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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대한민국 친척 보고서

온&오프라인 통해 혈육의 情 수혈 “친척이 가까워졌어요”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온&오프라인 통해 혈육의 情 수혈 “친척이 가까워졌어요”

온&오프라인 통해 혈육의 情 수혈 “친척이 가까워졌어요”

세거지의 골목길을 함께 걸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문태갑 선생과 그의 조카 문석기·강혜경 부부(오른쪽부터). 문석기 씨 부부는 10년 전 귀향해 옛 조상의 집을 지키며 살고 있다.

우리의 아버지 혹은 아버지의 아버지는 우리와는 다른 유년시절을 보냈다. 함께 뛰어다녔던 또래 친구들은 같은 성(姓)을 쓰는 사촌 혹은 육촌간이고, 앞집 옆집 뒷집 모두 친척 어르신 댁이었기에 ‘남의 집’이 아니었다. 간혹 스치는 옆집 사람의 직업이 뭘까 궁금하고, 사촌형제의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우리와는 정말 다른 ‘세계’에서 살았다.

대구 달성군에 자리한 남평 문씨 세거지(世居地)를 찾아가면 그런 세계의 원형(原形)을 만날 수 있다. 문익점의 18대손 문경호가 150년 전 이곳에 정착하면서 문씨 집성촌이 된 이 마을에는 지금도 문씨 후손들이 살고 있다. 서로 담벼락을 이웃하며 지내는 9채의 집주인들은 서로를 ‘형님’ 혹은 ‘당숙’이라 부르는 사이다.

“1956년 조모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매일 저녁식사가 끝난 뒤 조모가 계신 큰집 안방에 모였습니다. 한 시간 정도 이런저런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다 헤어지곤 했죠. 저도 어릴 때 아버지 손잡고 할머니 방에 가곤 해서 생생히 기억합니다.”

1년에 한 번 문중 파티, 인터넷 카페 교류, 가족신문 만들기 등 방법 다양

민간으로서는 고서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 문중문고 ‘인수문고’의 청지기를 자처하며 1990년대 중반부터 세거지에서 지내고 있는 문태갑(78·전 서울신문 사장) 선생은 이렇게 회고했다. 그의 유년시절만 해도 세거지에는 아들, 손자, 며느리 등 일가친척이 한 집에 모여 살았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대구 시내에서 유학했는데, 대구에 마련한 집에서는 또래 사촌, 육촌형제들과 함께 지냈다.



세거지의 아홉 집 모두 장남들이 물려받아 지금도 살고 있지만 그 풍경은 옛 시절과 사뭇 다르다. 은퇴하고 귀향한 예순 넘은 노부부들만 살고 있을 뿐 젊은 후손들은 모두 도시에 나가 있다. 명절 때가 되면 세거지는 오히려 더 썰렁해진다. 아홉 집 중 여섯 집이 자식이 있는 도시로 역(逆)귀성하기 때문이다. 가끔 방문하는 외국인 손님들이 “왜 이 마을에는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물을 때마다 세거지 사람들은 허허 웃을 뿐이다.

20년 후의 친척관계를 묻는 ‘주간동아’의 설문조사에서 4명 중 1명이‘현재의 친척관계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두가 멀어지는 대로, 잊히는 대로 친척과의 연결 끈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온&오프라인 통해 혈육의 情 수혈 “친척이 가까워졌어요”

장긍선 신부가 만든 가족앨범.

남평 문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문 선생은 “20년 전부터 해마다 5월이 되면 문씨 후손들이 세거지에 모여 일종의 파티를 연다”고 말했다. 명절에는 교통체증도 심하고 딸들은 시댁을 찾느라 오지 못하기 때문에 날씨 좋은 5월의 한 일요일에 모임을 갖는다는 것. 세거지는 이날만큼은 40~50명의 일가친척으로 북적인다. 그렇게 조상의 고향을 방문한 아이들은 멋스런 한옥에 반해, 여름방학 때 친구들을 데리고 세거지의 친척 어르신 댁으로 놀러 오기도 한다.

