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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기자의 It-Week | 열다섯 번째 쇼핑

드레스코드 제너레이션

  • 김민경 holden@donga.com

드레스코드 제너레이션

드레스코드 제너레이션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블랙 타이’ 드레스코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드레스코드는 서양식 예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때와 장소에 맞게 옷을 입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죠. 아직도 초청장에 선문답처럼 인쇄된 드레스코드를 보면 마음이 무거워지긴 하지만요.

얼마 전 영화평론가 하재봉 씨가 ‘호스트’인 파티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어요. 한국의 ‘미스터 탤런티드’ 가운데 한 명인 하재봉 씨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탱고 선생이십니다. 그래서 탱고 공연을 겸한 송년 파티를 연 거예요. 파티는 제가 가장 싫어하는 세계화시대의 10대 발명품 가운데 하나지만 탱고가 호기심을 자극했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주간동아’에 좋은 글을 써주신 그의 초대를 거절할 수 없었어요. 초청장에 인쇄된 ‘Dresscode : Red’란 문구를 보면서 고민이 시작됐죠.

아시겠지만 ‘드레스코드’는 행사 목적에 맞는 옷차림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의미해요. 가장 격식을 차린 드레스코드는 ‘화이트 타이(white tie)’일 거예요. 요즘 영화제의 ‘레드카펫’에 선 배우들을 통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죠. 남성은 하얀색 윙칼라 셔츠에 하얀색 나비넥타이, 검은색 정장(연미복) 차림이고 여성은 긴 드레스에 클러치를 들어줍니다. 드레스코드가 ‘블랙 타이’면 남성은 검은색 나비넥타이, 여성은 무릎선 길이의 칵테일 드레스를 입죠. 일반인이 이런 차림을 하긴 어렵기 때문에 요즘은 격식 있는 자리라도 드레스코드를 ‘라운지 슈트’로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초대장을 받으셨다면 짙은 색 비즈니스 슈트로 해결하면 되는 거예요.

연말이면 국내 브랜드에서 칵테일 드레스를 많이 내놓는다는 건 파티와 드레스코드가 직장인 사이에서도 자리를 잡았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칵테일 드레스는 실크나 벨벳 같은 소재를 쓰고, 약간은 화려한 장식을 단 ‘원피스’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어쨌거나 의전용 드레스코드는 지키지 않으면 ‘결례’고, 국제 외교에서는 상당히 심각한 분쟁거리가 되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요즘 파티 초대장에 써 있는 ‘드레스코드’는 좀 달라요. 의전용이 아니라 파티 참석자들의 ‘의지’를 보여달라는 요구인 거죠. 예를 들어 행사 성격에 따라 ‘80’s’ ‘GOLD’ ‘RETRO’ 같은 드레스코드가 정해져요. 그러면 각각 1980년대에 유행하던 판탈롱, 금색 아이템, 오드리 헵번 같은 옛날 배우풍으로 연출하고 파티에 참석하면 되는 거예요.

탱고 파티의 드레스코드는 ‘빨간색’이었고, 저는 진심으로 하재봉 씨의 탱고 공연이 성공하길 빌었기에, 1박2일간의 고민 끝에 산타클로스처럼 반짝이는 빨간색 에나멜 부츠를 신고 행사장에 들어섰어요.



이럴 줄 알았는데! 왜 이랬어, 아마추어같이! 저는 자신을 탓하며 그 자리를 돌아나오고 싶었어요. 바니걸 복장으로 가족 모임에 참석한 브리짓 존스처럼 말이죠. 역시 드레스코드를 지킨 사람은 거의 없었고, 몇 명의 여성이 빨간색 립스틱이나 매니큐어로 알량한 드레스코드를 보여줬으니까요. 몇 차례 드레스코드가 있는 행사에 가봤지만 속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는지, 무시하는 걸 지성인의 태도로 간주하는지 드레스코드를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라운지 슈트’ 드레스코드라도 반바지, 심지어 ‘러닝구’도 입고 옵니다.

드레스코드는 ‘형식’이에요. 하지만 꿔다놓였어도 기왕이면 예쁜 보릿자루가 돼주겠다는 참석자의 마음을 담고 있죠. 또 드레스코드는 서먹한 사람들에게 서로 인사할 수 있는 주제가 된답니다. 사무실을 삼겹살집으로 옮겨놨을 뿐인 싸늘한 송년회를 반복하는 것이 고역이라면, 드레스코드를 만드세요. 윗사람 눈치 보인다고요? 가끔은 살짝 미쳐야 재미있다니까요.



주간동아 2008.12.30 667호 (p67~67)

김민경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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