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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교양 돋보기|그리스 예술 모방론

라오콘 군상,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

‘신고전주의’ 아버지 빙켈만 그리스 이상화…동성애자 시선으로 고대 조각상 해석

  •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라오콘 군상,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

라오콘 군상,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

라파엘 멩스, ‘빙켈만의 초상’, 1775년경. 멩스는 독일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다.

“여기에 한 젊은 스파르타인이 있다고 하자. 그는 영웅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갓난아이 때부터 한 번도 강보에 싸인 적이 없고, 7세 때부터는 땅바닥에서 잠을 잤으며, 어렸을 때부터 투기와 수영으로 육체를 단련했다. 이 스파르타 청소년을 오늘날 우리 시대의 나약하고 나태한 청소년과 비교해보라. 그리고 예술가가 젊은 테세우스나 아킬레우스, 심지어 디오니소스의 모델로 앞의 두 사람 중 누구를 택할지 생각해보라.”

할리우드 영화 ‘300’에서 어린 레오니다스가 가혹한 훈련을 받는 장면을 보며 빙켈만의 ‘고대미술 모방론’의 이 구절이 떠올랐다. 그가 “모호한 것도 군더더기도 없는 저 당당하고 남성적인 윤곽”이라 불렀던 그리스인들의 몸매는 물론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스파르타의 청소년들은 열흘에 한 번씩 행정감독관 앞에서 나체로 검사를 받았다. 그때 조금이라도 군살이 붙은 징후가 보이면 감독관은 한층 더 엄격한 절식을 명령했다.”

빙켈만에 따르면 “그리스인 가운데 투기에 지원한 청소년에게는 훈련기간 유제(乳製) 식품 외에는 먹지 못하게” 했다. 아마도 근육을 집중적으로 키우려는 식이요법이었을 게다. 어쨌든 정신을 위해 육체를 경멸하는 근대인과 달리, 고대 그리스인들은 운동과 섭생으로 몸을 늘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이는 물론 모든 시민이 유사시엔 병사가 되어야 했던 고대 정복국가의 절실한 필요에 따른 것이었으리라.

자연에서 고대로

스파르타 전사들의 육체를 바라보는 관객의 경탄. 이는 언젠가 유럽 근대인들이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에 보냈던 찬탄과 닮았다. 또 오늘날의 관객들이 초라한 제 몸매와 스크린에 등장하는 전사들의 우람한 몸매를 비교하며 느끼는 위축감은 근대인이 고대 조각상 앞에서 가졌던 열등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육체가 우리들의 육체보다 탁월하게 아름다웠다는 견해는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일까? 빙켈만은 우스울 정도로 그리스를 이상화한다. 그가 보기에 그리스인들은 “모두가 다 아름답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이 아무 특징도 되지 않는” 종족이다. 그들은 “자연적인 발육에 조금도 압박을 가하지 않는 옷으로 “아름다운 형체의 성장을 방해”받지 않았고, 심지어 병에 걸려도 천연두나 구루병처럼 “아름다움을 심하게 손상하거나 고상한 체격을 망가뜨리는 질병”은 아예 앓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토록 아름다웠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체는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라진 아름다움의 형상을 그대로 보존해놓은 것이 있으니, 바로 고대 조각상들이다. 이 때문에 자연을 모방하라는 르네상스의 교리와 달리 빙켈만은 “고대를 모방하는 것이 자연을 모방하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권한다. 그는 이 요구를 묘한 역설의 형태로 제시했다. “우리가 위대하게 되는 길, 아니 가능하다면 모방적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고대인을 모방하는 것이다.”

라오콘 군상,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

아테노도로스·야게산드로스·폴리도로스, 라오콘 군상(기원후 1세기경).

칼로카가티아

빙켈만이 이 책을 쓰던 당시 유럽은 대륙 전체를 휩쓸었던 바로크 취향의 끝자락에 있었다. 격정적이고 역동적이며 감각적인 바로크 예술은 빙켈만이 보기에 결코 ‘좋은 취미’가 아니었다. 마침 이루어진 폼페이와 헤라클레네움의 발굴은 유럽인들의 의식에 다시 고전 고대를 강하게 각인시켰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운동은 출발점으로 돌아가게 마련. 빙켈만은 근대문화의 출발이었던 그리스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함으로써 ‘신고전주의’ 운동의 아버지가 된다.

고전주의는 ‘자연주의’와 다르다. 자연주의가 개별자의 묘사에 집착한다면, 고전주의는 개별자의 묘사를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린다. 예를 들면 그리스의 장인들은 조상을 만들 때 여러 사람의 아름다운 부위를 따서 조합했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극한으로까지 끌어올릴 때 인간을 모델로 한 조각상은 어떤 인간보다 아름다운 신의 몸, 즉 신상이 된다. 그리스 조각의 제작방식에는 이렇게 신이 되고 싶었던 그리스인들의 존재미학이 반영돼 있다.

