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2

2007.04.24

수비수 허수아비 만드는 한 방 필살기

격렬한 경기 물 흐르듯 유연하게 ‘창조적 축구의 원천’

  • 축구 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입력2007-04-18 18: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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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비수 허수아비 만드는 한 방 필살기

    패스는 상대 수비수의 급소를 찌르는 필살기다.

    믿거나 말거나’식의 옛이야기. 축구에서 패스가 등장한 것은 100여 년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라고 한다. 그 무렵 축구는 럭비에서 서서히 빠져나와 독립된 종목으로 완결성을 갖춰가고 있었는데, 어느 경기에서 맨체스터 선수들이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마자 갑자기 옆의 동료에게 넘겨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축구는 럭비와 비슷하게 무조건 앞으로 차면서 우루루 몰려다녔다는데, 맨체스터 선수들은 빈 곳의 동료에게 공을 차주면서 손쉽게 이겼다는 얘기다.

    또 다른 ‘전설’도 있다. 역시 100여 년 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축구를 하는데 지형이 고르지 않아 단독 드리블을 하기보다 동료에게 차주고 앞으로 달려가 다시 공을 받는 ‘패스’를 했더니 놀랍게도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둘 다 100여 년 전 이야기지만 지금도 통용되는 축구의 대전제다. 3월24일 한국 대 우루과이 평가전에서 한국은 0대 2로 졌는데 패인이 바로 패스였다. 이 경기에서 이영표와 이천수는 빈번하게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서로 호흡이 맞지 않았다는 증거다. 두 선수 간의 패스는 너무 짧거나 길었고 번번이 차단당했다. 설기현은 타이밍을 자주 놓쳤고, 조재진은 공허하게 날아오는 공을 향해 점핑을 반복했다. 반면 우루과이에는 레코바가 있었다. 일부 보도에서는 ‘노장’이라 표현했지만 그는 아직 31세이고(이영표가 30세다) 인터 밀란에서 뛰고 있는 월드 클래스 선수다. 그의 패스는 간결하고 날카로웠다. 중앙 수비 경험이 거의 없는 김상식과 김동진의 뒷공간으로 순식간에 찔러주는 패스 때문에 우루과이는 골을 터뜨렸다.

    능동적 위치에서 경기 전체 장악하는 공격축구의 기본

    ‘사람이 공보다 빠를 수는 없다.’ 옛 부천 SK에서 감독을 지낸 발레리 니폼니시의 명언이다. 패스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당한 말씀’이다. 패스의 안정성과 신속성, 그리고 단 한 차례라도 의미 있는 공간과 속도를 창출하려는 효율성을 강조한 말이다. 패스는 드리블하기 어려워서 일단 옆으로 넘겨주거나 그저 수비수를 피하기 위해 멀리 차는 것이 아니다. 패스는 능동적인 위치에서 경기 전체를 장악해나가야 하는 공격축구의 근간이며, 상대 수비수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적극적인 필살기인 것이다.



    최근 기록을 보면, 2006년 독일월드컵 때 아르헨티나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수비진을 상대로 무려 24번 패스 끝에 캄비아소가 골을 터뜨렸다. 사비올라, 크레스포, 캄비아소 등의 패스워크는 축구 미학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 것으로, 주성치 주연의 영화 ‘소림축구’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명장면이다. 하지만 패스가 중요하다고 해서 무의미하게 공을 돌리는 것은 칭찬할 일이 못 된다. K리그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FC서울의 세뇰 귀네슈 감독은 “수비수의 첫 패스는 매우 중요하다. 그 패스가 골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수비수들이 상대 지역에서 경기를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패스는 육박전에 가까운 격렬한 축구를 ‘물 흐르듯’ 만들어주는 유연한 힘을 지닌, 창조적인 축구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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