자주 만나는 만큼 정도 드는 법이라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탈리아 로마에 사는 황재원(11)·성윤(10) 남매는 서너 살 때 1년가량만 한국에 살았을 뿐인데도 한국의 외가 친척이 전혀 낯설지 않다. 외가 친척들끼리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놓고 자주 교류하는 덕분이다. 인터넷 카페에는 이모들의 근황을 비롯해 사촌언니의 결혼, 오촌조카의 출생, 사촌형의 군 입대 등 외가 소식이 가득하다. 이들 남매도 엄마와 함께 ‘로마 뉴스’를 카페에 자주 올린다. 지난 6월 재원 양은 백일장대회에서 1등 한 소식과 상을 받은 자작시를 카페에 올렸고, 성윤 군은 2년간 배운 기타 솜씨를 동영상으로 뽐냈다. 그 덕에 몇 년에 한 번 한국을 방문해도 외가 친척들이 낯설지 않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는 한국의 이모네 집들을 돌아다니며 서너 살 위 사촌오빠들, 대여섯 살 아래 오촌조카들과 즐겁게 놀았다. 성윤 군은 한국을 떠나기 싫다며 인천공항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을 정도라고. 이들 남매의 엄마 유종랑(40) 씨는 “인터넷으로 외가 친척들 소식과 사진을 꾸준히 접하는 덕에 아이들이 친척의 존재를 잊지 않고,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 또한 이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75호의 머리 소식. 상훈·순진, 괌에 가보다/ 누리 제대, 복학/ 소리, 한밭대 입학/ 보람, 청주 하이닉스 입사/ 범용, 삼진제약 입사….’

대전대 정순진(51) 교수(문예창작과)는 15년째 ‘가족신문’으로 친척들과의 우애를 돈독히 쌓고 있다. 두 달에 한 번 내는 가족신문은 벌써 75회를 맞았고, 세 권의 책으로 엮였을 정도다. 정 교수는 남편, 시어머니, 아이들과 함께 만든 이 신문을 시댁 및 친정 친척들에게 발송한다. 분가한 형제간, 사촌간에도 친숙함이 생길 뿐 아니라 사돈끼리도 자연스럽게 소식을 주고받게 돼 한자리에 자주 모이기도 한다고.

가족신문은 ‘머리 소식’으로 시작해 그동안 있었던 가족의 일상, 즉 가족여행, 친척의 상(喪), 직장 이야기 등이 게재된다. 할머니가 손자·손녀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리고, 아이들이 직접 쓴 근황과 고민거리도 담기며, 초등학교 2학년인 사촌동생의 일기도 수록된다. 정 교수는 “가족신문 덕에 사촌형제끼리 매우 가깝게 지내는 편”이라고 말했다.

“사촌형제끼리 많게는 스무 살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책으로 엮은 가족신문을 가끔 뒤적이면서 ‘언니도 내 나이 때는 이랬구나’라며 자기 성장에 참고자료로 쓰기도 하죠. 아이들 사이에서 가교 구실을 하는 셈입니다.”

5대에 걸친 가족앨범 제작했더니 친밀감 새록새록

자주 모이던 친척들도 가족모임의 중심인 조부와 조모가 사망한 뒤에는 소식이 뜸해지기 쉽다. 명동성당 장긍선(45·예로니모) 신부는 이런 외가 친척 사이가 아쉬워 2년 전 가족앨범을 만들어 친척들에게 나눠줬다. 가족앨범에는 장 신부의 어머니 형제(2남6녀)의 가계도와 함께 사진도 실렸다. 벌써 결혼해 아이를 낳은 조카들도 있어 모두 5대에 걸친 방대한 작업이었다. 가족사진 챙겨 보내기를 귀찮아하던 친척들도 막상 가족앨범이 나오자 반가워했으며, 이를 계기로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됐다고. 장 신부는 “어머니 고향이 이북이고, 이북에 남겨진 사촌들도 있기 때문에 가족앨범이 훗날 이산가족 찾기에도 유용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친척이란 무엇일까. 잊고 살아도 괜찮다 싶다가도, 마음 한구석이 허해지는 이유는 왜일까. 세거지의 문 선생은 “해외입양아가 성인이 된 뒤 자꾸 고국을 찾는 게 무엇 때문이겠느냐”고 반문했다.

“그것이 인간 본성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본(本)을 모르고 산다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까진 아니어도 그게 진정한 삶은 아니겠죠.”

문 선생은 요즘 시대에 걸맞도록 친척간 유대를 되살리기 위한 방법을 고심 중이라고 한다. 이번 추석에는 우리도 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주간동아 2008.09.16 653호 (p42~44)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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