“감각적 미는 예술가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주었고, 이상적 미는 숭고한 특성을 주었다.” 고전주의적 아름다움은 그저 육체의 아름다움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육체의 감각적 표면 아래로 정신과 영혼의 숭고함이 배어나올 때, 비로소 그 아름다움은 최고 경지에 이른다. 그리스인들의 삶의 이상인 ‘칼로카가티아’(善美)는 육체적 아름다움에 윤리적 강건함이 결합돼 신적 위대함에 도달하는 것을 가리킨다. 빙켈만은 고대의 ‘라오콘’상에서 그 이상의 실현을 본다.

육체성 꿈틀대는 바로크 예술

“그리스 걸작들의 일반적이며 탁월한 특징은 결국 자세와 표현에서의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다. 바다 표면이 사납게 날뛰어도 심해는 평온한 것처럼 그리스 조상들은 휘몰아치는 격정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위대한 영혼을 나타낸다. 이러한 영혼은 격렬한 고통 속에 있는 ‘라오콘 군상’의 얼굴에 잘 묘사돼 있다.” 빙켈만은 그리스 예술의 정신을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로 특징지었다. 이 예술의 이상은 훗날 독일 고전주의를 통해 독일의 교육이념으로 받아들여진다.

라오콘 군상,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

프라고나르, 코레수스와 칼리로에, 1806년.

바로크 예술에는 육체성이 살아 꿈틀거린다. 바로크의 육체는 전율 속에서 엑스터시를 겪기도 하고, 처형장에서 순교하며 고통에 겨워 짐승처럼 울부짖기도 한다. 빙켈만은 이런 격정의 표출을 고대 수사학의 용어를 빌려 ‘파렌티르소스의 오류’라 부른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오류(?)이기도 하다. 가령 밤에 쓴 일기나 편지를 낮에 읽어보면 대부분 얼굴이 화끈거릴 게다. 밤에는 격정에 사로잡혀 있으나, 낮에는 이성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빙켈만이 당시의 바로크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전주의적 인간은 다르다. 군상 속의 라오콘처럼 죽음의 고통에서도 결코 영혼의 평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정신의 힘으로 육체의 고통을 억누르는 것이 고전주의적 예술의 이상이자, 고전주의적 인간의 이상이었다. 조국을 위해 담담하게 죽음의 운명을 선택하고, 하늘을 가린 적군의 화살 속에서도 태연히 “그늘에서 싸울 수 있겠군”이라고 농담을 건네는 레오니다스와 300 용사들에게서도 우리는 이와 비슷한 미적, 윤리적 이상의 결합을 본다.

라오콘 군상,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

자세히 보면 라오콘상의 모티프를 모방했음을 알 수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 테르모필레의 레오니다스, 1814년(위). 프랑스 신고전주의 미술의 대표자 다비드 역시 빙켈만의 영향을 받았다. 영화 ‘300’.

‘게이’ 미학

영화 ‘300’에는 스파르타 전사들이 아테네인들을 ‘소년애자(boy lovers)’라 비웃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이 영화가 남성 이성애자의 시각을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뒷받침된 이 영화의 육체미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런 부류의 미감은 새로운 게 아니어서, 이미 1930년대에 나치는 베를린올림픽을 통해 고대의 미학을 재연했다. 레니 리펜슈탈의 기록영화는 이 파시스트 육체미학의 시각적 완성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체를 바라보는 빙켈만의 시각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빙켈만은 동성애자여서 종종 자신의 제자들과 우정을 넘어서는 애정관계를 가졌다. 고향을 방문하려다 중단하고 이탈리아로 돌아오는 길에 그를 살해한 이도 여행길에 잠시 동성애 관계를 맺었던 사내였다. 그가 그리스 연구에 몰두했던 것도, 정신적으로나마 동성애를 금지하는 기독교 문화에서 벗어나 동성애를 허용했던 그리스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빙켈만은 “남자를 사랑하는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그리스 조각상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성애자의 눈이 아니라 동성애자의 눈으로 그리스인의 육체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프랑스 신고전주의, 괴테와 실러의 독일 고전주의 문학, 그리고 헤겔로 대표되는 독일 고전철학에 토대를 마련해주었던 빙켈만의 고전주의. 예술과 철학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그의 혜안이 실은 ‘게이’의 눈이었다는 사실이 재미있지 않은가.



주간동아 2007.04.10 580호 (p88~90)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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