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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심영섭의 시네마 천국

영화 품은 소년들의 영화 만들기

가스 제닝스 감독의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

  •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영화 품은 소년들의 영화 만들기

영화 품은 소년들의 영화 만들기

가스 제닝스 감독은 영화감독을 꿈꿨던 자신의 성장담을 화면에 담았다.

‘나이트메어’ 시리즈로 유명한 감독 웨스 크레이븐은 어린 시절 부모가 허락한 유일한 장르, 디즈니 영화를 보는 것으로 날을 지새웠다고 한다. 이 독실한 기독교 집안은 어린아이들에게 폭력이나 성이 난무하는 사악한 영화 따위는 엄금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 후 40년, 이 보수적인 집안의 아들은 어른이 됐고 단말마의 비명에 난도질과 살육이 난무하는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변신한다.

여기 장래의 크레이븐 감독이 될 법한 꼬마가 한 명 있다. 잔디를 깎다가 뇌졸중으로 세상을 버린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사는 소년 윌은 어머니와 함께 종교공동체 안에서 소년기를 보낸다. TV는커녕 시계조차 문명의 이기로 멀리해야 하는 소년. 억압과 순종이 곧 삶의 나침반인 마을에서 소년은 우연히 영화 ‘람보’를 보게 된다. 그런데 우연히 본 영화 한 편이 자신의 운명을 유혹하는 영접이 될 줄이야. 영화를 보고 온 날 밤, 꿈속에서 람보의 아들이 돼 알통 창창하게 허수아비 괴물과 싸운 윌은 카터라는 또 다른 악동과 힘을 합쳐 영화를 찍기로 결심한다.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은 영화에 관한 영화다. 흔히 ‘자기 반영성’이라고 불리는 이 장르는 고다르, 트뤼포 같은 고상한 예술감독이라면 꼭 한 번쯤은 폼 잡고 시도해본 단골 영화메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자기 반영성이라는 개념이 성장영화의 맥과 합쳐진다. 최근 비디오 세대의 꿈과 막가파식 영화 만들기를 다룬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소년 버전이라고나 할까.

TV를 못 보는 소년은 그 대신 열심히 만화를 그리고, 이것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콘티북이 된다. 카터도 영화라면 윌 못지않게 열심이다. 남몰래 영화관에서 비디오로 영화 한 편을 뚝딱 복사하는 것은 물론, 바그너의 음악 발퀴레(‘지옥의 묵시록’의 음악)를 틀어놓고 친구를 폼 나게 다이빙시킨다. 비디오카메라 한 대로 즉석에서 무엇이든 뚝딱 만들고 부수는 이 소년들의 신나는 영화 찍기는, 그러나 뒤집어보면 영화 만들기가 하나의 놀이라는 것, 그리고 영화 만들기의 지난함에 대한 은유나 다름없다.

세트장에서 흔히 생기는 사고, 제작자와 감독의 불화, 스타와 그 추종자들…. 이러한 과정은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에서도 벌어진다. 프랑스에서 전학 온 학교 스타 디디에의 출현으로 윌과 카터 사이는 멀어지고, 급기야 주먹다짐에까지 이른다. 혼자 찍기, 둘이 찍기, 베끼기, 몰래 찍기, 사람 모아놓고 찍기를 거듭하는 카터와 윌의 영화적 진보는 독립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충만한 제닝스 감독이 아동 버전으로 축약해놓은 영화의 진화과정과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극장에서 시작해 극장에서 끝난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로 평단의 호평을 받은 제닝스 감독은 바로 자신의 성장담, 영화 마니아에서 감독이 되기까지의 소년 시절을 발랄하게 회고한다. 그 속에는 우리가 거쳐온 1980년대에 대한 향수, 부모 몰래 보는 비디오 영화에 청춘을 걸고 벽돌만한 휴대전화를 부러운 듯 쳐다보며 시도 때도 없이 이소룡 흉내를 내던 우리네 청춘과 판박이인 영국 소년들이 있다.

람보는 폼 나는 남성 영웅의 아이콘이자 영화의 다른 이름이다. 과연 아이들이 싸워야 하는 귀신 허수아비는 무엇이었을까. 아버지가 없는 윌은 종교공동체에서 소외당하고, 어머니가 무심하기만 한 카터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 심지어 많은 추종세력을 거느린 듯 보였던 디디에도 프랑스 친구들의 집단에서는 놀림거리가 된다. 이 장면을 보니 람보는 1980년대의 기호일 뿐 아니라 꿈을 꾸는 자, 영화라는 우주를 유영하는 모든 아이들의 80년대식 아이콘은 아닌지. 람보의 아들들은 대놓고 ‘무자식 상팔자’ 대신 ‘무부모 상팔자’라고 외친다. 이 귀여운 람보 소년들의 만화적 상상력에, 그들이 가진 ‘살부살모’의 도발적 욕망에도 미소를 띠게 된다.



주간동아 2009.05.26 687호 (p86~86)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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