를 축조한 여왕’ 정도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주변 사람에게 선덕여왕을 물어보시라. 진평왕의 버려진 딸부터 15년간 서역을 떠돈 ‘비하인드 스토리’를 비롯해 미실, 풍월주, 화랑 등 ‘줄줄이 알사탕’이다. 5월25일 시작한 MBC 대하사극 ‘선덕여왕’ 방영에 힘입어 학창시절 시험용으로 외웠다가 기억도 희미해진 그 선덕여왕이 요즘 되살아났다.

첫 회 시청률 16%(TNS 미디어 집계, 이하 전국 기준), 2회 16.6%로 스타트와 동시에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더니 4회(6월2일)는 22.3%를 기록했다. 6회(9일) 때는 전국 25.2%, 서울 수도권 27.1%로 가파른 상승세를 그리며 ‘꿈의 30% 고지’를 눈앞에 뒀다. 경기불황에도 드라마 방영 전후 광고 30여 개가 ‘완판(완전 판매) 행진’을 이어가니 근래 보기 드문 현상이다.

표독스런 연기, 고현정의 변신

드라마 ‘선덕여왕’은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의 일대기를 그린 사극. 우여곡절 끝에 서라벌로 돌아온 덕만 공주(남지현 분)와 삼국통일의 주역이 될 김유신(이현우 분), 김춘추(유승호 분)의 활약 그리고 이들의 강력한 라이벌이자 끝없는 권력의 화신인 미실(고현정 분)의 권모술수가 매주 월, 화요일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시청률 30% … 선덕여왕 납시오!

드라마 ‘선덕여왕’ 주요 배역들. 맨 왼쪽부터 비담(김남길 분) 미실(고현정 분) 선덕여왕(이요원 분) 김유신(엄태웅 분) 천명공주(박예진 분) 김춘추(유승호 분).

6회까지는 이요원 박예진 엄태웅 등 성인 배우들이 출연하지 않았는데도 20%대 중반의 시청률을 기록해 ‘대장금 시청률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2003년 ‘대장금’은 3회 만에 20.8%의 시청률을 올리더니 이후 50%가 넘는 ‘대박’을 터뜨렸다. ‘선덕여왕’이 초반부터 시청자를 사로잡은 이유는 뭘까.

초반 ‘워밍업’ 단계 없이 고속질주가 가능한 것은 단연 고현정의 ‘변신’ 덕분이다. 앞서 동시간대 드라마로 대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내조의 여왕’의 후광이라느니, 제작비 200억원이 넘는 ‘물량공세’라느니 다양한 분석이 나오지만 고현정 앞에선 후순위일 뿐이다.

권력을 장악하려는 냉혈하고 표독스러운 미실 역을 소름끼치게 연기한 그는 시청자들의 ‘닭살’을 돋게 했다. 왕과 풍월주(風月主·화랑의 우두머리) 등 당대의 영웅호걸들을 미색으로 녹여 신라 왕권을 쥐락펴락하는 여걸로서 화랑들의 할복 앞에서도 태연하고, 부하의 목을 베고 나서도 냉소를 머금는 공포영화 수준의 섬뜩한 연기력을 보여준 것. 그것도 청초하고 순수한 표정으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서 말이다.

이 때문에 표독한 표정에 호통 연기가 대부분이던 사극의 악녀 캐릭터를 넘어 새로운 악녀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평가와 ‘착한 캐릭터’인 고현정의 잠재력을 끄집어냈다는 찬사가 동시에 쏟아졌다. 시청자가 이해하기 쉽게 선악구도를 명쾌하게 그린 점도 순조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했다. 선덕여왕이 될 덕만 공주가 정적(政敵) 미실과 정면 대결한다는 간결한 흑백구도는 시청자에게 부담스럽지 않다.

사극은 현대극과 달리 시청자들이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때론 학창시절 배운 국사책을 머릿속에 끄집어내야 하지만 ‘선덕여왕’은 신라시대라는 배경에 대해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고, 이야기 전개에 박차를 가했다. 왕실을 둘러싼 음모와 피비린내 나는 암투를 스피디하게 펼쳐낸 뒤 새로운 상황에 돌입하는 박진감 있는 호흡으로 사극 장르의 공식처럼 굳어진 유년시절부터의 흐름도 거슬러갔다.

초반부터 성인 배역의 미실이 등장해 암투극을 연출했고, 시청자들이 극에 몰입한 3회가 돼서야 아역의 어린 시절이 그려졌다. 쌍둥이로 태어나 왕궁으로부터 버려진 덕만 공주도 마찬가지. 서역을 떠돌다 15년 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을 단편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중간 중간 정적 미실이 힘을 키우는 모습을 비중 있게 보여줬다. 동시에 덕만 공주에 동화되는 효과도 이끌어냈다.

“굉장히 많은 분량을 그냥 버렸다. 극 전개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다. 제작자 처지에선 (촬영한 컷이) 아깝지만 많은 분이 과감하게 버리고 스피드 있게 나가자는 의견을 냈다. 여기에 고현정 전노민 엄태웅 씨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도 빛났다. 무게가 3~5kg이나 되는 가체(머리 위에 얹는 큰 머리)를 10시간 넘게 착용하는 강행군도 잘 소화하고 있다. 아령을 머리에 이고 뛰어다닌다고 보면 된다. 의상 고증에도 30억원 정도 들었다. 신라인들의 화려하고 기품 있는 의상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파격적인 신라의 性 ‘원초적 본능’

윤성호 제작 PD의 말이다. 그는 “‘로마 역사보다 자료가 더 없는’ 우리 고대사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고증하는 작업과 ‘보고 재미있는’ 사극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性)에 대해 관대하고 개방적인 신라인들의 의식도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더했다. 할아버지(진흥왕)-아들(진지왕)-손자(진평왕)와 관계를 갖는 미실은 말할 것도 없고 낮은 신분의 사람이 높은 신분의 사람과 성관계를 맺고 그것을 통해 사회·정치적 관계를 확대해나가는 색공(色供), 근친혼, 사통(私通), 마복자(摩腹子) 등도 현대인에게는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조선과 달리 신라는 굉장히 아득한 옛날로 다가오기 때문에 판타지가 될 요건이 충분하다. 성에 대한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신라인, 특히 미실을 통해 도덕률을 강조하는 대신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인간 원형(原形)을 다뤘다. 시청자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그것과 비슷하다. 여기에 ‘천추태후’와 ‘자명고’가 앞서 방영되면서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는 데 대한 남성 시청자들의 거부감도 줄여줬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성적 억압을 강요당하는 현대인들에게 근친상간 등 인간 본연의 모습을 연출하면서 성적 해방구를 만든 것도 ‘선덕여왕 신드롬’에 일조했다”고 분석한다.

반대 해석도 있다. 2005년 소설 ‘미실’(문이당 펴냄)로 미실의 존재를 한국인에게 각인시킨 작가 김별아 씨는 “드라마에서는 미실의 캐릭터를 악녀처럼 다룬 것 같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해석한 미실은 고려의 불교, 조선의 유교가 확립되기 전 삼국통합 이데올로기를 가장 잘 구현한 정치적 인물이면서 사랑의 여인이다”라고 규정한다. 이처럼 미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대화의 화제가 되고 곧 시청률 고공행진으로 이어지게 마련. 어쨌든 초반 ‘선덕여왕’ 신드롬이 태풍이 될지, 미풍으로 끝날지 좀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주간동아 2009.06.23 691호 (p60~61)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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