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6

2007.05.22

네거티브 부르는 ‘경선 불임’

  • 장 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입력2007-05-16 18: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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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거티브 부르는 ‘경선 불임’
    5월의 때 이른 더위가 거리를 달구는 것처럼, 범여권과 야권의 당내 갈등이 대선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범여권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대선후보들 간의 갈등이 확산되면서 정파간 이합집산이 본격화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도 최근 대선후보 경선방식을 둘러싼 이명박-박근혜 주자의 갈등이 위험수위를 향해 치닫고 있다.

    대통령 선거는 여당과 야당의 경쟁인데, 왜 여야간 대결보다는 각각의 내부 다툼이 더 치열해지는가. 이러한 당내 갈등의 확산과 경선 과정의 지연은 과연 우리 정치에 도움이 되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이런 설명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번 대통령 선거의 특징 중 하나가 ‘뒤로 미루기(backward loading)’ 전략이다. 즉, 여야 세력 모두 대통령 후보 확정을 최대한 미루려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미국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각 주가 앞다퉈 경선을 개최함으로써 자신들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이른바 ‘앞으로 당기기(front loading)’ 현상이 벌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뒤로 미루기의 일차적 배경은 잘 알려져 있듯 복잡하고 힘겨운 범여권의 사정에서 비롯됐다. 상대적으로 국민 지지에서 크게 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 유력 주자들이 각각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여권에서 후보 결정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게다가 2002년 대선 막바지에 있었던 짜릿한 역전극의 추억도 미루기 현상을 부추긴다.

    여권의 ‘자의 반 타의 반’ 미루기는 한나라당에도 빠르게 전염됐다. 애초 한나라당은 6월까지 당내 후보 경선을 마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여권의 전열 정비가 늦어지면서 한나라당의 경선 일정도 미뤄지고 있다. 6월로 예정됐던 경선은 8월로 늦춰졌고, 요즘처럼 유력 후보가 경선 규정을 놓고 대립하는 모양새로 봐서는 더 늦춰질 수도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대선 일정 미루기는 과연 바람직한가. 대선 일정의 지연과 그에 따른 당내 갈등의 증폭은 우리 민주주의에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다. 문제의 핵심은 일정이 지연될수록 정책 대결은 실종되고 스캔들 브로커들이 활약(?)할 공간만 커진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것처럼 여야 모두 후보 선출을 미룬다면 정치무대는 당내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내 정치의 주메뉴는 정책 경쟁이 아니다.

    후보 늦을수록 정책 경쟁보다 상대 흠집내기 유력

    경선 과정에서 여론의 반영 비율에 대한 이-박 진영의 격돌은 그나마 제도와 절차를 둘러싼 갈등이다. 어느 한쪽이 탈퇴(exit)라는 자충수를 두지 않는 한 한나라당의 갈등은 경선 과정을 둘러싼 정당 내부정치에 머물 것이다. 반면 범여권의 갈등은 여러모로 정상적인 정당정치 이전 수준이다. 열린우리당이라는 정당의 정체성과 연속성을 강조하는 노 대통령의 태도는 정치학자들에게서 칭찬받을 만한 원칙론이다. 이에 반해 선거 경쟁력을 위해 기존 정당을 허물고 새 출발 해야 한다는 정동영 김근태 후보의 주장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도마뱀 꼬리 자르기 전술이다. 원칙론과 상황론이 맞붙은 여권 상황은 아직도 범여권이 안정적인 제도화 이전의 정치, 즉 이벤트 정치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가을까지 여야의 집안싸움이 지속되다 각각 후보가 확정됐을 때, 여야 후보는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내야 한다. 결국 여야간 정책 경쟁보다는 상대를 흠집내는 네거티브 스캔들에 대한 유혹이 커진다. 경선 일정을 무작정 미루는 것은 우리 선거정치의 질적 타락을 부를 수 있는 위험한 불씨다. 이 불씨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여야 모두 예상치 못한 큰 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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