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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age

열에 아홉은 발뺌하거나 발악하거나

강남구 담배꽁초 단속 현장… 코앞에서 목격해도 “안 버렸다” 도망가는 경우도 허다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열에 아홉은 발뺌하거나 발악하거나

열에 아홉은 발뺌하거나 발악하거나
“내거 아니라니까. 에이, 씨×.”(20대 초반의 청년 A)“뭐요? 내가 두 눈으로 버리는 걸 봤는데…. 그리고 어른한테 그게 무슨 말투요!”(단속원)

“그래서 어쩌라고. 우린 몰라, 경찰 불러.”(청년 B)

뙤약볕이 내리쬐던 8월22일 오후 3시. 강남역 7번 출구에 건장한 사내 6명이 담배꽁초 하나 때문에 모여들었다. 단속반 세 명과 꽁초를 버린 청년, 그리고 그 친구들이다. 처음엔 억울하다는 듯 하소연하던 청년들은 ‘과태료 5만원’이라는 말에 놀라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이에 공무원은 학생의 가방을 뒤져 빨간색 ‘던힐’ 담뱃갑을 찾아냈다.

“이 꽁초도 던힐이고 학생 가방에서 같은 상표의 담뱃갑까지 나왔는데, 이래도 부인할 거요?”

“정말 미치겠네. 이미 떨어져 있던 꽁초라니까.”



청년은 반말로 일관했다. 순순히 신분증을 꺼내지 않겠다는 시위인 셈이다. 결국 단속반원들은 그의 요구대로 ‘112 신고’를 받아들였다. 5분 만에 현장에 달려온 경찰. 그제야 청년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신분증을 꺼내든다.

“와, 정말 생사람 잡네. 내가 가만히 안 있을 거야. 법대로 해, 법대로!”

청년은 단속반을 쏘아보며 이를 갈았다. 주의 깊게 단속과정을 지켜본 사람이 아니라면 ‘무리한 단속’이라고 오해할 법도 했다. 상황이 끝난 뒤에야 단속반도 나름의 고충과 분노를 표출했다.

“제길, 너보다 나이 많은 자식이 두 명이나 있어. 집주소를 보니 강남 부자동네 출신이네. 도대체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건지, 원.”

전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강남역 사거리. 이곳은 올해 초부터 논쟁을 불러온 담배꽁초 단속이 가장 심하게 시행되는 장소다. 명확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음주단속과 달리 모호할 수밖에 없는 꽁초단속은 실제 어떻게 시행되고 있을까.

꽁초단속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강남역에서 2시간 정도 지켜봤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손에 든 채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단속 사실이 널리 알려졌는지, 30대 직장인이나 인근 상인들은 대부분 흡연 후 꽁초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흥미로운 점은 지하도에서 걸어나와 막 불을 붙인 사람은 단속될 가능성이 적다는 사실. 반면 지하도 진입을 눈앞에 둔 흡연 보행자들의 단속 비율이 높았다.

단속 대상 대부분 젊은 층 … 8개월간 4만 건 적발

열에 아홉은 발뺌하거나 발악하거나

쓰레기 무단투기시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한다는 홍보물.

행인들로 붐비는 강남역 지하도 입구에서 꽁초를 버리려고 쓰레기통을 찾는 일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꽁초를 슬며시 떨어뜨린 뒤 발로 밟고 지나가는 것이 ‘한국식 흡연의 정석’이다. 그러나 이제 강남역에서 이런 구태의연한 흡연 습관은 가차없이 철퇴를 맞는다. 담배꽁초가 흡연자 손을 떠나 바닥에 비벼지는 순간 단속반원들이 그를 에워싸고 증거품을 들이밀기 때문이다.

2시간 동안 단속된 사람은 10여 명. 실랑이만 없었다면 그 이상 적발도 가능했다. 그런데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사람은 열 명 중 두세 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불만을 토로하며 욕설까지 서슴지 않았다.

“기분 나쁘죠. 담배꽁초를 버리면 ‘줍고 가세요’라고 계도하면 되지, 과태료까지 물릴 건 없잖아요.”(서울 송파구 김모 씨·21세)

“말도 안 돼요. 5만원이 누구 집 개 이름인가요? 단속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는데….”(서울 동작구 최모 씨·32세)

과태료 5만원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의견에서부터 홍보가 부족했다는 반응, 심지어 자신은 강남구 역내에 살지 않는다는 불평까지 제기됐다.

“완장도 안 차고 단속하는 것은 일종의 함정수사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 한 젊은이는 억울했던지 “여러분, 조심하세요. 이 사람들, 담배꽁초 단속해요”라며 주변 흡연자들에게 소리쳤다.

열에 아홉은 발뺌하거나 발악하거나

단속원과 시민들의 실랑이가 계속되자 결국 경찰이 출동해 상황을 정리한다.

단속 대상자들은 대부분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남성들, 지역적으로는 강남 출신보다 외지인이 훨씬 많았다. 과태료 납부율 분석도 흥미롭다. 강남구는 8개월 동안 4만 건의 과태료 고지서를 발행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납부율은 35% 내외. 3분의 2 정도는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태도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5만원 과태료를 부과하는 용산구나 종로구도 비슷한 수치를 보인다.

