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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人文기행 (22)|모델하우스

인간 욕망 완벽 세팅 잠시 머무르는 임시 천막

‘낙원구 행복동’ 환영 문구와 감성 만족 소품으로 채워져

  •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인간 욕망 완벽 세팅 잠시 머무르는 임시 천막

  • 모델하우스는 언제든지 쉽게 짓거나 철거할 수 있고
  • 다른 벌판으로 손쉽게 이전할 수 있는 경량철골조 가건물이다.
  • 그 내부의 소품들에는 삶의 먼지가 하나도 묻어 있지 않다.
  • 널찍한 창호, 젠 스타일의 거실, 큼직한 벽걸이 TV,
  • 미술 관련 서적으로 채워진 서재, 와인 셀러가 놓인 주방….
인간 욕망 완벽 세팅 잠시 머무르는 임시 천막
‘박하사탕’ ‘밀양’으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이 된 이창동은 그 이전에 한국 사회의 상처를 농밀하게 들여다본 소설가였다. 그의 영화가 비록 ‘오아시스’ 같은 작품에서 환상성을 강하게 드러낸 부분이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 ‘우리 시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사실주의적인 관점을 꾸준히 지키고 있는 것은 그가 젊은 시절, 현란한 이미지의 마법에 걸려들었던 감독 지망생이 아니라 꼼꼼히 단어를 선별하고 엄정하게 문장을 닦은 소설가였기 때문이다.

이창동·공선옥, 소설 통해 아파트의 삶 그려

이창동 감독은 소설을 쓸 때나 영화를 만들 때나 목울대를 타고 넘어오는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자주 변주했다. 첫 작품 ‘초록물고기’에서 한석규는 형에게 공중전화를 걸어 울부짖는다. ‘박하사탕’에서 설경구는 마주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두 팔을 벌린 채 절규한다. ‘오아시스’에서도 목울대를 넘어오는 처절한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밀양’에서 전도연은 짐승처럼 눈물을 흘리며 제 가슴을 치고 또 친다.

왜 그럴까. 그들은 모두 ‘가설무대’ 같은 삶을 살아간다. 이창동의 소설과 영화 속 주인공은 하나같이 불안정한 평균대 위에 놓여 있다. ‘박하사탕’은 ‘가설무대의 삶’이라는 그의 생각이 공간적으로 자주 변형되는 작품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임시로 형성된 공간을 오간다. 설경구는 신도시 주변의 가구점 사장이다. 가구점 안에는 언젠가 다른 곳으로 팔려갈 가구들이 적재돼 있다. 그런데 심부름센터에서 연락이 온다. 아내가 바람을 피운 것이다. 설경구는 아내가 있는 신도시 외곽의 모텔에 난입한다. 그러고는 가구점 여직원과 차 안에서 사랑을 나눈다. 하나같이 임시적인 공간들이다. 이창동 감독이 자주 연출하는 ‘초록물고기’의 가족 회식이나 ‘박하사탕’의 동창 MT, ‘밀양’의 가정 심방 같은 장면들은 그 모든 인물이 곧 붕괴될지도 모를 가설무대의 삶을 악착같이 끌어안고 있음을 말해준다.

중편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보자. 이복형제 이야기다. 형은 천신만고 끝에 중계동 아파트단지에 ‘입성’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학교 급사로 시작해 정교사까지 이른 형은 ‘일상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귀한 사랑도 얻었다. 그가 중계동에 장만한 23평 아파트는 젊은 날을 헌신해 얻은 귀한 전리품이다. 그런데 동생이 나타난다. 배다른 동생은 형보다 더 큰 행복을 갈망한다. 그래서 사회운동에 헌신했다. 1980년대의 어떤 사연들이 떠오르는 구도다. 형제 간 갈등이 생기고, 간신히 장만한 작은 아파트에 균열이 오는데, 동생의 뒤를 밟는 경찰의 발자국 소리가 다가온다. 그들을 피해 소설의 뒷부분에서 형과 동생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 맞은편의 미개발지를 뛰기 시작한다. 똥밭 위를 달리는 것이다.



“그는 울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 눈물이 더욱 그를 서럽게 만들었다. 그가 우는 것은 후회 때문도 아니었고 자책감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가슴이 찢어지도록 자기 자신이 비참하다는 느낌, 아무도 이해 못할,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자신만의 슬픔이 그를 울게 만들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는 똥구덩이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일어날 생각도 않고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가슴속에 있는 모든 슬픔의 덩어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울었다. 너무나 오랜 세월 그의 몸 안에 뭉쳐져 있던 슬픔, 어찌할 수 없는 허망함에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고 울었다.”

이창동의 소설에 잘 드러나 있듯이, 우리 시대의 ‘아파트’는 거주 형태 자체가 ‘임시 천막’ 같은 곳이다. 지금 누군가 28평에 산다고 생각해보자. 그곳을 평생의 공간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32평이 되고 38평이 되어도 이른바 ‘아파트 시세표’가 자극하는 불안한 심리 상태는 치유되기 어렵다. 좀더 심미적인 차원에서는 그것이 45평이 된다고 해도 그 물질적 계산과는 별개로, 과연 단 한 번뿐인 이 생애를 이토록 규격화된 성냥갑으로 그쳐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없지 않은 것이다. 소설가 공선옥은 ‘한 데서 울다’에서 아파트에서의 삶을 이렇게 쓰고 있다.

