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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비디오크라시(videocracy)’ 한국 뒤흔들다

머릿속 이상사회 온라인 타고 현실민주주의로

‘정보통신 통한 권력이동’ 앨빈 토플러 예견 딱!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머릿속 이상사회 온라인 타고 현실민주주의로

머릿속 이상사회 온라인 타고 현실민주주의로

앨빈 토플러는 1990년 자신의 대표작 ‘권력이동’을 통해 권력의 원천이 물리적 힘과 돈에서 ‘IT 네트워크’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거참, 애들이 말 한번 시원하게 잘한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다수 사람들의 이야기다.‘촛불혁명’은 10대 청소년들에 의해 시작됐다. 주로 1990년대 출생한 이들은 청계광장에 펼쳐진 자유발언대에서 웹에 썼던 얘기(싸이월드나 다음 카페, 네이버 댓글)를 그대로 말로 풀어 내려갔다. 이를 지켜본 기성세대가 느낀 감정은 “당차고 똑똑하다”는 것 이상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책 속의 이론을 현실과는 동떨어진 뜬구름 잡기라고 폄훼한다. 이상(理想)은 이상일 뿐 적자생존의 냉혹한 현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근래 논의되는 웹2.0이니 민주2.0 등의 참여, 개방 소통을 강조하는 ‘2.0식 정치’ 얘기가 어렵다면 이미 십수년 전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언급했던 ‘정보혁명’이라는 시대정신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거대 기업이 무너지는 대신 작고 유연하며 혁신적인 기업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소규모의 가상기업이 탄생할 것이다. 정보통신이란 진보가 모든 것을 가차 없이 휩쓸어버리는 미래의 물결 속에서 대규모의 계급조직이나, 무질서한 시장보다는 소규모의 네트워크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기술의 힘이 뒷받침하는 통신을 통해 좋은 정보가 나쁜 정보를 구축하고,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이 부정하고 기생적인 사람을 몰아내며, 사람들은 유익한 공통의 목적을 위해 자치적으로 단결할 것이다.”

마치 2008년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벌어진 촛불집회를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묘사한 ‘사람들은 유익한 공통의 목적을 위해 자치적으로 단결할 것’이란 표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촛불집회에 참가한 100만 다중(多衆)은 겨우 “MBC의 선동에 놀아난 우매한 집단”(조갑제)이거나 “위대하지만 끔찍한 포퓰리즘적 행태”(이문열)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이미 다수의 미디어학자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역사적으로 뉴미디어는 앙시앵레짐(구체제)과의 대결을 통해 성장해왔다”고 설명한다. 출판의 탄생은 종교권력과의 필연적인 대결을 낳았고 신문은 제국주의 전제국가를, 방송은 소수 엘리트에 의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화려한 대중민주주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자연스레 뉴미디어의 상징이자 전자매체인 인터넷은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의미와 메시지를 시민사회에 전달해왔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 교수는 ‘네티즌(network+citizen)’이라는 단어 자체에 ‘시민’이라는 개념이 포함돼 있음을 강조한다.

뉴미디어, 구체제와 대결 통해 성장 … 이젠 인터넷 차례?

머릿속 이상사회 온라인 타고 현실민주주의로

‘촛불혁명’의 주역인 10대 청소년들은 ‘1995년 체제’가 탄생시킨 신인류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과 정보기술(IT)의 발전은 개인에게 ‘매스미디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제공한 셈이에요. 바야흐로 ‘시민’의 완성판인 셈이죠. 과연 누가 거대 방송사나 할 수 있었던 실시간 현장중계가 단돈 몇천원으로 가능하리라 생각했겠어요?”

이번에 ‘촛불혁명’의 중추적 구실을 한 미디어다음의 ‘아고라’ 역시 연구할 만한 대상이다. 아고라는 이미 10대와 20대에게는 가장 신뢰하는 미디어의 성지(聖地)로 통한다.

“19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 인터넷 서비스의 첫 시작…. 산업사회의 부식이 붕괴하고, 정보시대의 상징적인 사건들이 있었던 시기죠. 다음커뮤케이션, 안철수연구소 같은 IT기업도 그 직후 만들어졌어요.”

386 세대인 다음커뮤니케이션 석종훈(46) 대표는 강연 때마다 ‘87년 체제’ 이후를 결정지은 ‘1995년 체제’를 강조한다. 결국 석 대표는 포스트386 세대와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세상을 즐겁게 바꾸자’라는 다음의 경영이념까지 새로 만들어내고, 제주도에 ‘소통’을 주제로 한 다음 글로벌미디어센터(GMC)를 만들기에 이른다. 서울이 아닌 제주도로 내려간 인터넷 기획자들이 GMC에서 만들어놓은 작품이 바로 어떤 언로의 제약이 가해지지 않는 ‘아고라’와 ‘블로거 기자단’이다. 석 대표의 이야기다.

