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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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의 여왕’ 故 브루크 애스터 여사

  • 공종식 특파원 gong@donga.com

    입력2007-08-29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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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선의 여왕’ 故 브루크 애스터 여사

    생전의 브루크 애스터 여사.

    8월17일 금요일 오후, 뉴욕 맨해튼 세인트 토머스 성당에서는 특별한 장례식이 열렸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현 시장과 에드 코크, 데이비드 딘킨스 전 뉴욕 시장을 포함해 뉴욕 유명인사 8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휴가철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장례식에 참석한 것이다. 이날 장례식은 다름 아닌 브루크 애스터 여사의 장례식이었다.

    13일 폐렴이 악화돼 105세로 별세한 그녀의 별명은 ‘비공식 뉴욕시 퍼스트레이디’였다. 박애주의자이자 뉴욕 문화계 명사인 애스터 여사는 수십 년 동안 뉴욕시 곳곳을 누비며 자선활동을 했다. 또 뉴욕공립도서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카네기홀 등 뉴욕 명소는 물론 가난한 흑인 밀집 거주지역인 할렘의 공연장에 이르기까지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아낌없이 돈을 쾌척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돈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기부하기 전 직접 꼼꼼하게 용도를 검토하는 것이 그녀의 철칙이었다.

    수십년간 뉴욕 어려움 돌봐 … 105세로 영면

    애스터 여사가 사망하자 생전에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뉴욕 명소와 건물 곳곳에 줄줄이 조기가 걸렸다.

    애스터 여사가 이처럼 뉴욕에서 ‘자선의 여왕’으로 칭송받게 된 것은 그녀의 세 번째 남편인 부호 빈센트 애스터가 2억 달러(약 1900억원)의 유산을 남기며 “좋은 일에 써달라”고 유언했기 때문. 사망 직전 남편은 애스터 여사에게 “자선활동을 하면 아마 재미있을 거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빈센트 애스터는 존 록펠러,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에 이어 미국 역사상 세 번째 부자로 꼽히는 모피사업가 존 제이콥 애스터의 고손자다. 해병대 장교의 딸로 태어난 애스터 여사는 16세에 첫 결혼을 했지만 10년 만에 이혼한다. 이혼 사유는 남편의 폭력과 간통 행위. 그 뒤 증권 브로커와 재혼했으나 사별하고 잡지사 기자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세 번째 남편인 빈센트를 만났다.

    애스터 여사는 남편의 유산 대부분이 뉴욕 일대 부동산 사업을 통해 형성된 만큼 자선활동도 뉴욕에서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녀는 또 평소 “돈은 거름과 같아서 여기저기 뿌려줘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애스터 여사의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말 손자 필립 마셜이 “아버지가 할머니를 오줌 냄새 나는 소파에 재우는 등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대신 할머니 재산을 이용해 자기 재산만 늘리고 있다”며 소송을 냈다. 이 같은 손자의 주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애스터 여사를 아끼는 많은 뉴요커들이 이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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