“아파트는 온통 소음의 도가니였다. 남편은, 좀 시끄러우면 어때, 라고 말했다. 집 없는 것보다 낫지, 라고도 했다. 처음에는 남편의 말에 수긍하기도 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것이 아니었다. 견딜 수 없이 화가 끓어오르기도 했다. 내가 이런 ‘집구석’을 마련하려고 그 고생을 했던가, 싶어서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그러니까 정희의 ‘집 보러 다니기’의 대장정은 정작 ‘내 집 장만’을 한 뒤부터 시작되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큰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시어머니가 노인정에 나가고 나면 정희는 부리나케 이제 겨우 돌쟁이 막내를 놀이방에 맡긴 뒤 마치 도둑질을 하러 나가는 것처럼 소음 가득한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서러움이 그녀를 그렇게 하게 했다.”

모델하우스는 거대한 전시장

인간 욕망 완벽 세팅 잠시 머무르는 임시 천막
아파트로 상징되는 우리 삶의 부박성, 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끝없이 미끄러져야만 하는 가설무대로서의 삶은, 큰 도시 네거리마다 요란한 치장으로 서 있는 모델하우스가 심각하게 증명해준다. 크고 작은 도시들마다 모델하우스가 네거리며 초입이며 광활한 벌판이며 터미널 앞에 도도하게 서 있다.

모델하우스는 그 자체가 임시 가설물로 언제든지 쉽게 짓거나 철거할 수 있고 다른 벌판으로 손쉽게 이전할 수 있는 경량철골조 가건물이다. 전면에는 ‘낙원구 행복동’에 오신 것을 진실로 환영하는 듯한 문구가 강렬한 서체로 써 있고 근사한 이미지의 연예인들이 두 팔을 벌리며 인사한다. 그 내부로 들어가면 모델하우스는 지금 우리 시대의 부유하는 감성과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소품들로 채워져 있다. 소품들에는 삶의 먼지가 하나도 묻어 있지 않다. 널찍한 창호, 젠 스타일의 거실, 큼직한 벽걸이 TV, 미술 관련 서적으로 채워진 서재, 와인 셀러가 놓인 주방….

그리고 소품들마다에 적혀 있는 ‘전시품입니다’ 혹은 ‘이 상품은 옵션입니다’라는 글귀. 글귀는 그 소품뿐 아니라 주방의 이탈리아제 침대나 욕실의 미국제 욕조 모두가 ‘전시품’이며 그리하여 모델하우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전시장’이고 우리 욕망을 대리해 세팅해놓은 임시 가설물임을 말해준다. 그것을 통과해 실제로 아파트로 진입해 들어가도 임시 가설물의 헛헛함은 끝나지 않는다. 저 1960년대 후반의 산업화에 따른 대량 이주 이후로 우리는 여전히 ‘어떤 과정’의 선로 위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면서 살고 있다. 김기택이 시 ‘용궁아파트’에서 쓴 것처럼.

인간 욕망 완벽 세팅 잠시 머무르는 임시 천막

모델하우스는 가설무대의 삶을 욕망으로 만든다.

아파트 13층/ 베란다 문 열자마자 소음이 쏟아져 들어온다/ 차량들 소음이 이어폰을 낀 듯 가깝고 선명하다/ 오토바이 악쓰는 소리는/ 제 주장이 뚜렷한 아이의 끈질긴 울음소리를 닮았다/ 소리가 사라지고 나도 귓구멍에서 떠나지 않는다/ 트럭 소리는 내 몸통이 다 울리는 굵은 저음/ 아파트 안이 소리의 동굴처럼 깊어지고 컴컴해진다/ 경적 소리와 급정거 소리는 이란성 쌍둥이/ 서로 번갈아가며 아파트 유리창을 긁고 찢는다/ 소음은 드릴처럼 내 몸을 뚫어 제 소리를 우겨 넣는다/ 이미 가득 찼지만 그래도 몸은 꾸역꾸역 다 받아먹는다/ 온몸에 그 자국들이 촘촘하게 박힌다/ 그치지 않고 쏟아져 내리는 소음의 홍수로/ 밖은 이미 거대한 바다를 이루었고/ 구름만이 노아의 방주처럼 그 위에 가볍게 떠 있다/ 익사한 시체처럼 이젠 나도 소음이 아프지 않다/ 이열치열이라고, 볼륨 높이고/ 텔레비전 소리와 핸드폰 소리, 컴퓨터 소리까지 듣는다/ 베란다 문 닫으면/ 유리창에 맹렬하게 밀려와 부서지는 소리들이 보인다/ 부딪친 소리를 밟으며 새로운 소리들이 계속 부딪쳐온다/ 아파트는 믿음직하다/ 소음도 튼튼한 사각의 공기는 거의 뚫지 못한다/ 사각의 자궁 안에서 나는 아늑하고 안온해진다/ 내 몸에 구멍을 내고 들어와 박힌 소음의 가시들은?/ 몸이 다 알아서 할 것이다/ 밤새 위장과 대장에서 소화된 소음은/ 아침이 되면 항문 안에 따뜻하고 걸쭉하게 고일 것이다.



주간동아 2008.09.16 653호 (p94~96)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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