“어유, 이 일 아무나 못하죠.”

강남역 1, 2번과 7, 8번 출구는 강남구에 속하지만 반대편(3~6번 출구)은 서초구 영역이다. 서초구는 꽁초단속이 심하지 않은 반면, 강남구는 7번 출구 한 곳에만 5명의 단속반이 진을 치고 있을 만큼 열심이다. 5명 가운데 3명은 강남구청 공무원, 나머지 2명은 강남구가 담배꽁초 단속을 위해 따로 선발한 ‘계약직 공무원’ 42명 중 일부다.

‘꽁초와의 전쟁’에 투입된 42명은 하루 8시간 격일제로 근무한다. 경찰, 소방공무원, 군인, 교사, 은행원 등 대부분 퇴직한 50대 공무원들로 구성됐다. 올해 초 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이들은 현장에 복귀한 재미보다 피곤함을 먼저 호소했다.

“우리 젊을 땐 안 그랬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정말 너무하더라고요. 딱 눈이 마주쳤는데도 안 피었다고 잡아떼니, 허허.”

한눈에 봐도 쉬운 일은 아닌 듯했다. 과태료 한 장 발급하는 데 길게는 30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뙤약볕 아래서 10여 명과 말싸움을 하다 보면 진이 빠진단다.

“심지어 도망가는 경우까지 있다니까요. 쫓아가다 포기했지만….”

단속 원칙은 ‘적발 시 과태료 부과’ 단 하나다. 실제로 서울시에 올라오는 민원은 ‘통사정을 해도 냉정하게 거절해 자존심이 상했다’는 투의 불만이 대부분이다. 강남역에서 만난 단속원 박모 씨는 “한 건이라도 용서해주는 순간 입소문이 나서 단속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함정단속이니, 무리한 실적주의가 횡행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단속반은 작은 ‘공무원증’만 패용한다. 눈앞에서 실랑이가 벌어져야 ‘아, 단속하고 있구나’ 알아챌 정도다. 게다가 ‘담배꽁초 투척=과태료 5만원’에 대한 홍보는 미흡한 상황이다.

“몇몇 방송에서 그런 방향(무리한 단속)으로 취재해가더군요. 우리도 과태료 부과하기 싫고, 자식 같은 사람들과 말싸움하기도 피곤해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실적주의 경쟁을 한다면 하루에 100건이라도 적발할 수 있을 겁니다.”(단속원 오모 씨)

상대방이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고 주장할 때는 어떻게 될까. 꽁초가 맨홀로 들어가 증거가 사라진 경우도 종종 있다.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법입니다. 결국 잘못을 수긍합니다.”

그렇다면 단속반원들이 가장 곤혹스러울 때는 언제일까.

“시민들이 공무원 편이길 거부할 때입니다. 한번은 ‘조폭’ 분위기를 풍기는 젊은이를 단속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가 ‘왜 공무원이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느냐’고 항의하더군요.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강남구청 지하 1층의 ‘무단투기 단속반’에는 하루에도 수십 통의 민원전화가 걸려온다. 대부분 과태료 통지를 받은 부모나 가족이었다. 납득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장소에 가지 않았다는 식의 억지를 부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강남구에서만 하루 300여 건 담배꽁초를 단속한다. 서울시 여타 지방자치단체의 3배 수준이다.

“과태료가 최고의 홍보수단입니다. 다른 방법이 안 통해요.”(김용덕 강남구 단속팀장)

과태료만 제대로 걷혀도 올 한 해 30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게 된다. 전국 최고의 부자 지자체인 강남구 처지에서는 과외수입보다 ‘시민 불만’이 더 신경 쓰이는 눈치지만, 앞으로도 이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강남구, 시민 불만 신경 쓰이지만 “후퇴는 없다”

지난해 6월 취임한 맹정주 강남구청장은 취임 초부터 ‘기초질서 지키기’ 운동을 내세웠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청결’이 중요하다는 신념에서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강남구 편을 들었다. 현재 서울시 전역에서 담배꽁초 무단투기에 대해 3만원의 과태료가 적용된다(3개 구는 5만원). 일부 서울 시의원들은 과태료를 7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의욕도 내보인다.

눈에 띄게 깨끗해진 강남구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문득 싱가포르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났다. 싱가포르의 깔끔한 이미지는 좋았지만, 당시 흡연을 하던 기자에게는 불편한 동네였다. 공공장소마다 법규 위반 과태료가 표시돼 있었다.‘지하철에서 음식물 섭취 500SGD(약 30만원), 흡연 적발 시 1000SGD(약 60만원)….’ 심지어 담배꽁초 때문에 ‘태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결국 담배 한 대 피우려고 건물 뒤로 숨자 동행한 사람들은 “싱가포르 시민은 얼마나 피곤하겠냐”고 비아냥거린다.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한 강남구의 도전은 찬반 양론이 엇갈린다. 하지만 확실해진 것이 하나 있다. 서울시민 또는 강남 특별시민으로 살아가기도 만만치 않은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과태료 딱지를 받아든 한 직장인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제길, 담배를 끊어야지.”



주간동아 2007.09.04 601호 (p42~44)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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