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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 LIFE|이명우 경위

낮엔 민중의 지팡이, 밤엔 이웃의 손발

봉사단체 ‘사랑터’ 21년째 이끌어온 이명우 경위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낮엔 민중의 지팡이, 밤엔 이웃의 손발

낮엔 민중의 지팡이, 밤엔 이웃의 손발

이명우 경위는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6월12일 자신의 직장인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눈이 뻑뻑한 듯 충혈된 눈을 자주 깜빡였다. 얼굴엔 ‘피곤해요’라고 새겨져(?) 있었다.

“한 달간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거의 없어요. 어제도 밤을 새웠고요.”

6월11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경비대에서 만난 이명우(54) 경위는 그렇게 피곤에 절어 있었다. 최근 촛불집회나 공기업 민영화 반대 집회 등 정부청사 주변에서 시위가 잇따르니 경비대 행정과장으로서 하루하루가 피곤할 법도 했다.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을 압박하고…. 공권력이 위협받으면 피해자는 시민들이에요. 기초질서는 지켜야죠. 더불어 살아야 하잖아요.”

‘더불어 산다는 것’은 그에게 신조(信條)인 듯했다.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기 위해 사회봉사단체 ‘사랑터’를 만들어 21년째 이끌어온 이 경위. 봉사 이야기가 나오자 눈이 반짝인다.



“6월15일에는 묘역을 관리하러 국립현충원에 가야 하는데 요즘 계속 비상이라….” 낮엔 경찰관이지만, 퇴근 이후나 주말엔 ‘사랑터 봉사대장’으로 살고 있는 이 경위는 당장 주말 봉사가 걱정이다.

사랑터는 1984년 등산을 같이 하던 친구 5명과 함께 결성한 봉사모임.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정신지체아 시설 ‘우성원’ 등에 찾아가 감자 양파 같은 부식거리를 제공하고 말벗이 돼준 게 시작이었다. 동참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지자 87년 1월 모임을 정식 발족했다.

골수암 걸렸다가 기적처럼 나은 뒤 ‘남을 위한 삶’ 눈 돌려

그때부터 이 경위는 정신지체아들을 목욕시키거나 독거노인을 찾아가 도배를 해주는 등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산다’. 근육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잔디네집’(서울 마포구) 등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사회복지시설만 13곳. 병에 걸린 남편을 보살피다 당뇨로 시력을 잃은 할머니를 만났을 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암에 걸린 정신지체 딸을 홀로 키우는 할머니에겐 케이크를 선물했다. 암이 어떤 병인지도 모르던 그 딸이 난생처음 생일케이크의 촛불을 밝혔을 때 좋아하던 모습은 그에게 안타까움이자 기쁨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무의탁 노인, 모자가정 15세대와 자매결연을 맺은 그는 매달 그들을 만나고 있다.

봉사활동은 사실 나서기 전부터 바쁘다. 시설이나 가정에 전할 부식거리를 사고 분류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품으로 지원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이 경위 집에는 늘 배추 달걀 양파 콩나물 등 농산물이 가득하다.

“국내 농가를 돕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래서 풍작으로 값이 떨어진 감자 양파 등을 대량 구매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해주죠.”

12년 전부터는 매달 둘째 주 일요일마다 국립현충원에서 잡초를 뽑고 묘비를 닦는 등 묘역 정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사랑터 회원들이 맡고 있는 곳은 장교·경찰 묘역 등 4개 묘역 1860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친 그분들에게 봉사할 일이 없을까’ 고민한 끝에 이 일을 시작했는데, 그분들을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다”며 멋쩍어한다.

독거노인 돕기·현충원 묘역 정화·헌혈 등 봉사 닥치는 대로

정기 활동 외에 그때그때 맞춤형 봉사도 그의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에게 도시락 싸주기 운동을 벌였고, 1999년에는 파주 문산읍 일대 수해현장을 찾았다.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때는 청년봉사대를 중심으로 태안을 방문했다.

5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사랑터는 현재 회사원, 소상공인, 주부 등 회원만 300이 넘었고, 지난 한 해에만 500여 건의 봉사활동을 벌일 만큼 규모도 커졌다.

봉사의 길로 들어선 이유를 묻자 “절망을 겪어봤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1976년 전투경찰에 입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 다리가 당기고 부어올라 움직일 수 없어 병원을 찾았다. 골수암이었다. 다리를 잘라내지 않으면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기껏해야 6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사형선고’도 받았다. 담당의사는 수술을 권했지만 이 경위는 수술을 포기했다. 청춘이던 그에게 ‘다리가 없는 삶’은 생각하기도 끔찍했던 것. 그래도 살고 싶었던 그는 당시 종교는 없었지만 “제발 낫게 해주세요. 건강을 되찾으면 나머지 인생은 남을 위해 살겠습니다”라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몇 달 뒤, 다리의 통증이 없어지더니 병이 나았다. 병원에서도 ‘기적’이라고 했다.

“그 이후의 제 삶은 ‘덤’이에요. 그리고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게 덤을 의미 있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낮엔 민중의 지팡이, 밤엔 이웃의 손발

2월17일 사랑터 청년봉사단 활동에 앞서 회원들과 함께한 이 경위(맨 오른쪽).

1984년 서울 동대문경찰서(현 혜화경찰서) 재직 중 “A형 피가 부족하다”는 가두방송을 듣고 헌혈을 시작한 게 어느덧 100회를 훌쩍 넘겼고, 헌혈증서도 생활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기증하고 있다. ‘헌혈 봉사’인 것이다. “요즘은 고혈압 약을 먹고 있어 헌혈을 못하고 있어요. 빨리 나아야 헌혈을 하는데….”

이 같은 봉사활동이 알려지면서 이 경위는 1992년 청룡봉사상, 95년 대한적십자사의 헌혈유공자포장을 받았다.

봉사는 고졸 학력인 그를 대학 강단에도 서게 했다. 어느 날 봉사를 하면서 문득 체계적으로 사회복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그는 1972년 서울 청량고를 졸업한 이후 30여 년 만에 다시 책을 들었다. 주경야독(晝耕夜讀). 2002년 한국방송통신대(법학)를 거쳐 성균관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받고 ‘교수님’이 됐다. 봉사현장에서의 시행착오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회봉사론’을 1년간 강의한 것. 요즘도 대학에서 야간 강의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잇따르지만 업무 때문에 ‘잠시 보류’했다.

‘봉사에 빠진’ 남편, 아빠를 둔 가족의 반응이 궁금했다.

“불우 노인을 위해 경로잔치를 하면 아내는 포스터를 붙이고 아들은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느라 바빠요.”

가족도 모두 봉사에 ‘전염’됐단다. 아내 윤효숙(54) 씨는 남편과 함께 이미 사후 안구 및 장기 기증을 서약했을 뿐 아니라, 10여 년간 사랑터 총무를 맡아 안살림을 꾸렸다. 큰아들 지형(26·한양대 석사과정) 씨는 사랑터 청년봉사대를 이끌며 매주 두 번씩 어려운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어려움은 없을까. “가끔 서울 대학로에서 조형물 청소를 하는데, 예술작품 위에 종이컵이며 담배꽁초가 수두룩해요. 그럴 땐 힘이 빠지죠.”

앞으로의 삶을 묻자 대답이 명쾌하다.

“국민이 주신 세금으로 30년 넘게 생활한 만큼 계속해서 (국민에게) 보답할 생각이에요.”



주간동아 2008.06.24 641호 (p56~57)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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