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4

2007.09.25

“윤이상 선생은 통영 선산에 묻히길 희망했어요”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7-10-01 10:3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윤이상 선생은 통영 선산에 묻히길 희망했어요”
    “꿈속에서나 가능했던 고향 방문을 위해 비행기에 오를 때 참 많이 울었어요. 기쁨보다는 남편의 한이 생각나 가슴 아팠습니다.”

    고(故)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80) 여사가 9월10일 모국 땅을 밟았다. 1967년 윤이상 선생이 동백림 사건으로 한국을 떠난 지 40년 만이다.

    “아직은 한국에 온 것 같지가 않아요. 들리는 말이나 글씨를 보면 한국이 맞는 것 같은데, 서울이 너무 변해 도쿄 같다는 느낌만 드네요. 고향(통영)에 가야 비로소 실감날 것 같아요.”

    윤이상 선생은 베를린 필하모닉과 유럽 정상의 오케스트라들이 앞다퉈 그의 작품을 초연할 만큼 세계적인 작곡가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백림 사건에 관련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여사의 이번 고국 방문은 정부의 공식 초청에 의해 이뤄졌다. 윤이상평화재단 측은 “지난 5월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이수자 여사에게 과거 불행한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윤 선생과 유족들이 겪은 그간의 고초를 위로하면서, ‘2007 윤이상페스티벌’에 다녀가라고 초청 편지를 보냈다”며 방문 계기를 설명했다.



    이 여사는 이번 방문에 대해 “40년간 품었던 한을 푸는 자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이 1994년 김영삼 정부 시절 초청을 받았지만, 한국 정부가 ‘과거에 잘못을 했다’는 각서를 요구해 결국 귀국을 포기하고 말았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역사 앞에 부끄럼 없이 살았는데 내가 왜 사과해야 하느냐며 돌아갈 수 없다고 했어요. 그토록 바라던 고국 방문이 좌절되자 그 길로 오랫동안 병원에 누워 있었고, 결국 세상을 떠나셨죠.”

    현재 윤이상 선생의 유해는 독일 국가유공자로 지정돼 독일 현지에 안장돼 있다. 이 여사는 “(남편이) 경남 통영의 바다가 보이는 선산에 묻히길 희망했다”면서 이장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현재 150여 편의 친필 악보를 은행에 보관하고 있다. 내년에는 이 중 일부와 편지, 일기 등 유품을 한국에서 전시하고, 독일의 집을 윤이상 기념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딸 윤정(57) 씨는 조만간 미공개작인 현악 4중주 2번을 공개할 예정임을 밝혔다.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만드신 곡이라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통영에 세워진 동상에 선생을 험담하는 낙서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다”며 울음을 삼키기도 한 이 여사는 남편 윤이상 선생을 “빨갱이가 아니라 불행하게 산 위대한 예술가”라고 강조했다. 현재 독일과 북한을 오가며 살고 있는 그는 9월16일 ‘2007 윤이상페스티벌’에 참석하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 통영 방문을 마친 뒤 다음 달 초 독일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 여사는 앞으로도 “윤이상평화재단 기념행사나 통영국제음악회 등 일정에 맞춰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