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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후배들은 女보란듯 당당히 꿈을 펴야죠”

‘여자 대통령…’ 쓴 정미경 검사 “여성성이 아닌 자리와 위치에 맞는 실력 키워야”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후배들은 女보란듯 당당히 꿈을 펴야죠”

“후배들은 女보란듯 당당히 꿈을 펴야죠”

● 1965년 서울 출생
●고려대 법학과, 홍익대 세무대학원 졸업,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과정(여성학) 중
●사시 38회, 서울지검 의정부지청, 인천지검 부천지청, 전주지검 군산지청, 수원지검 검사
●현재 여성가족부 장관 법률자문관 파견

얼마 전 또 하나의 ‘화제작’이 나왔다. 아니 ‘문제작’에 가깝다. 여성가족부에 파견 중인 정미경(42·사시 38회) 검사의 ‘여자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을 꿈꿔라’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들을 향한 정 검사의 비판은 날카롭다 못해 끔찍할 정도다. 비판은 머리말에서부터 시작된다.

“(‘최초의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단) 소수의 예외적 여성들은 배려 안에서 안주했고, 심지어 즐기기도 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배려를 받는 상황에서 오히려 남녀차별이라고 유난을 떠는 경우까지 있었다.”

책장을 몇 장 넘기면 비판은 더욱 직설적이고 강해진다.

“최근 얼굴마담이라고 비난받거나 소위 코드 인사라고 일컫는 여성들은 대부분 최초나 소수의 여성들이다. 그녀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비난이나 공격의 대상이 된다. 실력이 안 되는 얼굴마담이다, 코드 인사다, 누구의 딸이다 등등. 최근 나타나는 예외적 여성들은 사실 ‘여성다운 여성’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실력 쌓을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력이나 경력은 존재하나 실력은 없다.”

여기서 한발 나아가 “‘여성다운 여성’은 사회적 관계 맺기에 뛰어나다. 남성들에게 간택받은 여성이기에 그 방법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다”는 비판은 잠시 숨이 멎게 할정도다. 여성이 같은 여성에게 이처럼 신랄할 수 있을까.



정 검사가 문제삼은 ‘최초의 여성’들은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 강금실, 최초의 여성 총리 한명숙,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소장 후보 전효숙 등이다. 정 검사는 특히 강 전 장관에 대해서는 두 장(章)을 할애해 비판했다.

2003년 6월 강 전 장관은 취임 100일을 맞아 전국의 모든 검사들에게 e메일을 보냈다. 당시의 느낌을 정 검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어떤 검사는 그 시각 살인사건의 피의자를 조사 중이고, 어떤 검사는 사기사건의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대질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을지 모른다. 장관에게서 사춘기 소녀가 쓴 듯한 연애편지를 받은 검사들의 느낌은 어땠을까.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을 달라고 외치는 백성들에게 ‘그럼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을 때의 느낌이라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정 검사는 이어 강 전 장관에 대해 ‘2%가 아닌 50%가 부족한 연예인형 리더’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정 검사는 ‘최초의 여성’들을 향해 왜 이처럼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세운 것일까. 그리고 주변의 반응은 어땠을까. 7월17일 제헌절 오후 서울시내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책 발간 직후 일부 언론이 책 내용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왜곡 보도한 탓에 한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책 내용이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데, 왜 정치면에 소개됐는지 모르겠어요. 이를 바로잡기 위해 기자들과 만났는데, 이번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서는 왜 언급하지 않았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정치인은 국민이 판단할 몫이기 때문에 다루지 않았다고 했죠. 그런데 한 언론사 기자가 유도질문을 하더니 내가 이야기한 것처럼 보도해버렸어요.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해당 언론사는 정 검사의 정정보도 요청을 받아들여 곧바로 기사 내용을 정정했다.