“다음은 출발 당시부터 끊임없이 ‘우리는 미디어다’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어요. 미디어이긴 하지만 일방통행이 아니라 다양한 다중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음의 한자어는 바로 다양한 소리라는 뜻의 ‘다음(多音)’입니다.”

이 같은 다음의 철학은 한때 ‘네이버’로 넘어간 듯한 포털 권력을 다시금 UCC(사용자 손수 제작물)로 대변되는 소수 블로거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석 대표가 주장하는 ‘1995년 체제’는 촛불세대로 불리는 대한민국 10대들의 탄생과 연관지어 해석할 수 있다. 8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난 촛불세대는 어릴 때부터 인터넷을 ‘수돗물’이나 ‘공기’처럼 다루며 커온 세대다. 이들은 자신의 개인컴퓨터를 통해 방송과 신문을 접했고, 인터넷 정보와 주류 언론의 정보를 ‘블로고스피어’라는 새로운 광장에서 토론을 통해 선택적으로 습득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권위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광장에서 거리낌 없이 펼치고 관철할 수 있었던 것이다.

10, 20대의 막강 신뢰 ‘아고라’ 촛불혁명 중추적 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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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자리한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옥 전경. ‘아고라’와 ‘블로거 기자단’이 탄생한 장소다.

또 한 측면에서 이들 ‘촛불세대’가 생활 속의 민주주의를 학습해온 첫 세대라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 카페나 1인 미디어를 통해 불거지는 치열한 ‘토론’과 함께 언어의 벽을 뚫고 전 세계 거의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해낼 수 있는 ‘정보의 바다’가 바로 그 밑천이다.

세계적 검색 포털사이트 구글에서는 30억 개 이상의 천문학적인 웹문서와 함께 이미 전 세계에서 발행되는 거의 모든 논문자료와 언론자료를 검색할 수 있다. 이렇듯 개방된 정보의 바다 인터넷은 민주주의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구글의 창립 목표도 ‘인터넷에서 민주주의를 작동한다(Democracy on the web works)’는 것이다.

IT평론가 김국현 씨는 이 같은 웹2.0 정신의 확대를 ‘이상계(理想界)의 확대 과정’으로 설명한다.

“과거에 머릿속에서만 가능했던 (이상)사회가 온라인상에서는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일상적 민주주의’를 현실로 확대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웹2.0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중파 못 다루는 부조리까지 동영상이 척척

이처럼 정보의 벽을 없앤 구글이나, 참여자들이 공동으로 만드는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프로슈머(prosumer)’ 정신은 곧 전 세계로 열린 소통으로 집단지성을 추구하는 ‘웹2.0 운동’으로 확대 발전됐고, 이는 부메랑이 되어 현대민주주의 개념을 뒤바꿔놓고 있는 셈이다. 21세기는 가히 ‘인터넷 혁명’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영상의 힘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앨빈 토플러는 “IT기술은 지난 세대에도 탈(脫)중심화와 민주화 물결에 크게 기여했는데, 특히 필리핀의 마르코스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독재정권 축출을 비롯한 전제정권 몰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말하며 ‘비디오크라시(videocracy)’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최근 동영상은 국내에선 UCC라는 이름으로 공중파가 절대 다루지 못하는 생활 속 부조리까지 속속들이 까발리는 위험한 도구로 진화해버렸다.

이번 촛불집회에서도 기자가 아닌 집회 참가자들이 찍은 동영상들이 가장 정확하고 살아 있는 정보를 전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야흐로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명제가 확인된 셈이다.

결국 촛불세대의 등장으로 대변되는 시대의 변화는 다시금 ‘디지털 디바이드(정보격차)’ 해소의 문제로 귀결된다. 예전에 디지털 디바이드란, 인터넷이 통하지 않는 산간벽지나 인터넷에 무관심한 50대 이상의 장년층 문제에 집중됐다. 그러나 이제는 전 국민의 대다수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했기 때문에 새로운 경계가 생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블로그 업체인 태터앤컴퍼니 김창원(34) 대표의 이야기다.

“매스미디어에서 나오는 정보를 그대로 신뢰하는 계층과 온라인에서 나오는 다양한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계층 간의 갈등, 바로 이것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갈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앨빈 토플러는 ‘권력이동’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정보통신기술 혁명의 덕택으로 권력이 국민에게로 하향 이전될 것이며, 모든 사람이 한때 몸담고 일했던 중앙집권화된 압제적 조직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중앙집권적 조직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는 여전히 남겨진 숙제다.



주간동아 2008.06.24 641호 (p42~44)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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