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1

2008.06.24

소통의 웹2.0 세대 엽기발랄 연애담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입력2008-06-16 1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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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의 웹2.0 세대 엽기발랄 연애담

    ‘화장을 고치고’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가수 왁스의 노래를 중심으로 음악을 구성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최근 매스컴에서 가장 많은 이슈거리를 만들어내는 사건은 ‘광우병 파동’과 ‘촛불집회’일 것이다. 특히 온라인에 머물던 세대들이 대거 오프라인으로 나선 촛불집회는 인터넷의 폭발적 힘을 만방에 떨치게 해줬다. 1990년대 초반 하이텔, 천리안 같은 VT(가상터미널) 방식을 기반으로 한 PC통신이 등장해 당시 젊은이들인 386 후반 세대와 ‘서태지와 아이들’을 듣고 자란 90년대 학번의 생활방식을 순식간에 바꾼 이래, 컴퓨터는 한국인의 실생활이 돼왔다. 90년대 후반부터 홈페이지 제작붐이 불었던 ‘웹1.0’ 시대를 맞아 하이텔은 2003년 VT 방식을 포기하고 현재의 인터넷 방식으로 개편했으며, 현재는 누구나 포털사이트, 블로그, 미니홈피를 통해 직접 데이터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사용자 참여 중심의 인터넷 환경 ‘웹2.0’ 시대다.

    유윤경이 극본을 쓰고 정태영이 연출한 창작뮤지컬 ‘화장을 고치고’는 익명성의 공간인 인터넷을 보호막으로 설정하고 과감하게 소통하는 ‘웹2.0 세대’의 발랄한 연애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이다. 촛불집회의 배후(?)가 있다면 발빠른 정보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인터넷과 휴대전화일 것이고,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을 맺어준 매치메이커(matchmaker)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서로가 고독하게 앉아 두드리는 컴퓨터일 것이다.

    고독하게 두드리는 컴퓨터 통해 인연 맺기

    30대 초반의 혜리는 어느 날 대학시절 사귀던 연하 남자친구에게서 이별을 통보받고 스토커로 몰리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현실에서는 워커홀릭 플로리스트이자, 사이버 세계에서는 ‘화장을 고치고’라는 아이디로 블로그를 운영하며 연애 상담을 해주는 카운슬러로 유명하다. 20대 후반의 지섭은 ‘바람돌이’라는 아이디로 혜리의 블로그를 자주 방문하는데, 현실에서의 그는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지 못해 본의 아니게 8명의 여자를 거치며 바람둥이가 되고 만다.

    사실 두 사람은 같은 오피스텔 위아래층에 사는 이웃사촌에다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좋지 않은 모습만 봐온 앙숙이다. 하지만 사이버상에서는 만남을 지속하며 익명의 낯섦을 점차 덜어내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감정교류를 이루게 된다. 첫눈이 내리는 날 ‘오프라인 만남’을 갖기로 약속한 두 사람은 마침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충격과 실망에 빠진다. 하지만 종국에는 해피엔딩을 이룬다.



    이 작품은 가수 왁스의 음악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화장을 고치고’를 비롯해 ‘애주가’ ‘엄마의 일기’ 등 기존 히트곡과 이 작품을 위해 새로 창작된 곡들이 줄거리 사이사이에 촘촘히 배치돼 있다. 왁스의 음악을 즐겨 들은 세대라면 익숙한 선율에 맞춰 흥얼거릴 수 있다.

    순간순간 터지는 개그콘서트 스타일의 분절된 유머들도 즐길 만하다. 뮤지컬 ‘햄릿’에서 각각 햄릿과 오필리어 역을 맡아 호연한 김수용과 신주연이 지섭과 혜리 역을 맡아 예쁜 사랑을 보여준다. 그 밖에도 네 명 앙상블의 쉴새없는 코믹 연기는 만화적인 동작과 말투, 유행어 등을 적절하게 구사하며 웃음을 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시각적으로 공격적인 영상(프로젝션)을 활용한 점이 눈에 띈다. 해외 공연장에서는 세트 디자인의 대안으로 영상을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흔하지만,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이처럼 세트의 대체 수단으로 영상을 활용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소극장 한계 프로젝션 활용으로 돌파

    소통의 웹2.0 세대 엽기발랄 연애담
    이 작품은 도심의 젊은이들이 생활하는 실제 공간과 사이버 공간이라는 두 가지 장소를 상황에 맞게 컴퓨터 화면, 엘리베이터 등 재치 있는 이미지로 배치했다. 예컨대 웹서핑에서 화면이 전환되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준다든지,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닫히면서 공간 이동이 이뤄지는 장면은 무대전환이 불가능한 소극장의 한계를 디지털로 극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아쉬운 점은 드라마 결말 부분에서 두 사람의 만남과 소통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첫눈 오는 날 약속장소에서 처음 서로의 정체를 알아버린 후 두 사람은 불편한 이웃사촌 관계라는 것을 알고 돌아섰지만 결국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데, 과연 현실에서의 실망감을 ‘웹2.0’의 가상공간에서 쌓아온 믿음만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 작품이 가진 미덕은 분명하다. 모바일과 인터넷을 자신의 표현수단으로 삼은 세대,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으로 지칭되는 오늘날 젊은 세대의 연애 방식을 무대 뮤지컬로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트렌디한 재미로 넘치는 ‘화장을 고치고’는 7월20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된다. 문의 02-744-0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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