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1

2008.06.24

獨기업 직원 감시 해도 해도 너무해

도이체텔레콤, 통화자료 수집·위치추적 사실 알려져 ‘발칵’… 도감청 여부는 수사 중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입력2008-06-16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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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獨기업 직원 감시 해도 해도 너무해

    직원 도감청 사건에 대한 혐의를 받고 있는 카이-우베 릭케 전 도이체텔레콤 사장.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완벽한 감시, 통제가 행해지는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어떻게 유린되는지를 그린 고전(古典)이다. 오웰이 경계의 대상으로 염두에 둔 것은 부상하던 소련 중국 등 사회주의국가 권력이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빅 브라더’는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우리 가까이에 있는 회사일 수도 있다. 이 우려할 만한 사태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음이 최근 독일에서 터진 스캔들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테른’은 4월 할인매장 ‘리들(Lidl)’이 독일 전역 점포에 설치된 감시카메라(CCTV)와 사설탐정들을 이용해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슈테른이 입수한 종업원 감시기록은 놀랍도록 상세하다. 직원의 근무 태도를 비롯해 동료와의 대화 내용, 교우 및 연애 관계, 신용 상태 등 사적인 영역까지 망라돼 있다. 5월 중순에는 버거킹이 구설에 올랐다. 요식업 노동조합의 발표에 따르면 독일 전역 600여 버거킹 지점에 설치된 CCTV는 ‘고객과 직원을 보호한다’는 명분과 달리 점포 직원들의 근무 실태를 감시, 평가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회사 정보 유출 막기 위해 무리수 남발

    그러나 이들보다도 강력하게 독일 사회를 ‘빅 브라더’의 공포 속으로 몰고 간 소식은 도이체텔레콤 사건이다. 도이체텔레콤(이하 도이체)은 7700만명의 유무선 전화 고객과 1200만명의 인터넷 고객을 보유한 유럽 최대, 세계 3위 통신회사다. 1996년 민영화됐지만 여전히 연방정부가 최대주주(지분 15%)로 공적 성격이 강한 기업이다. 이 거대한 공룡 회사가 최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자사 임원들을 감시, 도청했다는 혐의가 제기된 것이다.

    2005년 도이체 경영진은 회사 기밀이 언론에 무방비로 누출되자 발칵 뒤집혔다. 그해 1월 경제전문지 ‘캐피탈’에 실린 회사 관련 기사가 대외비 자료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구멍 뚫린 스위스 치즈’처럼 숭숭 빠져나가는 정보 누수 현상은 매우 심각해서 당시 도이체 사장인 카이-우베 릭케는 이사회 동의 아래 보안부서를 가동시켰다. 이 조직의 주요 과제는 회사 기밀이 밖으로 새나가는 빈틈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정확히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보안부는 성(性) 접대 방법으로 캐피탈 편집국의 직원을 매수해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이때 보안부의 시야에 포착된 이가 도이체 노조 추천 이사인 빌헬름 베그너와 캐피탈 편집인 라인하르트 코발스키. 도이체는 이들 사이의 통화자료를 모았고, 이를 베를린에 있는 정보기술(IT) 보안 전문회사 ‘네트워크 도이칠란트’(이하 네트워크)에 보냈다. 이 은밀한 프로젝트의 이름은 ‘라인골트’였다.



    2005년 가을, 이 사업은 ‘클리퍼’라는 이름으로 확대됐다. 도이체는 노조 추천 이사들의 통화자료 수십만 개를 몰래 수집해 이 또한 네트워크로 보내 검토하게 했다. 어떤 인사가 평소 어떤 언론인과 접촉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그뿐 아니라 뉴욕에 소재한 도이체의 대주주인 금융투자회사 ‘블랙스톤’에 대한 감시도 도이체 요청에 따라 구체적으로 계획됐는데, 이는 실행되지 못했다.