진정한 남녀평등 이루려면 여성공직자 더 많아야

“후배들은 女보란듯 당당히 꿈을 펴야죠”
- 책 내용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저와 가까운 선후배들이 이 책을 읽고 많이 울었대요.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서 정말 좋았다고도 하고요. 친한 후배는 언니가 직접 말하는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정 검사는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이 책은 공직에 진출한 여성들을 향해 쓴 거예요. 제 경험을 토대로 여성공직자들이 과거를 한번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보자는 취지였죠. 올해부터 새로 부임하는 검사 중 절반 정도가 여성이에요. 앞으로 이런 추세가 계속될 거예요. 조직 안팎에서 수사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어요. 그렇다고 앞으로 여검사를 안 받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요? 다들 걱정만 하는데, 사실 해답은 여검사를 검사로 훈련시키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요. 강 전 장관처럼 여성성을 마음껏 드러내라고 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지났어요. 앞으로는 그 자리와 위치에 맞는 자질을 갖춰야 해요. 미래의 후배들에게 그것을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 책을 보면 ‘최초의 여성’이라는 수식어에 함정이 있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어느 분야에서든 최초의 여성은 그 타이틀을 달기까지 엄청난 헌신과 힘겨움을 겪어야 했을 거예요. 그것이 후배들에게 큰 희망이 된 것은 사실이죠. 그분들의 공을 인정해요. 하지만 그분들과 똑같이 산다고 해서 똑같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쉬운 점을 찾아서 우리가, 그리고 후배들이 가야 할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예요.”

- 강금실 전 장관에 대한 비판은 조금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강 전 장관이 임명됐을 때 무척 좋았어요. 같은 여성으로서, 개혁을 바라는 사람으로서 말이죠. 그 마음이 어느 한순간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변해버렸어요. (책에는) 제가 경험하고 느낀 것을 그대로 담았을 뿐이에요.”

- ‘여성다운 여성’에게 속지 말자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 속뜻이 궁금해요.

“여성 사이에는 ‘자매애(sistership)’라는 것이 있어요. 같은 여성을 위해 애쓰고 사명감을 가진다면 좋잖아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여성들이 있어요. 그런 여성에게 속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에요.”

- ‘여성다운 여성’ 범주에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포함되는 건 아닌가요.

“저는 공직자의 자세를 말하는 거예요. 정치는 차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남성이 정치를 위해 남성성을 이용하는 것처럼 말이죠. 정치인에 대한 부분은 좀더 연구 분석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정 검사가 검사생활을 한 지는 올해로 8년째다. 특수부 검사로 활약하고 싶어 홍익대 세무대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군산지검에서 여성·아동 사건을 전담하면서 관심 분야가 여성문제로 바뀌었다. 검찰조직 내에서 여성으로서 느낀 한계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여성사건을 전담하면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검사들과 왜 대화가 안 되는지를 알게 됐죠. 언어와 생각이 달랐어요. 그들은 성범죄 피해자는 당연히 여성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성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죠.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을 여성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어요. 그래서 검사와 여성단체 관계자들 사이에 통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일을 맡고 싶었어요.”

여성가족부로 파견을 자청한 것도 그래서다. 그렇게 여성문제에 눈뜬 정 검사는 여성 공직사회 전체의 문제로 시각을 돌렸고, 나름의 해법을 찾아 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원에서 ‘여성학’도 따로 공부했다.

그는 남녀평등을 부르짖는 페미니트스는 아니다. 남녀의 현실적 차이를 인정한다. 그렇다면 여성이 사회의 주인이 되고,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우리 사회에선 남녀가 평등하지 않아요. 남성이 일을 못하면 개인 아무개가 못하는 것이지만, 여성이 일을 못하면 여성 전체가 다 못한다는 평가를 받죠. 여성이 일을 잘하면 그것은 그냥 개인이 잘하는 거고요. 참 속상한 일이에요. 그런 편견과 선입견이 깨지려면 일단 여성공직자가 많아지고 사회가 통째로 바뀌어야 해요. 남녀가 처음부터 똑같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새집이 필요한 거죠. 이것이 제가 제시하는 ‘새집 짓기 전략’이에요. 그래야 여성도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주간동아 2007.07.31 596호 (p62~63)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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