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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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중심적, 그래도 경쟁력은 A+”

87학번 교수가 본 07학번 … “거침없이 하이킥에 가슴이 따뜻했으면…”

  • 유홍식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yuhongsik@swu.ac.kr

    입력2007-05-16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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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중심적, 그래도 경쟁력은 A+”

    20년 전, 87학번 새내기들은 민주화 투쟁의 전면에 섰지만 요즘 07학번 새내기들은 학과 공부에 여념이 없다.

    1987년의 봄. 대학 교정은 최루탄, 지랄탄, 화염병 냄새로 가득했다. 잔디가 무성한 곳에는 어김없이 막걸리와 소주의 향취가 있었다. 1000원 한 장으로 소주 두 병과 새우깡 한 봉지를 사서 고민을 나누던 그 시절. 학내외 이슈로 수업 거부, 동맹휴업이 ‘발동’하기 일쑤여서 수업이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87학번들은 취업 걱정보다는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남학생들은 군대문제로 더 걱정이 많았다.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에게 프러포즈의 뜻으로 학보를 보내는 낭만도 있었다. 토익 점수가 대학생활의 전부를 말해주는 시기는 아니었다. 어학연수가 필수과목도 아니었다.

    2007년의 대학 강의실. 이제 나는 대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 강단에 섰다. 87학번인 내가 20년을 훌쩍 뛰어넘어 07학번 새내기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첫 수업의 주제로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제시했다. ‘07학번 새내기인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4년 후 내 모습은?’ 등을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 대답의 핵심은 “영어를 잘해야 전공을 살려 전문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청년실업 심각한 문제, 기성세대도 미안한 생각

    비애감이 들었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다. 청년실업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새내기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그들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87학번인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암울한 군사독재 시절이었지만 나름대로 낭만도 있었고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도 있었다. 취업 걱정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새내기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마흔에 불과한 나이지만 내가 점차 ‘꼰대’가 돼가는 게 아닌가 싶다. 갓 스무 살인 새내기들의 말과 행동, 태도 하나하나가 거슬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07학번들은 그야말로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주변에 누가 있든 상관없이 순화되지 않은 단어를 서슴없이 사용한다.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누가 동승했는지 살피지도 않은 채 “×나게 과제 많아” 같은 말을 한다. 한 동료 교수는 강의 중에 전화가 오자 밖으로 나가 여유롭게 받고 다시 들어오는 신입생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07학번은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에는 관심 없는 개인문화 세대다. 선배들이 모꼬지(MT)를 제안했지만 반응 자체가 없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쁘다’ ‘관심이 없다’는 것. 철저한 개인주의적 행동방식이 그들 내면에 뿌리박힌 것 같다. 또한 이들은 미디어 마니아다. 인터넷, 게임기, MP3플레이어, 휴대전화,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 휴대형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 등 다양한 미디어 기기를 즐겨 사용한다. 과제를 인터넷 검색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도 굳건하다. 신문이나 시사잡지와 결별한 지 오래됐고, 세상 소식은 인터넷을 통해 접한다. 딱딱한 뉴스보다 부드럽고 재미있는 뉴스만이 이들의 마우스클릭 세례를 받는다. 이들의 귀에는 늘 이어폰이 꽂혀 있다.

    07학번은 부모에게도 많이 기댄다. 수강 신청조차 부모의 도움을 받는 학생이 많다. 상담도 부모가 교수에게 연락해 직접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학교가 지원하는 다양한 커리어 관련 프로그램을 부모가 챙겨주는 일도 많아졌다. 부모가 대학생 자녀의 과제를 대신 해주는 시대가 조만간 도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07학번들과 강의실 안팎에서 함께 호흡하며 가장 걱정되는 점은 ‘원칙의 부재’다. 시험을 치른 뒤 찾아와 결과가 좋지 않으니 자신만 점수를 더 딸 수 있는 개인과제를 내달라고 조른다.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일러도 막무가내다.

    “자기중심적, 그래도 경쟁력은 A+”

    1987년 6월항쟁 당시 시위 모습.

    다양한 사회활동 ‘봉사하는 전문가’ 충분한 소양

    이들은 가정, 학교, 사회 어디에서도 원칙을 학습하거나 독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며 살도록 알게 모르게 학습 또는 강요받아왔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어른으로서, 교수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부끄럽고 섬뜩하다. 원칙을 모르는 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하고 다음 세대를 가르치게 되면 우리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래도 밝은 점을 찾아볼 수 있다. 07학번들은 무한경쟁을 피하지 않는다.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아무래도 조기교육으로 냉혹한 현실을 일찍 깨달은 덕분일 것이다. 이들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스스로 학습하고 체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장래 희망을 더 빨리 구체화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활동에 뛰어든다. 또한 87학번이 관심 갖지 않았던 사회봉사에도 열심이다. 나는 이들에게서 ‘봉사하는 전문가’로 양성될 충분한 소양이 있음을 자주 본다.

    2027년. 불혹에 접어든 07학번 교수가 27학번 새내기를 맞이하게 될 해다. 내가 현재 경험하는 상황을 맞게 될 07학번의 모습은 나와 얼마나 다를지, 한국 사회의 모습은 어떠할지 궁금하다. 단언컨대 07학번은 국가간 극한경쟁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세대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에게는 없는 봉사정신으로 사회 양극화도 슬기롭게 극복하리라 믿는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원칙을 강조하는 교육, 기본을 다지는 교육을 하루빨리 07학번에게 실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학 사회에 국한해서 말하면, 영어와 국제화를 대학 개혁의 유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되며, ‘원칙과 기본을 다지는 교육’ ‘열정을 북돋우는 교육’이 먼저여야 한다. 원칙·기본·열정을 아는 07학번이 사회의 성장동력으로 활약하는 시대를 기대해본다. 07학번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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