    클리퍼 프로젝트는 2006년 말까지 지속됐다. 그해 11월23일에는 용역비 중 일부인 40만 유로가 사장과 이사장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계좌에서 지출됐다. 그러나 같은 달 새로 출범한 르네 오버만 사장이 잔금을 치르지 않았고 올해 4월 네트워크 측의 최후통첩에 대해 도이체가 오히려 공갈, 협박 명목으로 검찰에 고소하자 이에 분노한 네트워크는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이러한 내막을 폭로해버렸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이 사건에서 가장 큰 혐의를 받는 두 사람은 사건 당시 사장이던 카이-우베 릭케와 클라우스 춤빙켈 이사장이다. 올해 2월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춤빙켈은 “통화자료 수집은 내 동의하에 행해진 일이 아니다”라고 발뺌했다. 릭케 전 사장은 “전화통화 자료를 조사하도록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이 터지자 독일사회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감시와 도청만 해도 심각한 사건인데, 그것도 다른 기업이 아닌 수천만 통화선을 관장하는 도이체텔레콤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가히 메가톤급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모든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결국 전화와 인터넷을 이용하는 국민 모두가 언제든 도이체의 감시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 비밀을 보호하는 법률을 가장 철저히 준수해야 할 도이체가 어떤 명분에서라도 특정인들의 통화자료를 수집·조사했다는 두말할 여지 없는 범법행위라 하겠다.

    물론 도이체 측은 그저 통화 개시 시각과 통화시간, 통화 상대자에 대한 정보만 수집했을 뿐, 통화 내용에 대한 도감청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도감청 의혹은 현재 수사 중인 사안이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사실, 곧 피감시인의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그의 동선(動線)을 파악하고, 또 그가 지난 1년간 누구를 만났는지를 외부용역을 동원해 조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정치적으로도 도이체 사태는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현재 연방정부는 이른바 ‘통신자료 데이터베이스 사업’을 한창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이 사업에 따르면 모든 통신사업자는 의무적으로 지난 6개월간의 통신 및 인터넷 관련 자료를 보존해야 한다. 이는 범죄, 특히 테러를 예방하고 효율적으로 수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번 사건이 터지자 자민당 측은 “도이체 사태를 교훈 삼아 사적인 정보는 되도록 모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민당 내에서는 정부, 여당이 추진 중인 통신자료 데이터베이스 사업을 중단해야 하며, 헌법재판소가 이에 관한 입법부의 오판을 바로잡아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루프트한자는 직원과 접촉한 언론인 찾기 위해 탑승자 기록 열람

    한편 도이체 사건의 한 축을 이뤘던 용역회사 네트워크가 국영 철도회사인 ‘도이체반’과 연루돼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물론 도이체반 측은 부인했지만, 네트워크의 한 직원은 도이체반 직원들의 전화통화와 은행계좌 등을 감시했으며, 특히 요주의 인물에 대해서는 사생활 전반을 감시했다고 밝혔다.

    또 독일 국적항공사인 루프트한자도 자사 직원과 접촉한 언론인들의 신원 파악을 위해 탑승자 기록을 열람하는 등 불법행위를 자행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도이체와 마찬가지로 루프트한자 경영진은 사내 보안부서에 기밀을 유출하는 직원과 그가 접촉한 언론인 색출을 지시했으며, 보안부는 경영감독위원회 임원 중 한 명이 ‘독일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자와 접촉해 사내 정보를 제공한 사실을 밝혀냈다.

    마치 유행처럼, 오늘날 대부분의 규모 있는 독일 회사들은 사내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사내정보 유출로 인한 손실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연방경찰국 자료에 따르면 매년 독일 회사들이 산업스파이, 기밀 누출 등으로 입는 손실이 43억 유로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하기에 IT 보안이란 관점에서 보면 8000만명의 고객을 관리하는 도이체 보안부서의 직원이 100명이라는 것은 너무 적은 수다.

    그러나 이로 인한 사생활 침해는 어떠한가? 특히 나치 시절 게슈타포와 구 동독의 비밀경찰(슈타지) 감시체제의 잔혹성을 경험한 독일 국민들로서는 기업의 일상적 감시를 환영할 수 없다. 국가와 기업은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제어하려 하지만, 이미 전체주의적 통제사회를 경험한 독일인들은 이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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